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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산업 근간, 사회 작동 원리 송두리째 허무는 선심성 ‘혈세 빚탕감’
금융 산업 근간, 사회 작동 원리 송두리째 허무는 선심성 ‘혈세 빚탕감’

정부 주도의 개인·소상공인 빚(채무) 탕감·조정 조치를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선 망국병 유발의 주범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비판의 핵심 논거는 빚을 내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자발적 결정이라는 점과 빚내서 얻은 돈을 쓴 주체도 어디까지나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책임지는 구조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법과 상식에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자발적 선택의 잘못된 결과까지 사회가 책임질 경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의 선한 의지를 꺾을 뿐 아니라 도적적해이와 무기력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돈 빌려 쓴 사람 따로, 갚는 사람 따로…개인 빚 탕감에 비상계엄 이후까지 지원대상 확대

 

현 정부 출범 후 취약계층 및 경제적 약자의 빚 탕감·조정 지원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논의가 본격화 된 시점은 지난해 6월부터였다. 당시 국무회의에선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연체자들을 돕기 위한 ‘배드뱅크(가칭)’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등장했다. 정부가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빚을 진 차주의 채무를 탕감해준다는 내용이 골자였으며 소요 예산은 약 8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정부와 민간 금융사가 각각 절반씩 나눠서 부담한다는 게 당시 정부의 복안이었다.

 

▲ 정부가 추진하는 개인·소상공인 대상 채무 탕감·조정 정책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축사하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
▲ 정부가 추진하는 개인·소상공인 대상 채무 탕감·조정 정책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축사하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그로부터 약 4개월여 후인 지난해 10월 기존에 논의돼 온 배드뱅크가 ‘새도약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본격 출범했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기금은 파산에 준할 정도로 상환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면 채권을 완전 소각해 준다. 중위소득 60% 이하(1인 가구 기준 월 소득 154만원) 또는 생계형 재산 외 회수 가능 재산이 없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위소득이 60%를 초과하거나 회수 가능 재산이 있지만 채무를 갚을 능력이 현저히 모자라는 경우에는 원금의 최대 80%를 감면해준다.

 

새도약기금은 채무자들이 따로 신청하는 절차가 없으며 기금 측이 협약에 참여한 금융사로부터 요건에 맞는 채무자들의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원 절차가 시작된다. 금융사가 새도약기금에 채권을 매각할 때와 새도약기금이 상환능력 심사를 끝냈을 때 해당되는 채무자에게는 통지하는 식이다. 채권 매입이 이뤄지면 해당 채무자에 대한 추심은 즉시 중단된다. 수혜자 입장에선 빚을 갚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도 저절로 빚이 사라지는 혜택을 입게 되는 셈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총 113만4000명이 보유한 16조4000억원 규모의 채무가 소각·조정될 예정이다.

 

기존에 있던 빚 탕감·조정 정책도 현 정부 출범 후 눈에 띄게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코로나19 펜데믹의 직격타를 맞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의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의 지원대상과 규모, 범위를 대폭 늘린다고 밝혔다. 당시 금융위 발표에 따르면 지원 대상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사업 영위 기간을 ‘2020년 4월부터 2024년 11월 중’에서 ‘2020년 4월부터 2025년 6월 중’으로 확대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창업자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또한 총 채무액 1억 원 이하인 저소득 부실차주의 무담보 채무에 대해서는 거치기간을 최대 1년에서 3년, 상환기간은 최대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고 원금 감면율을 최대 80%에서 90%로 높였다.

 

▲ 올해도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의 지원 내용이 확대됐다. 조기상환·성실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가 골자다. 사진은 2024년 12월 서울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설치된 새출발기금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 올해도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의 지원 내용이 확대됐다. 조기상환·성실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가 골자다. 사진은 2024년 12월 서울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설치된 새출발기금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올해도 ‘새출발기금’에 새로운 지원 내용이 추가됐다. 조기상환이나 성실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위에 따르면 새출발기금 채무조정을 받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1년 이상 연체 없이 빚을 잘 갚다가 남은 빚을 한 번에 미리 갚을 경우 추가로 빚을 더 깎아준다. 성실하게 갚은 기간에 따라 남은 빚의 5~10%를 추가 감면해주는 방식이다. 상환유예 기준도 넓힌다. 현재는 채무자 본인의 질병, 휴·폐업, 중증질환 등의 사유로 최장 3년간 채무상환을 유예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출산하거나 육아휴직하는 경우, 부양가족 중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또는 4대 중증질환자가 있는 경우도 상환유예를 신청할 수 있다. 1년 이상 채무조정 변제 계획을 성실히 이행했다면 채무 변제가 어려울 경우 ‘긴급 상환유예’(2개월 내)도 신청할 수 있다.

 

정부가 깨버린 사회적 약속, 금융 산업 근간도 흔들…“미래세대 앞길 막는 독버섯”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정부의 빚 탕감·조정 조치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부정’ 쪽으로 크게 기우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망국병 바이러스’라는 표현까지 등장해 주목된다. 앞서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지난 10~11일 진행한 여론조사(응답률 2.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결과에 따르면 ‘정부 예산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정책 추진’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47.4%에 달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6.5%p 낮은 40.9%에 불과했다.

 

▲ 전문가들은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 취약 차주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을 넘어선 과도한 채무 탕감·조정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점심시간 식당 입장을 기다리는 직장인들. [사진=연합뉴스]
▲ 전문가들은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 취약 차주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을 넘어선 과도한 채무 탕감·조정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점심시간 식당 입장을 기다리는 직장인들. [사진=연합뉴스]

 

르데스크 취재 결과, 정부의 빚 탕감·조정 정책의 반대 이유로는 성실 상환 차주들과의 역차별 논란, 금융 산업의 근간 훼손, 사회 전반의 도덕적해이 및 무기력증 유발 등이 지목됐다.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박수근 씨(45·남)는 “이미 돈을 빌려 쓴 사람에게 빚을 못 갚는다고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나”라며 “정부가 갚는 돈도 결국 국민 혈세인데 왜 개인이 쓴 돈을 다른 사람이 갚나”라고 비난했다. 이어 “본인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 어떻게든 빚을 갚아온 사람들은 뭐가 되나”라며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정말 작정하고 사회를 망가뜨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한 시중은행에 재직 중인 은행원 이승주 씨(31·남·가명)는 “정부가 빚을 탕감해주는 정책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금융 산업은 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금융 산업의 본질은 믿음과 신뢰인데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어기라고 정부가 등 떠밀고 있으니 앞으로 금융산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아무리 우리나라 정치가 후진적이라고 해도 사회를 망치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며 “알고 그러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고, 정말 몰라서 그런 거면 정치를 해선 안 될 정도로 무능한 것이다”고 맹비난했다.


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 취약 차주에 대한 최소한의 수준을 벗어난 빚 탕감·조정 정책은 사회 분위기를 저해하고 미래 세대의 앞길까지 가로막는 ‘독버섯’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취약계층의 재기를 지원하기 위한 채무조정 제도 자체는 필요하지만 지원 대상이나 감면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해 온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특히 일정 기간 채무를 갚지 않아도 정부가 결국 해결해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채무 상환에 대한 책임 의식이 약화되고 모럴 해저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지원 대상과 기준을 보다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사 속 Q&A
Q1. 새도약기금의 주요 지원 대상과 방식은?
A.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을 매입해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심사한 뒤 채무를 소각하거나 조정하는 방식이다. 상환 능력을 사실상 상실한 것으로 판단되면 채권을 소각하고 일정 수준의 상환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원금을 감면한 뒤 나머지를 분할 상환하도록 한다. 채무자가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협약 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대상 채권을 기금이 일괄 매입해 심사를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Q2. 새도약기금과 새출발기금의 차이점은?
A. 새도약기금은 장기간 빚을 갚지 못한 개인 장기연체자의 재기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 이후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2년 도입됐다. 새출발기금은 지난해 지원 대상 사업 영위 기간이 2025년 6월까지로 확대됐고 저소득·취약차주의 원금 감면율도 최대 90%로 높아졌다.
Q3. 올해 새출발기금에 추가된 지원 내용은?
A. 채무조정 이후 빚을 성실하게 갚는 차주에 대한 인센티브가 강화됐다. 조기상환 시 잔여 원금을 추가 감면하고 부실우려차주가 1년간 성실하게 상환할 때마다 적용금리를 추가 인하하는 방식이다. 출산·육아휴직이나 부양가족의 중증질환 등으로 일시적으로 상환이 어려워진 경우에도 상환유예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가 확대됐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새출발기금 누적 신청액은 약 27조7000억원, 약정액은 9조80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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