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 서울을 비롯한 전국 유명 학원가가 들썩이고 있다. 다음달 1일 시행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이하 학원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당초 내년에 치를 예정이든 반 배정 테스트나 입학시험 등을 앞당겨 진행하는 움직임이 급격하게 늘었다. 학원가는 평일·주말 구분 없이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오히려 익숙한 방식으로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데 대해 안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학원법 개정안 대상이 몇몇 학원과 일부 학생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미 규제의 기본 조건 중 하나인 ‘공공성’이 결여됐을 뿐 아니라 수요 또한 여전하다는 점에서 규제의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음달 학원법 개정안 시행 앞두고 ‘내년도 시험’ 분주, 그럼에도 학부모·학생들은 ‘안도’
지난 19일, 르데스크가 찾은 서울의 한 학원가는 평소 주말과는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학원가의 특성 상 평일·주말을 막론하고 북적이긴 하지만 이달 들어 주말 풍경이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유명 학원들이 내년도 반 배정 시험이나 입학시험을 미리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유아 대상 수학 학원으로 유명한 한 학원은 이달 평일·주말에 걸쳐 내년도 반 배정 시험을 미리 치르고 다음 달부터 곧장 반 편성 및 맞춤형 커리큘럼을 적용할 계획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수한 커리큘럼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영·유아 대상의 한 영어학원 역시 당초 11~12월에 치를 입학시험을 이달로 앞당겨 치렀다. 이 외에도 전국 각지의 학원가에서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탄 학원들 중 상당수가 반 배성 시험이나 입학시험을 이달로 앞당겨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원법 개정안 시행으로 다음달 1일부터 유아를 대상으로 모집이나 수준별 반 배정이나 입학을 목적으로 시험이나 평가를 실시는 것 자체가 금지되다 보니 당장은 몇 개월 앞당겨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학원 관계자는 “학원법 개정안 얘기가 나올 때부터 학부모들로부터 내년까지 만이라도 기존대로 하면 안 되겠느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며 “결국 학원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쳐 학원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에 내년 입학 신청을 미리 받고 필요한 절차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가 문제인데 이미 학원도 대책을 고민하고 있고 심지어 학부모들이 다른 학원은 이렇게 한다는 식으로 아이디어까지 준다”며 “사실 우리 학원에 오는 원생들은 아주 극소수인데 몇몇 사례를 가지고 법 개정까지 한 것을 보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고 솔직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국회, 교육부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의 핵심 골자는 만 3세부터 취학 전 유아를 대상으로 원생 모집이나 수준별 반 배정(분반)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평가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필기·구술·면접·실기시험뿐만 아니라 문제풀이, 과제 수행, 발표 등 시험에 준하는 방식 모두 금지된다. 기관의 시험 성적표나 이수증을 제출받아 우회적으로 반을 나누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거나 반을 배정받기 위해 서너 살 때부터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등 사교육과 선행학습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어 영·유아의 과도한 인지적 스트레스 해소 및 아동의 권익이 저해가 우려된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였다. 이후 교육부는 지난 7월 체적인 금지 기준과 제재안을 담은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된 학원법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다음달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적용 대상은 영유아를 교습하는 학원, 교습소, 개인과외교습자 전체다. 단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학원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학부모들 "특정 소수 악마화➞규제➞성과 자축…또 하나의 포퓰리즘 등장”
학부모들의 반응은 상당히 격양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의의나 목적, 취지, 명분 등이 한참 부족한 ‘졸속 법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규제 대상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공익성이 결여돼 있는데다 부모의 자식사랑을 학대로 왜곡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하는 위헌적 내용을 합리화시키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일부 학부모들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사람 죄인 취급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이런 역차별적 규제가 현 정부·여당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핵심 이유라며 날 선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5살 자녀를 키우는 L씨는 “아이를 강남이나 목동 유명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가 전국에 몇 명이나 되겠나”라며 “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규제를 만드는 게 우습기만 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규제의 이유가 아이들 신체·정신 건강 우려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과연 어떤 부모가 그런 상황에 사랑하는 아이를 내몰겠나”라며 “아직까지 자발적 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또는 학원이 돕겠다는데 그걸 무조건 ‘나쁘다’라고만 매도하면 이 아이들이 커서 뭐가 되겠나”라고 덧붙였다.
3살·5살 자녀를 키우는 K씨는 “주변 엄마들을 보면 다음달부터 ‘레테 금지법’이 시행되는 것을 알지만 전혀 신경 쓰지는 않고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 바뀔까에 대한 관심뿐이지 ‘학원을 안 보내겠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입학 자격 취득이나 수준 별 학습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며 “분위기가 이런데 학원들이 과연 손 놓고 있겠나. 도대체 규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2살 자녀를 키우는 J씨는 “앞으로 아이를 영어유치원이나 학원을 보내야하는 입장에선 너무 억울하다”며 “과거의 선례를 보면 규제가 나오면 그 이후에는 더욱 어렵고 복잡한 방법이 등장했는데 결국 늦게 뛰어드는 사람만 피해보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학원법 개정안은 소수의 몇몇 사례를 과도하게 부풀려 악마화 시킨 후 마치 대단한 성과인냥 포장해 과시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본다”며 “학원법 개정안의 전제는 아이들 보호인데 결국 부모가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법의 전제부터 목적, 취지 전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학원법 개정안’에 대한 후속 조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상을 규제로 해결하려면 규제의 목적과 대상이 명확해야 하고 실제 현장에서 기대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며 “특히 교육 수요 자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시험이나 평가 방식만 제한할 경우 수요가 사라지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 시행 이후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예상하지 못한 우회 방식이나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이를 보완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행위를 금지하는 데 그치기보다 영유아의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본래 정책 목적이 실제로 달성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제도의 효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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