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한 곳인 니카라과에 생산기지를 둔 국내 기업들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커지고 있다. 장기 집권 중인 다니엘 오르테가 정권이 야권의 선거 참여를 제한하고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는 등 종신 독재 수순을 밟으면서 미국의 대(對)니카라과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니카라과는 미국·중미·도미니카공화국 자유무역협정(CAFTA-DR)을 기반으로 국내 기업들이 북미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해 온 곳인 만큼 미국의 통상 압박이 현지 진출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일부 기업들 사이에선 니카라과의 정치적 리스크를 분산할 대체 생산거점으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과테말라를 주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요동치는 북·중미 정세…종신 독재 시도 니카라과 대통령 vs 전방위적 관세 압박 트럼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달 초 니카라과 의회는 야권 인사들의 선거 참여를 제한하고 대통령 임기를 기존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서로 다른 두 회기에서 의결하도록 한 절차에 따라 내년 1월 두 번째 표결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개헌은 2007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 그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공동대통령이 주도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2014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연임 제한을 폐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임기를 5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내 무리요를 자신과 동등한 권한을 갖는 공동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번 개헌안 통과를 기점으로 북·중미 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개헌안 통과 직후 성명을 통해 오르테가 부부가 장악한 니카라과 의회가 헌법 개정을 통해 세습적 권력구조를 강화하고 국민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기회를 박탈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지난 15일(현지시간) 열린 미 하원 외교위원회 서반구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마리아 엘비라 살라사르 소위원장은 “오르테가의 독재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다”며 강력한 보복 조치를 경고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의 배경에는 민주주의 훼손 문제와 국가 간 이해관계 대립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2018년 니카라과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해 3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이후 정권이 야권 인사와 언론, 시민사회 전반으로 탄압을 확대하고 2021년 대선 직전 주요 야권 후보들을 잇따라 구금하자 미국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나섰고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그 과정에서 오르테가 정권이 러시아·중국·쿠바·이란 등 미국의 대립국들과 더욱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자 미국은 오르테가 정권 핵심 관계자와 사법·경찰 인사들을 대상으로 자산 동결 등 경제 제재와 비자 발급 제한 조치까지 단행하는 등 압박에 더욱 고삐를 쥐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고강도의 경제적 압박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10월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니카라과산 제품에 대해 최대 100%의 응징적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다만 실제 이행 과정에서 자국 기업과 현지 노동자들에게 미칠 여파를 고려해 수위를 일부 조율했다. USTR은 급격한 충격을 완화하고자 같은 해 12월 니카라과산 품목을 대상으로 2027년 10%, 2028년 15%의 추가 관세를 시차를 두고 단계적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USTR은 니카라과 정부가 인권 침해와 법치 훼손 조치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관세율 인상과 적용 시점 조기화 등 강경 조치를 즉시 재가동하겠다는 방침을 덧붙였는데 이는 단순히 경고로 끝나지 않았다. USTR은 지난 7월 기존 조치와는 별개로 니카라과산 품목에 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무관세 믿고 공장 지었는데”…한세실업·세아상역 등 K-기업 ‘관세 부메랑’ 비상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인구 약 700만명의 국가로 북쪽으로 온두라스, 남쪽으로 코스타리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미국과의 지리적 접근성 덕분에 의류·섬유를 비롯한 노동집약적 제조업 생산기지로 자주 활용됐다. 특히 2006년 CAFTA-DR이 발효되면서 미국 시장을 겨냥한 수출 생산기지로서 입지가 강화됐다. CAFTA-DR 원산지 기준을 충족한 섬유·의류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기본관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니 해외 기업 입장에선 니카라과 생산시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국내 의류기업들도 일찌감치 니카라과를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기업은 한세실업이다. 한세실업은 1998년 7월 수도 마나구아 인근의 봉제공장을 인수하며 니카라과에 진출했다. 현재 한세인터내셔널(Hansae International)과 한세 세바코(Hansae Sebaco) 등 의류 생산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리법인 AALFS DOS를 통해 현지 생산시설 관련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특히 한세인터내셔널은 약 9만9000㎡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현지 고용 인원은 약 4500명에 달한다.
세아상역 역시 니카라과를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아상역은 2000년 SAE-A TECNOTEX를 설립하며 현지에 진출한 이후 생산시설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현재 세아상역이 보유한 니카라과 생산시설은 TECNOTEX Ⅰ·Ⅱ와 EINS Ⅱ 등 3곳이다. 니카라과 자유무역지대 당국에 따르면 SAE-A TECNOTEX는 약 5200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월 400만장, 연간 약 4800만장의 의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신원과 한솔섬유, 신성통상 등도 니카라과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신원은 2021년 5월 생산법인 ‘Fashion Stitch Noah’를 설립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Ebenezer Managua’를 추가로 세우며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한솔섬유는 2010년 현지법인 ‘Handsome Nica’를 설립해 니트 의류를 생산·수출하고 있으며 이후 관련 시설을 꾸준히 강화했다. 1993년 현지에 진출한 신성통상은 현지법인 ‘ISTMO TEXTILE NICARAGUA’를 중심으로 봉제·의류를 생산하는 한편 ‘Universal Design Nicaragua’ 공장을 통해 프린팅 등 부속가공 공정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대(對)니카라과 통상 압박이 강화되면서 현지에 거점을 둔 국내 의류 기업들도 피해를 입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CAFTA-DR 무관세 혜택을 발판 삼아 니카라과를 북미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해 왔으나 미국 정부의 고관세 조치로 인해 가격 경쟁력 하락을 피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미 일부 기업에선 사태의 장기화를 대비해 생산물량 조정이나 대체 생산기지 확보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니카라과 대체국 떠오른 과테말라, 국내 기업들도 생산기지 다변화 잰걸음
국내 의류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니카라과의 관세 리스크를 해소할 대체 생산거점으로 인근 과테말라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CAFTA-DR 가입국인데다 미국과의 지리적 접근성도 과테말라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과테말라 정부와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대미 추가 관세 혜택까지 부여된 부분도 강점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올해 1월 양국 정부는 ‘상호무역협정(Agreement on Reciprocal Trade)’을 체결해 기존 CAFTA-DR을 넘어선 양국 간 교역 확대와 공급망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협정에 따라 미국은 CAFTA-DR 원산지 요건을 갖춘 일부 섬유·의류 품목에 추가 관세 특혜를 부여하기로 했다.
또한 지난해 11월부터 미국이 과테말라의 핵심 거점인 푸에르토케찰 항구 현대화 사업을 지원 중이며 과테말라 정부는 미 육군 공병대와 손잡고 항만 확장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철도망 복원과 수도 과테말라시티의 도시철도 구축 사업 등 미국과의 물류·경제 연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협력 프로젝트가 다각도로 추진되고 있다. 안보 분야에서도 올해 6월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과테말라 대통령이 미 남부사령부 사령관과 만나 마약·초국가적 조직범죄 대응 협력을 강화했다.
일찌감치 과테말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작업에 착수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기업은 신원이다. 2021년 니카라과에 ‘Fashion Stitch Noah’를 설립한 신원은 이듬해 과테말라 제2공장(Daniel Tex)을 세운 데 이어 2024년 제3공장(Fashion Stitch Guatemala)과 제4공장(Omega Tex), 지난해 제5공장(Modas Blue) 등으로 현지 생산 능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신원은 최근 과테말라 지역 투자를 공급망 다변화와 ‘니어쇼어링(Nearshoring·근거리 조달)’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원 관계자는 “과테말라는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중남미 지역의 관세·통상 리스크에 대응하기에 유리한 생산거점이다”며 “니카라과를 둘러싼 통상 리스크에도 대응할 수 있는 지역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미국과 니카라과 간 통상정책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상황에 맞춰 중미 지역 생산물량을 유연하게 운영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한세실업 역시 이미 과테말라를 니카라과의 대체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세실업에 따르면 과테말라 진출 이유는 ‘니카라과를 백업할 원산지(C/O) 개발의 필요성’ 때문이다. 한세실업은 2005년 ‘한세 피눌라(Hansae Pinula)’를 설립하며 과테말라에 생산거점을 최초로 마련한 데 이어 2009년 ‘HS 아패럴(HS Apparel)’을 추가로 설립했다. 이후 2021년 ‘한세 GSN’, 2022년 ‘더 글로벌 과테말라 미차토야(The Global Guatemala Michatoya)’, 2023년 ‘C&T 과테말라’, 2024년 ‘한세 에코스핀(Hansae Ecospin)’ 등을 잇달아 설립하며 현지 사업 기반을 확대해 왔다.
과테말라 현지에서 수십 년째 의류 봉제공장을 운영 중인 한 한국인 사업자는 “과거에는 과테말라가 니카라과보다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미국 바이어들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니카라과 물량을 늘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계속 바뀌면서 단순히 봉제 단가가 저렴한 곳보다 관세나 정치적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안정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과테말라 정부의 관계가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항만·철도 등 인프라 사업에 미국이 직접 관여하고 있고 미국 시장을 겨냥한 투자 논의도 이전보다 자주 들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니카라과에만 공장을 둔 업체들도 현지 생산을 당장 중단하기보다는 통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물량을 돌릴 수 있도록 과테말라 생산라인 확보에 나서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며 “봉제업은 납기가 중요한 만큼 한 국가에서 통관이나 관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생산기지로 얼마나 신속하게 물량을 전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생산기지를 결정할 때 국가 간 외교 관계와 관세정책, 정치적 안정성 등 지정학적 요인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미국 시장을 주요 수출처로 두고 있는 기업들은 생산국과 미국의 관계 변화가 관세와 통상정책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국가에 생산시설이 집중돼 있을 경우 예상치 못한 통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여러 국가에 대체 생산거점을 확보하고 상황에 따라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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