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본사를 둔 중소기업들의 한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성장의 핵심 동력인 인재 유치에 악재로 여겨질 만한 사안들이 끊이지 않아서다. 청년 구직자들의 대기업 쏠림 현상, 정부의 지방 중소기업 우대 정책 및 지역인재 육성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수도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치이고 지방 중소기업에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반응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수도권에 위치한 중소기업 수는 447만7130개에 달한다. 전체 중소기업(849만9552개)의 52.7%에 수준이다.
한 쪽선 인력난, 다른 쪽은 구직난…수도권 중소기업과 청년 구직자들의 동상이몽
직원 8명 규모의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는 김지영 씨(41·여·가명)는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늘었다. 매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회사 규모를 키워보고자 직원을 늘리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원하는 조건의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수개월 째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 채용한 인원은 전무하다. 처음에는 3년 이상의 경력직을 채용하다가 신입까지 문턱을 낮췄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신입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이력서 제출 건수가 경력 직원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적은 편이다. ‘청년 실업난’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직원 30명 규모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상훈 씨(48남·가명)도 수년째 인력 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입 직원 지원 자체가 적다 보니 무리해서 경력 직원을 뽑게 되는데 그 마저도 퇴직금 지급 기준인 1년을 채운 후 또 다시 이직을 시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박 씨는 “요즘 청년 취업난 관련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지지만 정작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 난리다”며 “기업이 성장하려면 좋은 인재가 필수인데 지금은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지방 중소기업 지원정책 관련 의견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소재지와 상관없이 경영 환경 격차를 가장 크게 느끼는 분야로 ‘인력 확보’를 지목했다. 수도권 소재 기업 69.7%, 비수도권 소재 기업 66.2% 등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인력난을 겪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업력 7년 이상, 종업원 5인 이상의 중소기업 58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재지 별 인력 부족 비율은 수도권 29.2%, 비수도권 28.5% 등이었다. 수도권 기업들이 체감하는 인력난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한 셈이다.
수도권 중소기업 인력난의 주된 이유로는 청년 구직자들의 중소기업 외면과 대기업 쏠림 현상이 지목됐다.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대형 사업체에서 일하는 20·30대는 157만8920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대형 사업체 취업자 증가폭(19만1403명)의 약 60%(11만3125명)가 청년층이었다. 반면 300인 미만 중소 사업체 전체 취업자는 역대 최대인 2543만1836명을 기록했지만 20·30대는 741만1979명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 지난해 채용 플랫폼 ‘캐치’가 Z세대 구직자 20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에 지원한 응답자(1732명) 가운데 81%는 ‘중소기업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구직자들이 ‘지원한 기업 유형(복수 응답)’은 ‘대기업’이 60%로 가장 많았고 이어 ▲중견기업(25%) ▲공공기관·공기업(20%) ▲중소기업(19%) 등의 순이었다. 중소기업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로는 ‘낮은 연봉(44%)’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어 ▲커리어 개발 어려움(12%) ▲성장·안정성 부족(12%) ▲사회적 인식(11%) ▲복지제도 미흡(8%) ▲근무환경 열악(8%) 등이 뒤를 이었다.
현금 인센티브에 지역 정착 유도 대책까지…갈수록 좁아지는 수도권 중소기업 인재풀
최근 등장하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수도권 중소기업의 한숨을 키우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수도권 인구 분산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정부 지원 대상을 지방 중소기업으로 한정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일례로 지난달 28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확정된 ‘청년 일자리 회복방안’에 따르면 중소기업 청년이 가입 가능한 우대형 금융 상품(청년미래적금)의 정부 기여금 비율이 12%에서 15%로 상향되는데 지방 중소기업 재직 청년의 경우엔 기여금 비율이 월 납입금의 25%(월 최대 20만원)까지 책정된다. 월 50만원을 납부 기준 수도권과 지방 중소기업 청년의 지원금은 각각 7만5000원, 12만5000원 등이다. 3년 만기 상품일 경우 정부 지원금 차이가 18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계속 정착하게끔 유도하는 정책도 시행 예정이다. 교육부는 지난 8일 ‘초광역 성장엔진 인재육성사업 선정평가 결과’와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앵커) 1차 연도 연차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이 함께 지역 전략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초광역 인재양성 모델 6개를 선정했다. 선정된 모델에는 앞으로 약 4년간 각각 최대 600억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약 1만4000명의 지역인재를 양성한다.
초광역 성장엔진 인재육성사업은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이 지역 전략산업에 필요한 교육·연구·취창업 지원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 인재 양성부터 지역 취업·정주까지 연결하는 게 핵심 골자다. 정부 의도대로라면 지방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인재 유치가 더욱 용이해지지만 반대로 수도권 중소기업들은 채용할 수 있는 인재풀이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수도권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대기업에 치이고 정부 정책을 등에 업은 지방 중소기업에 밀리는 이중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수도권 과밀화 해소 문제 해결을 위한 지방 중소기업 지원 자체는 나무랄 데 없지만 수도권 중소기업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는 만큼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수도권 중소기업들의 어려움도 함께 해결 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이든 수도권이든 중소기업 모두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배려가 한쪽으로 기울 경우 역차별 논란과 이에 따른 반감 여론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 기업과 청년을 지원하는 정책 자체는 필요하지만 인위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구분해 한쪽에만 과도한 혜택을 주는 방식은 옳지 않다”며 “수도권 중소기업 역시 인력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만을 기준으로 지원에 큰 차이를 두면 또 다른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는 만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경제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수도권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수도권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경영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별도의 지원책을 함께 마련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