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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홍보물서 희귀 수집품으로…‘귀한몸’된 영화 전단지의 변신
무료 홍보물서 희귀 수집품으로…‘귀한몸’된 영화 전단지의 변신

과거 영화관 로비 거치대에 진열돼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영화 홍보 전단지가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오히려 돈 주고 구매해야 하는 희소성 높은 굿즈 상품으로 변모하고 있다. 영화 관람 여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챙겨가던 무료 홍보물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실제 관람권 인증을 거쳐야 받을 수 있는 ‘A3 특전 포스터’와 유료 인쇄물이 들어섰고, 과거 전단까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면서 영화 인쇄물이 하나의 수집 시장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과거 영화 전단은 신작 개봉 소식을 알리는 대표적인 오프라인 홍보 창구였다. 영화 줄거리와 감독·출연진, 개봉일 정보가 2단이나 3단 크기 종이에 알차게 담겼다. ‘친구’나 ‘무간도’,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인기를 끈 작품들은 개봉 시기와 편수에 따라 여러 종의 전단이 배포돼 영화 팬들의 수집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마케팅의 중심축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SNS, 온라인 예고편 등으로 이동하면서 종이 전단은 급격히 설 자리를 잃었다. 수만 장씩 인쇄해 전국 극장으로 운송하는 물류비와 남은 물량을 폐기하는 처리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2023년을 기점으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로비 내 전단 비치 중단을 잇달아 공지하면서 종이 전단 배포는 대부분 멈춰 섰다. 일각에선 환경 규제 탓이라는 시각도 있었으나 자원재활용 관련 법령상 규제 대상은 합성수지 코팅이 들어간 광고선전물에 한정되며 일반 종이 전단은 법적 금지 대상이 아니다. 극장과 배급사들이 비용 절감과 자발적 친환경 경영 차원에서 전단 생산을 줄인 셈이다.


▲ 코엑스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매표소 사진. 영화 ‘호프’와 ‘스파이더맨’의 관람 특전 포스터가 조기 소진됐음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르데스크
▲ 코엑스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매표소 사진. 영화 ‘호프’와 ‘스파이더맨’의 관람 특전 포스터가 조기 소진됐음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르데스크

 

종이 전단이 퇴장한 자리는 고부가가치 유료 인쇄물과 한정판 특전이 채웠다.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관람객이 원하는 스틸 사진과 문구를 골라 카드로 출력하는 유료 포토카드 서비스를 정착시켰다. 온라인 인쇄 업체에서도 A3 포스터 1장당 5000원 안팎을 받고 소량 제작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식 전단을 구하지 못한 관객들의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서울과 군산 등지에서는 공식 수입 영화 포스터와 OST 음반, 엽서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영화 굿즈 전문점까지 등장해 성업 중이다.


무엇보다 영화 인쇄물 유통의 핵심은 극장의 ‘A3 선착순 관람 특전’으로 재편됐다. 극장들은 과거처럼 전단을 거치대에 올려두지 않고 영화를 실제 관람한 관객에게만 개봉 주차별·상영관별로 서로 다른 디자인의 A3 포스터를 선착순 증정하고 있다. 2024년 재개봉한 ‘조커’를 비롯해 2025년 ‘스윙걸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 등이 모두 지정된 기간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정판 A3 포스터를 배포했다. 특정 감독전의 경우 상영작마다 각기 다른 포스터를 증정해 모든 종류를 모으려면 여러 편의 관람권을 각각 구매해야 했다.


배포 수량과 기간이 정해진 특전 포스터는 즉각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프리미엄이 붙어 재판매되고 있다. 7일 중고거래 플랫폼을 취재한 결과 영화 ‘호프’의 경우 개봉 2주차 메인 A3 포스터가 5000원~6500원, 3주차 캐릭터 포스터가 7000원에 등록됐다. 특수관 관람객에게만 지급된 ‘호프’ 특별상영 방식 포스터는 관람권 가격을 웃도는 2만원에 판매 희망가가 올라왔다. ‘기븐 바다로’ 리플릿·A3 포스터 세트는 3만원, ‘파라노만’ 굿즈 세트는 1만8000원에 거래 글이 게시됐다.

 

과거 극장 로비에서 공짜로 집어가던 고전 영화 전단들의 몸값은 특전 포스터를 훌쩍 뛰어넘는다.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2000년대 초반 개봉작 전단이 ‘희귀 수집품’으로 분류돼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 애니메이션인 2003년 개봉작 ‘붉은 돼지’ 전단은 1만3000원, 2008년 개봉한 ‘벼랑 위의 포뇨’는 1만630원,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전단은 2만원에 판매 희망가가 책정됐다. 2003년 개봉 후 10주년 재개봉 당시 배포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팜플렛 역시 2만원에 등록됐다.

 

▲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과거 무료 배포 전단이 판매되는 사진. 수천원에서 수만원대 판매 희망가로 등록돼 있다. [사진=번개장터 갈무리]
▲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과거 무료 배포 전단이 판매되는 사진. 수천원에서 수만원대 판매 희망가로 등록돼 있다. [사진=번개장터 갈무리]

 

개별 낱장뿐 아니라 테마별 묶음 판매도 성행 중이다. 마블(Marvel)과 DC 코믹스 시리즈 영화 전단 묶음은 9000원, 인기 극장판 애니메이션 전단 모음은 7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앞서 확인된 2000년대 초반 한국·외국 영화 전단 450장 모음집이 8만원에 등록된 사례처럼, 시간이 흐르며 완전히 절판된 과거 종이 전단이 마니아층 사이에서 ‘아카이빙 자산’으로 취급받으며 안정적인 중고 시세를 형성한 셈이다.

 

유지헌 씨(26·남)는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의 영화가 개봉하면 1주차와 2주차 포스터를 모두 모으려고 일부러 극장을 두 번 이상 찾는다”며 “예전에는 로비에서 무료로 집어가던 전단이 이제는 시간 맞춰 오픈런을 뛰거나 중고 장터에서 웃돈을 주고 구해야 하는 귀한 굿즈가 됐다”고 말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영화 전단은 무료 홍보물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희소성과 추억, 팬덤이 결합된 수집품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며 “특히 한 번 배포된 뒤 다시 제작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공급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구조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영화 전단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특정 작품과 배우, 개봉 당시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생긴다”며 “팬들에게는 자신의 취향과 팬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라는 의미도 지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영화 홍보의 중심축이 SNS와 영상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종이 전단 발행 자체가 급감한 점도 큰 영향을 줬다”며 “미디어의 디지털화가 오히려 아날로그 인쇄물의 희소성과 소장 가치를 끌어올리는 역설적인 현상을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 속 Q&A
Q1. 종이 전단의 퇴장 이후 등장한 유료 인쇄 서비스와 오프라인 영화 굿즈 전문 매장의 유통 현황은?
A. 극장들은 원하는 사진과 문구를 출력하는 유료 포토카드 서비스를 정착시켰고 온라인 인쇄 업체는 A3 포스터를 장당 5000원 안팎에 소량 제작해 준다. 또한 서울과 군산 등지에는 공식 수입 포스터, OST 음반, 엽서 등을 판매하는 영화 굿즈 전문점이 들어서 성업 중이다.
Q2.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2023년을 기점으로 종이 전단 비치를 중단하게 된 실제 배경과 환경 규제 오해의 진실은?
A. 모바일 앱과 SNS 등 온라인 마케팅 확산으로 수만 장의 인쇄·물류비와 폐기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환경 규제는 합성수지 코팅 선전물만 해당돼 일반 종이 전단은 법적 금지 대상이 아니며, 극장과 배급사가 비용 절감과 자발적 친환경 차원에서 중단했다.
Q3. 과거 무료로 집어가던 영화 전단들의 중고 거래 시세는?
A. ‘붉은 돼지(2003)’는 1만3000원, ‘벼랑 위의 포뇨(2008)’는 1만630원, ‘모노노케 히메’는 2만원에 판매 희망가가 책정됐다. 10주년 재개봉 당시 배포된 ‘올드보이’ 팜플렛 역시 2만원,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 팜플렛은 2만9560원에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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