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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대한민국 재벌 중 한화만 가진 유일한 무기 ‘김승연 DNA’
[영상]대한민국 재벌 중 한화만 가진 유일한 무기 ‘김승연 DNA’

 

여러분, 이번에는 대한민국 재계를 관통하는 아주 뜨거운 주제죠. 바로 ‘신용과 의리 경영의 승부사’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재계에서 ‘의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과 인물인데요. 바로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입니다. 사실 김승연 회장 하면 특유의 카리스마 섞인 보스 기질이 먼저 떠오를 텐데요. 하지만 그가 오늘날의 거대한 한화그룹을 만들어낸 진짜 무기는 단순한 카리스마가 아니라 뼛속 깊이 새겨진 ‘의리와 신의’를 바탕으로 한 승부사 기질이었습니다. 특히 20대에 그룹 총수가 되어 숱한 위기를 돌파해 낸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여느 재벌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궤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29살의 앳된 청년은 어떻게 실력과 연륜을 갖춘 임원들을 장악하고 재계의 거인들에게 인정받으며 지금의 한화그룹을 키워냈을까요?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꽉꽉 채워서 한화그룹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 29살 젊은 총수가 물려받은 ‘다이너마이트 김’의 진짜 유산


시계를 1981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의 창업주죠. ‘다이너마이트 김’ 고(故) 김종희 회장이 59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합니다. 유언장 하나 남기지 못한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는데요. 이때 그룹을 물려받을 장남, 바로 김승연 회장의 나이는 고작 29세였습니다. 서른도 안 된, 경영 수업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젊은 청년이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총수 자리에 덜컥 앉게 된 겁니다.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핏덩이가 뭘 알겠냐” “한국화약은 이제 끝났다” 등 비관론이 파다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승연 회장에게는 아버지가 물려준 엄청난 유산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책임과 의리, 신의의 DNA’였습니다. 


지금이야 뭐 재계를 통틀어 ‘의리 경영의 아이콘’ 하면 김승연 회장을 가장 먼저 떠올릴 텐데요. 사실 그의 아버지인 고 김종희 회장은 ‘의리경영의 아이콘’의 원조나 다름없던 인물입니다.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의리 경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 하나를 꼽자면 1977년에 발생한 끔찍한 비극 ‘이리역 폭발 사고’를 말할 수 있는데요. 당시 한국화약의 화약을 운송하던 열차가 폭발하면서 익산(이리) 시내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습니다. 기업이 문을 닫아도 모자랄 엄청난 위기였죠. 이때 김종희 회장은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그는 핑계를 대거나 꼬리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무려 당시 돈 90억 원, 현재 가치로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사재를 전부 털어 피해 보상금으로 내놓습니다.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시민들에게 보상하겠다”라며 무한 책임의 자세를 보인 것이죠. 기업인의 진짜 책임과 의리가 무엇인지 목숨 걸고 보여준 이 묵직한 뒷모습을 20대의 김승연 회장은 가장 가까이에서 고스란히 지켜보고 배웠던 겁니다.

 

# 29세 승부사의 과감한 베팅, 그리고 100배의 기적


그룹 회장이 된 김승연 회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사실 밖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룹 내부에도 아버지뻘 되는 임원들의 눈빛에 불신이 가득했죠. 29살 청년회장에겐 사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의 시선보다 더욱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함께 손발을 맞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외부의 평가도 돌려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김승연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82년 재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엄청난 승부수를 던집니다. 당시 극심한 적자에 시달리며 매물로 나와 있던 한양화학(현 한화솔루션)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에 뛰어든 건데요. 이에 대해 그룹 내부 임원들은 물론이고 주거래 은행마저 “적자 기업을 떠안으면 한화 전체가 망한다”며 결사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석유화학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다”며 뚝심 있게 인수를 밀어붙였고 마침내 성공적으로 인수를 마무리 짓게 됩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요? 인수 1년 만에 기적처럼 흑자 전환에 성공합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던 이 베팅 하나로 한화는 화약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석유화학의 절대 강자로 단숨에 도약하게 되죠. 이때부터 나이 지긋했던 임원들은 새파란 회장에게 넙죽 엎드리며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김승연 회장이 만들어 낸 경영 성과를 팩트로 짚어 볼까요? 1981년 김승연 회장이 29살에 그룹을 물려받았을 때 한화의 매출액은 약 730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화그룹은 자산 총액 약 149조 5060조원(2026년 공정위 기준), 재계 서열 5위의 거대한 제국이 됐습니다. 그룹 전체 매출은 80조 원에 육박하고요. 7천억 원대 회사를 물려받아 규모를 약 100배 가까이 불려버린 겁니다. 그야말로 천부적인 승부사 기질을 앞세운 압도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건희·정주영이 인정한 진짜 사나이


사실 의리나 뚝심 같은 건 자기 입으로 떠든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인정해야 진짜 그 사람의 자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김승연 회장의 그 ‘상남자’ 기질과 의리를 가장 깊이 인정했던 사람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물, 바로 삼성그룹의 고(故)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김승연 회장보다 딱 10살이 많았는데요. 사석에서는 김승연 회장을 “승연아”라고 부르며 친동생처럼 아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의 깊은 의리를 증명하는 결정적이고도 놀라운 팩트가 바로 2014년에 있었던 ‘삼성-한화 빅딜’입니다. 당시 한화가 삼성의 방산과 화학 계열사 4곳을 약 2조 원에 통째로 인수하는 초대형 거래가 있었는데요. 보통 이런 수조 원대 M&A는 양측 실무진이 멱살도 잡고 피 튀기게 협상해도 깨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거래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속전속결로 타결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이건희 회장, 그리고 뒤를 이은 이재용 부회장과 김승연 회장 사이에 “우리가 남이가, 서로 믿고 가자”는 끈끈한 신뢰와 의리가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재계에서는 오너들 간의 절대적인 신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기적 같은 딜’이라는 평가가 우세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 김승연 회장의 그릇을 단번에 알아본 거인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20대 후반의 새파란 김승연 회장이 앞서 말한 한양 화학 인수를 배짱있게 밀어붙일 때였어요. 바로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는데요.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 소식을 듣고 무릎을 ‘탁’ 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녀석 참 물건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포 하나는 진짜 사내답다” 대한민국 최고의 자수성가이자 승부사였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눈에도, 젊은 김승연 회장의 배짱과 의리 경영이 범상치 않아 보였던 겁니다.


# 한화그룹에 이식된 총수 일가의 ‘신용·의리 DNA’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 바뀐다고 해서 국민 정치 성향도 전부 같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기업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런데 김승연 회장은 이걸 가능하게 만듭니다. 신용과 의리 경영을 한화그룹에 이식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죠. 과연 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완벽한 언행일치였습니다. 일례로 지난 2010년 국가적인 비극이었던 천안함 사건 당시, 김승연 회장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전격적인 지시를 내립니다. 바로 “천안함 희생자 46용사의 유가족 중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을 한화그룹에서 전부 채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일회성 위로금이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평생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진짜 의리였죠. 실제로 이 약속은 지켜졌고 현재까지 30명이 넘는 천안함 유가족들이 한화그룹 계열사에 입사해 떳떳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라크 광어회 배달 스토리인데요. 2014년 한화건설이 이라크 비스마야에서 10조 원 규모의 신도시 건설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이슬람 무장단체인 IS가 바그다드 인근까지 진격하면서 현지 직원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김승연 회장이 방탄조끼를 입고 특별기로 훌쩍 현장을 찾아갑니다. 직원들을 버려두고 올 수 없다는 것이었죠. 여기서 더 놀라운 건 비행기에 광어 600인분을 싣고 갔다는 겁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공포에 떠는 직원들에게 고향의 맛을 먹이겠다고 한국에서부터 신선한 횟감을 싣고 간 거죠. 그리하여 폭탄이 터지는 현장에서 직원들과 회를 나눠 먹으며 “내가 여러분을 끝까지 지키겠다”라고 약속한 당시의 일화는 한화그룹 직원들의 가슴에 ‘우리 회장님은 직원들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라는 의리의 DNA를 완벽하게 각인시켰습니다.


# 재계를 대표하는 승부사의 진짜 무기 ‘결국 사람’

 

29살에 아버지를 잃고 벼랑 끝에서 그룹을 떠안았던 청년은 이제 칠순을 넘긴 백전노장이 되어 재계 서열 5위의 거대한 제국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4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룹을 100배로 키워낼 수 있었던 비결은 미래를 점치는 뛰어난 직감도, 이해득실을 따지는 냉철한 계산 실력도 아니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지는 두둑한 배짱과 내 사람, 내 직원, 내 파트너는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지켜낸다는 묵직한 ‘의리’였습니다. 기업 경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절대 거대한 제국을 세울 수 없다는 이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 그것이 바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는 ‘승부사의 진짜 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4인용 책상이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사 속 Q&A
Q1. 김승연 회장은 언제부터 한화그룹을 이끌었나요?
A. 김승연 회장은 1981년 아버지인 김종희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29세에 그룹 회장에 올랐습니다. 아버지가 강조했던 책임과 신용, 의리를 경영의 바탕으로 삼아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Q2. 한화그룹이 석유화학 분야의 강자로 도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김승연 회장은 1982년 그룹 내부와 주거래 은행의 반대에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를 추진했습니다. 석유화학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판단한 결정으로, 인수 이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한화의 사업 영역을 넓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Q3. 김승연 회장의 ‘신용·의리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무엇인가요?
A.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의 취업을 지원하고, 불안한 치안 상황 속에서도 이라크 비스마야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일회성 지원을 넘어 유가족의 생계를 돕고 어려운 현장의 직원들과 함께하며 사람과의 신뢰를 중시하는 경영 철학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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