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600만명 안팎의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SME)으로 구성돼 있지만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평가에서 서울을 추월한 데 이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한국의 2배를 훌쩍 웃도는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낮은 법인세와 창업기업 세제 혜택, 정부와 민간 벤처캐피털(VC)의 공동투자 등 적극적인 친기업 정책과 함께 중소·벤처기업을 주요 일자리와 성장 기회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싱가포르 스타트업 경쟁력 18위➞8위 껑충…친기업 생태계가 만든 中企 선호 문화
싱가포르는 최근 비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수, 협소한 내수시장 등의 한계를 이겨내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중소·벤처기업 중심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조사기관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이 발표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GSER) 2026’에 따르면 올해 싱가포르는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8위를 기록하며 서울(9위)을 앞질렀다. 서울이 세계 8위, 싱가포르가 9위를 각각 기록한 지난해와는 정반대 결과다. 또 다른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평가기관 스타트업블링크(StartupBlink)가 발표한 ‘2026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지수’ 조사에서도 싱가포르는 세계 4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범위를 한정했을 땐 1위에 올랐다.
싱가포르는 경제력 지표도 우수한 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만8814달러에 달한다. 한국(3만6227달러)의 약 2.7배 수준이다. 같은 기간 싱가포르 경제성장률는 5.0%에 달했다. 반면 한국은 1%대에 머물렀다. 글로벌 벤처자금도 싱가포르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에 따르면 2023년 동남아시아 기술 스타트업에 유입된 벤처캐피털(VC) 투자금 86억달러(한화 약 11조7800억원) 가운데 싱가포르 스타트업이 유치한 금액은 약 43억달러로(한화 약 5조8900억원)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싱가포르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타트업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와 기업, 사회 구성원 간의 끈끈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적극적인 친기업 정책을 앞세워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 정부는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과세소득에 단일 법인세율(17%)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 법인세율 21%보다 4%p, 한국의 최고 법인세율 25%에 비해 8% 각각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일정 요건을 충족한 신생기업에는 추가적인 세금 감면 혜택도 제공한다. 적격 신생기업의 경우 창업 초기 3년 동안 매년 과세소득 10만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1억원) 이하 구간에 대해 75%, 이후 10만싱가포르달러 구간에 대해서는 50%의 세금 면제 혜택을 부여한다.
스타트업은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을 적극적인 투자로 치환하고 있다. 당장 인건비 투자부터 그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스타트업 채용정보 플랫폼 스타트업 잡스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연봉을 공개한 스타트업 채용공고 426건을 분석한 결과, 연봉 중간값은 11만4556싱가포르달러(한화 약 1억2350만원)에 달했다. 싱가포르 전체 근로자의 소득 수준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사이버보안 등 전문 기술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 스타트업을 비롯한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보상 경쟁도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트업이 포함된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글로벌 인사·채용기업 랜드스타드(Randstad)가 싱가포르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중소기업(SME)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직장 생활을 초기 스타트업에서 시작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도 57%에 달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취업 선호도가 낮은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상반기 대졸 청년 구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취업 희망자는 11.4%, 벤처·스타트업 취업 희망자는 3.5%에 각각 그쳤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가 개별 기업의 성장을 넘어 국가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싱가포르의 정책과 사회적 환경을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경제로 도약하려면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적인 직장이나 특정 전문직에만 몰리는 것이 아니라 벤처·스타트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성장시키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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