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극장가가 치솟는 임차료와 제작비 부담, 관객 양극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형 상업 뮤지컬과 스타 배우 중심의 공연으로 관객이 몰리는 사이 소극장들은 ‘품앗이 관람’과 더블·트리플 캐스팅, 직장인 연기반 운영 등으로 부족한 수익을 메우고 있다. 최근에는 고정비를 줄이는 프로젝트형 제작과 재공연·지역 유통을 통해 한 작품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한국 연극의 산실로 불려온 대학로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운영 여건은 매년 악화하고 있다. 임대료와 제작비는 꾸준히 오르는 반면 일반 예매 수익만으로 배우 출연료와 무대 제작비조차 충당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여기에 과거 직접적인 임차료 지원 성격이 강했던 공공 지원도 조건부 대관료 할인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극장들은 스스로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관객과 수익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나 스타 배우를 앞세운 상업 공연으로 관객이 집중되면서 순수 연극이나 소규모 창작 뮤지컬이 중심인 대학로 소극장의 객석 점유율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객석 일부를 다른 극단 동료 배우들의 ‘품앗이 관람’으로 채우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연극시장 전체는 통계상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연극 티켓판매액은 531억원으로 전년 동기 181억원 대비 194.3% 급증했다. 문제는 성장세가 대형 극장과 스타 캐스팅 작품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KOPIS의 2025년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무용·복합 등 순수예술 장르는 공연건수 기준 전체 시장의 76.3%를 차지했지만 티켓판매액 비중은 40.1%에 그쳤다.
티켓은 안 팔리는데 임대료·제작비는 상승…소극장 생존 기반 흔들
극장주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옥죄는 것은 부동산 임차료다. 대학로 일대 소극장 월 임대료는 위치와 규모에 따라 300만원대부터 1000만원을 웃도는 곳까지 편차가 크다는 게 현장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층고가 높은 지하 공간을 선호하는 소극장의 특성 때문에 일부 건물에서는 지하층 임대료가 지상 상가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오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대관료 역시 하루 50만~8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대학로 소극장을 운영하는 이준석 대표는 “식당이나 주점처럼 테이블 회전이 빠른 업종과 달리 극장은 하루 1회 남짓 공연을 올리는 구조인데도 건물주들은 일반 상가와 동일한 잣대로 월세를 책정한다”며 “지하 월세가 지상 1층 상가 수준으로 뛰다 보니 대관료를 올려야 하고 결국 창작 단체들이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대관료로 쏟아붓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됐다”고 말했다.
제작비와 인력 수급 구조의 불균형도 심각하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이 대표는 “연극 관련 학과 등에서 매년 3만명 안팎의 예술 인력이 배출되며 극단 창업과 프로젝트성 창작이 쏟아지지만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 내부 경쟁만 과열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상 2주간 무대를 올리는 데 약 2000만원 안팎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대관료와 무대 제작비, 인쇄·홍보비 등을 제외하면 3개월 넘게 연습에 참여한 배우들에게 돌아가는 인건비는 월 50만~100만원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작비는 오르지만 관객 이탈을 우려해 티켓 가격을 같은 폭으로 인상하기 어려워 비용 부담이 극장과 극단, 배우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공공 지원 방식의 변화도 소극장이 체감하는 어려움의 한 축이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대학로 민간 소극장을 대상으로 ‘서울형 창작극장’ 사업을 운영해왔다. 초기에는 선정 극장에 임차료를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했고 이후에는 임차료 전액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식도 운영됐다.
현재는 선정된 소극장이 순수예술 단체에 기존 대관료보다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장을 제공하면 그 차액을 지원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26년에는 21개 소극장이 사업 대상에 선정됐다. 창작단체의 대관 부담을 낮출 수는 있지만 과거처럼 극장이 직접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지자체와 유관 기관의 반복적인 행정 점검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극장 아트홀의 정송모 대표는 “화재 예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종로소방서, 소방청, 종로구청,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청 등이 제각각 현장 검사를 나오면서 무대 설치나 연습이 중단되는 일이 빈번하다”며 “행정 서류 요구와 과태료 압박 등 행정 편의주의적 규제가 영세 극장의 피로감을 가중시킨다”고 전했다.
‘품앗이 관람’부터 프로젝트 제작까지…“폐업 늦추기 아닌 자생력 키워야”
운영 여건이 악화하면서 대학로 소극장들은 저마다 생존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유료 관객이 부족하자 더블·트리플 캐스팅을 활용해 출연 배우별 지인 관객을 확보하거나 공연 외 시간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연기반을 운영해 수입을 보충하는 극장이 늘었다.
동료 극단끼리 서로 공연을 봐주는 ‘품앗이 관람’도 객석을 유지하기 위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극장은 ‘서울형 창작극장’ 등 대관료 할인 사업에 참여해 순수예술 단체에 낮은 가격으로 무대를 제공하고 지원금으로 차액을 보전하고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새로운 유료 관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장의 폐업을 늦추는 임시방편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에는 비용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대관료와 연습실 비용, 인건비, 무대 제작비 등 고정비 상승분을 티켓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만큼 작품 특성에 맞춰 배우와 창작진을 유동적으로 구성하는 프로젝트형 제작이 대표적이다.
한 번의 공연으로 작품을 끝내지 않고 초연 이후 재공연이나 연극제 참가, 지역 공연 유통 등으로 무대를 확장하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대본 개발과 연출, 무대 제작 등에 들어간 비용을 여러 공연에 분산시키면서 작품의 생명력을 늘리고 새로운 관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소극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만큼 새로운 관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영화와 OTT, 유튜브, 숏폼 등 대체 콘텐츠가 늘어난 상황에서 소비자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대학로까지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극단 ‘무아’를 이끄는 박선혜 대표 겸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방송영화연기과 교수는 “기존 연극 관객 풀 안에서 경쟁하는 것만으로는 대학로 전체의 시장을 확장하기 어렵다”며 “OTT나 숏폼이 대체할 수 없는 연극만의 현장성, 배우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생생한 교감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대학로의 지속가능성은 ‘왜 관객이 지금 이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까지 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작품과 창작자가 끊임없이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많은 소극장이 한성대나 성신여대 등 외곽으로 밀려나며 창작 기반의 안정적인 정주 여건이 무너졌다”며 “관객층이 2030 여성층에 한정돼 정체된 상황에서 악화된 제작 여건으로 인해 높아진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자생력을 회복하기 위한 구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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