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부동산 악몽’이 재현되는 분위기다. 국민 정서와 괴리된 발언이나 정책의 여파로 갈수록 민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특히 나름 청년을 배려한다고 내놓은 발언이나 정책이 오히려 청년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평소 청년세대에 대한 정부·여당의 인식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눈높이를 맞출 노력을 하긴 커녕 본인들 멋대로 청년세대를 판단하는 행태를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청년들을 끊임없이 무시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나온다.
폐버스 청년주택, 욕조 고시원 등 연이은 망언 논란에 성난 청년층 민심
폭등하는 집값과 고강도 부동한 규제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이달 들어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발언들이 연거푸 등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달 초 황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은 ‘폐버스 청년주택’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황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에 보트하우스가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 해 대학가 청년들에게 단기성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한다”고 적었다.
해당 게시물은 즉각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황 의원은 물론 소속 정당인 민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플랫폼을 중심으로 폐버스를 개조한 주택을 묘사한 조롱 성격의 AI이미지가 공유되는가 하면 ‘반포 센트럴 버스하우스’ ‘한남더휠’ 등 각종 기상천외한 이름까지 거론됐다. 단순한 비난을 넘어 풍자로까지 확산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논란의 강도도 거세졌다. 특히 앞서 황 의원의 문체부 장관 청문회 당시 딸이 1년 학비만 4200만원에 달하는 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재언급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결국 황 의원은 사태 발발 3일 만에 정식으로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약 10일 후인 지난 12일엔 국토부가 또 다시 청년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일 고시원 호실 내 욕조 설치를 허용하고 책상 등 학습시설 설치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시원이 1인 가구 주거공간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안전과 무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행정예고 이후 또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플랫폼 등에서는 ‘욕조 고시원’ 발상 자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앞서 ‘폐버스 청년주택’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조롱·풍자 성격의 AI 이미지를 활용한 밈(meme)도 대거 등장했다.
해당 게시물의 댓글 창에는 “고시원 환경을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집값은 해결할 생각 없다는 증거” “당신들 자식들한테 먼저 살라고 해라” “폐버스에 이어 고시원까지, 청년들을 얼마나 우습게 알면 그런 생각이 드나” “지금이 80년대냐, 40년 전 청년 시절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부터 생각 좀 해라” “가뜩이나 집값 올라서 좌절하는데 정치인들 하는 말 들어보니 이 나라는 틀렸다” 등 격양된 반응이 쏟아졌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반응을 종합했을 때, 단순히 정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부·여당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청년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보단 자신들의 잣대로 청년들을 규정해버리는 태도에 실망감과 분노감을 표출하는 성격이 짙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청년 주거문제의 본질은 살만한 집의 가격과 공급임에도 정책에 실패한 기성세대·권력층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실망감, 또 ‘청년들을 폐버스·고시원에 살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청년들을 경시하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분노감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층이 반발하는 이유는 단순히 폐버스라는 주거 형태 자체보다 구조적 문제의 해법 대신 주거 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된 게 크다”며 “청년 입장에선 ‘우리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등 돌린 민심은 요지부동…정부·여당 차기 총선·대선 ‘경고등’
주목되는 사실은 논란을 초래한 당사자들이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면서 언급이 잦아들긴 했지만 이미 등 돌린 여론까진 되돌리진 못 했다는 점이다. 당장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만 보더라도 부동산 관련 망언 논란이 불거지기 전과 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7월 20~24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무선 자동응답, 응답률 3.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0%p)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6.3%, 부정평가는 49.5% 등이었다. 전주 대비 긍정평가는 2.1%p 하락한 반면 부정평가는 1.5%p 상승했다.
연령에 따라 긍정·부정 평가 비율은 사뭇 달랐다. 40대(51.2%), 50대(57.1%), 60대(51.5%) 등에서는 긍정 평가 과반 이상을 기록한 반면 18~29세(62.6%), 30대(58.0%), 70세 이상(52.0%) 등에서는 부정 평가가 비교적 높았다. 아울러 지난 23~24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집계한 정당 지지도 결과(무선 자동응답 방식, 응답률 4.3%,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는 민주당 41.3%, 국민의힘 40.6%, 조국혁신당 3.3%, 진보당 1.0%, 개혁신당 2.2%, 기타 정당 2.0%, 무당층 9.6% 등이었다. 민주당은 1.8%p 하락한 반면 국민의힘은 0.6%p 상승했다.
같은 조사 기관에서 지난달 18∼2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0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무선 자동응답, 응답률 3.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2%p)에 따르면 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약 한 달 전 실시한 조사 결과 보다 6.1%p 하락한 40.2%로 집계됐다. 반면 부정 평가는 7.4%p나 상승한 56.9%를 기록했다. 연령대별 지지율 평가에선 청년 세대의 지지율 하락이 특히 두드러졌다. 18∼29세 부정평가 69.2%, 30대 부정평가 71.8% 등이었다. 한 달 전에 비해 부정평가가 18~29세 6.6%p, 30대 13.8%p 각각 급등했다. 통상 30대는 결혼, 출산 등으로 인해 부동산 이슈에 가장 민감한 연령대로 평가된다.
지난달 20∼2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무선 자동응답, 응답률 2.9%,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에서는 민주당이 41.9%, 국민의힘이 37.6% 등을 각각 기록했다. 민주당은 전주 대비 6.0%p 하락한 반면 국민의힘은 5.%p 상승했다. 연령별로도 민주당은 대부분 세대에서 약세를 보였다. 70대 이상에서 11.7%p, 30대에서 8.7%p, 40대에서 5.3%p, 20대에서 5.1%p, 50대에서 3.7%p, 60대에서 2.3%p 각각 하락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연이은 부동산 망언 논란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격하게 커진 만큼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 기조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차기 총선, 나아가 차기 대선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은 이미 부동산 정책 실패로 대선, 지방선거를 연거푸 패배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은 당시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지금은 정권 출범 1년 조금 넘었음에도 과거와 같은 상황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음 총선까지 아직 1년 넘는 시간이 남은 만큼 지금이라도 깨끗하게 실책을 인정하고 정책 기조에 대대적인 변화를 줘야 한다”며 “사실상 올해까지가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최근 20~30대에서 정부에 대한 부정평가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청년 주거와 관련한 논란이 반복되면 기존 불만을 강화하는 구조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당연히 청년층 입장에서 ‘정부가 우리의 현실을 모른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향후 선거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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