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중국법인에서 833억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해외법인의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출금은 직접 집행하면서 원리금 회수는 외부 온라인 플랫폼에 의존하는 구조를 운영하고도 약 7개월 동안 이상 징후를 잡아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은행 해외법인은 최근 수년간 중국과 인도네시아 현지 감독당국으로부터 대외보고 누락과 대출 취급 오류, 전산센터 업무중단, 거래보고 지연 등으로 반복해서 제재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개별 사고의 성격은 다르지만 해외법인의 업무관리와 외주업체 통제, 전산·보고체계 등 여러 영역에서 문제가 이어진 만큼 본점 차원의 관리·감독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00억 금융사고 터진 기업은행 해외법인…반복된 제재에도 내부통제 ‘구멍’
이번 사고는 기업은행 해외사업의 핵심 수익원 가운데 하나인 중국법인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파장이 크다. 중국법인은 현지 비은행 금융기관과 제휴해 비대면 대출을 취급하면서 대출금은 직접 차주에게 집행했지만 원리금 상환은 제휴사가 계약한 외부 온라인 플랫폼의 지정계좌를 거쳐 사후 정산받는 구조를 운영했다. 외부 업체가 차주 모집뿐 아니라 상환 과정의 핵심 단계까지 맡고 있었지만 실제 자금 흐름과 전산상 상환 정보가 일치하는지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면서 사고 규모가 800억원대로 불어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업은행 중국법인은 현지 비은행 금융기관 A사와 협약을 맺고 차주들에게 비대면 대출을 실행했다. A사는 온라인 대출 플랫폼 B사를 통해 차주 모집과 원리금 상환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기업은행이 대출금을 차주에게 직접 지급한 반면 차주가 상환한 원리금은 B사가 지정한 계좌를 거쳐 기업은행이 사후 정산받는 방식이었다.
사고는 B사가 이 같은 구조를 악용하면서 발생했다. B사는 차주들의 상환계좌를 임의로 변경해 납부된 원리금을 기업은행으로 보내지 않고 유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자금은 기업은행에 입금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금이 정상적으로 상환된 것처럼 전산정보까지 조작했다.
피해는 기업은행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갚은 차주들에게까지 번졌다. 일부 차주는 돈을 상환하고도 기업은행 전산에서는 미상환 또는 연체 상태로 처리돼 추심을 받거나 신용도가 하락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행은 이번 금융사고 규모를 833억7600만원으로 공시했다. 현지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실제 손실액과 회수 가능 금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사고가 장기간 이어졌음에도 기업은행의 자체 통제 시스템이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사고 발생 기간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올해 6월 29일까지 약 7개월이다. 기업은행은 원리금 상환 내역과 실제 입금액을 매일 대조·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지난 6월 24일 정산금이 입금되지 않고 차주 민원이 잇따른 뒤에야 문제를 처음 인지했다.
외부에서 이미 나타난 위험 신호도 제때 포착하지 못했다. 중국 현지 금융기관 5곳은 지난 3~4월 B사를 협력기관 명단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업은행은 사고를 파악하기 전까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제휴업체와 외부 플랫폼에 대출 상환 과정의 상당 부분을 맡기면서도 해당 업체의 신용위험이나 현지 금융사와의 거래 변화 등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기업은행은 사고 발생 이후 차주가 B사를 거치지 않고 상환 금액을 직접 조회하거나 조기 상환할 수 있는 별도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800억원대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직접 상환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내부통제보다 사후 대응에 그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신 의원은 “기업은행은 대출금을 직접 내주면서도 회수는 외부 플랫폼에 맡기다 800억원대 사고가 터지고서야 직접 상환 체계를 마련했다”며 “해외법인의 부실한 내부통제는 물론 은행의 사후 보고만 기다리는 금융당국의 안일한 감독 행태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대외보고 누락부터 대출 오류·전산중단까지…해외법인 제재 반복, 본점 관리체계 도마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기업은행 해외법인이 과거 현지 행정·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제재 내역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업은행 공시자료를 보면 중국법인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대외보고와 대출심사, 전산운영 등 서로 다른 업무에서 현지 감독당국의 과태료 처분을 반복적으로 받았다. 올해 들어서는 인도네시아법인도 거래보고 지연으로 중앙은행의 행정제재를 받았다.
중국법인은 2022년 12월 쑤저우외환관리국으로부터 대외보고 누락과 송금자료 확인 미흡을 이유로 57만5299위안(약 1억18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당시 제재 대상은 쑤저우분행으로 해외담보 외환관리규정 위반이 문제가 됐다. 기업은행 측은 과태료를 납부한 뒤 내부감사를 강화하고 전산통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도 중국법인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2023년 10월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 톈진감독국은 중국법인 총행에 경영평가지표 개선 미흡과 대출 취급 오류 등을 이유로 50만위안(약 1억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은행업 금융기관의 실적평가 감독관리와 상업은행 부동산대출 리스크관리 관련 지침이 근거가 됐다. 기업은행은 과태료를 납부하고 내규 정비와 업무심사 강화를 재발방지 대책으로 내놨다.
지난해 1월에는 전산 인프라 관리 문제가 제재 사유로 등장했다.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 톈진감독국은 정전으로 중국법인의 전산센터 업무가 중단된 것과 관련해 40만위안(약 82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해당 전산센터 업무는 외부에 위탁돼 있었으며 현지 당국은 상업은행 업무연속성 감독관리지침과 데이터센터 관리지침 등을 근거로 제재에 나섰다. 기업은행은 이후 추가 전산센터를 구축·운영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마련했다.
올해 1월에는 IBK인도네시아은행도 현지 중앙은행(BI)으로부터 행정제재금을 부과받았다. 취소거래에 대한 보고가 하루 늦어진 것이 원인으로, 제재금은 5만루피아였다. 해당 법인은 제재금을 납부하고 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재발방지책으로 제시했다.
최근 기업은행 해외법인이 업무보고와 여신심사, 전산·외주 관리 등 여러 부문에서 현지 감독당국의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았음에도 내부통제 부실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해외법인의 실적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을 높인다. 기업은행 중국법인은 올 상반기 기업은행 해외법인 전체 순이익 191억원 가운데 145억원을 벌어들였다. 해외법인 전체 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중국법인이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이번 사고 신고액 833억7600만원은 중국법인의 상반기 순이익을 웃도는 규모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현지 수사와 피해금액 회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관련 손실을 올해 2분기 결산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향후 수사를 통해 최종 손실액과 회수 가능 금액이 확정되면 해외법인 실적과 재무적 부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의 대응 역시 논란이다. 금감원은 사고 보고를 받은 이후 내부 보고와 사고 사례 전파, 사고 금액 변동 여부 확인 등에는 나섰지만 기업은행 관계자를 상대로 한 대면 확인이나 추가 자료 요구, 서면조사 또는 현장검사 등 직접적인 조사에는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금액 보전 등 사고 수습이 끝난 뒤 기업은행이 종결보고서를 제출하면 처리 적정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와 금융권 안팎에서는 해외법인 내부통제를 개별 법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본점 차원에서 상시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발생 후 직원 교육이나 전산시스템 개선 등 개별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제재 유형과 사고 위험을 본점이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법인에서 대외보고 누락, 대출 취급 오류, 전산센터 업무중단 등으로 제재를 받은 데 이어 대규모 금융사고까지 발생했다면 개별 법인의 실수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며 “제재를 받을 때마다 재발방지책을 내놓았는데도 다른 형태의 통제 문제가 반복된다면 본점 차원의 해외법인 관리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전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