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입을 예고한 ‘전·월세 안심신탁(이하 안심신탁)’ 제도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임대차 시장의 현실에 맞지 않다 보니 정책성과의 키를 쥔 임대인의 참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월세 상승, 부동산 개발 위축에 따른 공급 절벽 등의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럴듯한 취지를 내세우지만 정작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정책일 경우 오히려 성난 부동산 민심에 기름만 붓는 역효과만 낳을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전·월세 안심신탁 제도 두고 임대인들 “보증금 통장에 묵힌 사람 몇이나 될까” 분분
국토교통부는 지난 20일 ‘주택 신속공급 방안’ 후속 조치로 전·월세 안정화기구를 활용한 ‘전·월세 안심신탁’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안정화기구와 임대인, 임차인이 3자 계약을 맺고 임차인이 전세금을 안정화기구에 예치하면 기구가 해당 자금을 운용해 발생한 수익을 임대인에게 매 월 지급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임차인들이 전세 보증금 사기 걱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월세를 선택하는 상황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임차인의 전세금 반환 위험을 낮추면서 임대인에게는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제공해 전세 공급을 늘어날 것이라는 게 국토부의 판단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HUG 보증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에 운용하면 연 4%대 이자수익이 창출 될 것으로 추산된다. 전세금 2억원 규모로 사업에 참여한 임대인에게 월 73만원 가량의 운용수익을 지급할 만한 수준이다. 또 임차인은 별도의 전세금반환보증이나 전세대출보증에 가입하지 않아도 돼 보증료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우선적으로 시세 20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9월 말 사업 공고를 시작으로 10월부터 신청을 받고, 11월부터 3자 약정 체결과 계약금 예치를 진행해 연말부터 순차 입주를 지원할 계획이다. 주택 유형에는 별도 제한을 두지 않고 등록 임대사업자에겐 임대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의무 면제와 세제 지원을 추진해 사업 참여를 유도한다.
그러나 국토부의 이번 계획을 두고 부동산업계와 임대인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책 실효성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임대차 시장의 현실을 간과한 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사례를 대전제로 삼은 전형적인 탁상공론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과 임대들이 지적한 핵심 오류는 딱 한 가지다. 바로 전세 물건을 보유한 임대인 중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임대인은 극히 소수라는 사실이다.
서초구 소재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전세 제도 자체가 예금 금리가 두 자릿수에 달했던 시절 등장한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거래 형태 아니냐”라며 “예금 금리가 5% 미만으로 떨어진 시점 이후부터는 전세는 집주인들이 재투자, 세금납부 등 목돈이 필요할 때 돈을 마련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 돈이 있으면 누구라도 월세로 전환하지 누가 전세를 놓겠나”라며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전세금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집주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번 안심신탁 제도는 집주인들의 호응 부족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전세금을 주택 매입 자금(갭투자)으로 활용해 신규 주택을 매수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서울 지역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약 3년 간 신규 거래의 절반 이상이 갭투자였다. 그 비중은 2020년 51.6%, 2021년 54.6%, 2022년 56.9% 등이었다. 이후 정부의 갭투자 규제로 그 비중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5채 중 1채(4월 기준, 21.2%)는 전세 보증금으로 주택 매수 자금을 충당하는 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갭투자를 통해 집을 매수한 집주인들 수중엔 이미 전세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안심신탁 신청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전·월세 전환율 4% 마지노선 생겨” “소규모 개발 어려워질 것” 부작용 우려 확산
일각에선 단순히 정책 실효성 논란에 그치지 않고 월세 상승, 부동산 개발 위축에 따른 공급 절벽 등의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국토부가 연 4%대 이자수익을 언급한 이상 앞으로 전·월세 전환율 역시 4% 이하로 떨어지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기존의 저렴한 월세 매물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재조정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시장의 전·월세 전환율은 4%(전세보증금 1억 당 월세 40만원) 수준이다. 연 수익률로 따지면 4.8% 가량 된다.
다만 월세 매물이 많은 지역에선 집주인과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다. 특히 예금 이자율이 낮을 때는 전·월세 전환율이 3%대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기준 5대 시중은행 평균 예금 금리는 12개월 정기 예금 기준 2.9~3% 수준, 저축은행도 연 3.5% 안팎에 불과하다. 결국 목돈이 필요 없는 임대인 입장에선 전·월세 전환율 3% 후반만 적용해도 전세 보다 유리한 셈이다. 바꿔 말하면 HUG의 운용수익률이 실제로 4% 이상이라면 전·월세 전환율이 3%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부동산 개발업계 등에서는 소규모 부동산 개발 업체를 중심으로 사업 위축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개발업체 관계자는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발 업체들은 구축 주택이나 빌라를 매입해 신축 빌라로 다시 지어 판매해 이윤을 남기는데 주택 매수자들 중 상당수가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사람들이다”며 “만약 안심신탁 제도가 도입되면 세입자들은 전세사기 가능성 때문에 당연히 안심신탁 제도를 요구할 것인데 그러면 잔금 치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매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자금을 주택 매수자금으로 활용하는 길이 막히면 매수자가 줄어 미분양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 같은 개발 업체들은 사업 진행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다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월세 안심신탁 제도는 집주인의 호응이 필수적인 만큼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만한 유인 장치 마련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안심신탁은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위험을 낮춘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의 취지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임대차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성립하는 만큼 임대인의 참여가 충분하지 않으면 제도가 시장에 정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제 임대차 시장에서 임대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보증금을 활용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적절한 유인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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