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프로축구 리그가 이달 잇따라 새 시즌에 돌입하면서 각 리그 유명 팀들의 올해 전력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구단주의 의지에 따라 팀의 전력을 좌우하는 유명 감독이나 선수 영입 여부가 판가름 나는 만큼 그들의 재력이나 배경에도 새삼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현재 유럽의 명문 구단을 소유·운영하는 구단주들은 하나같이 부동산, 자동차, 해운 등 각기 다른 산업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가문의 일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호날두·루니 등 세계적인 스타 거친 ‘맨·유’ 주인은 미국 부동산 부호 글레이저 가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세계적인 팬덤과 상업적 가치를 갖춘 명문 구단이다. 리그 우승 20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등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만큼 맨유를 거친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데이비드 베컴,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선수 중에는 박지성이 무려 7시즌이나 맨유에서 활약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맨유의 구단 가치는 72억달러(약 10조원) 수준이다. 전 세계 축구 구단 중 3위 수준이다. 맨유의 지난 시즌 매출액은 무려 8억6500만달러(약 1조2500억원)에 달했다.
세계적인 명성과 상업적 가치를 갖춘 맨유의 주인(구단주)는 미국의 글레이저 가문이다. 글레이저 가문은 부동산으로 축적한 자본을 앞세워 스포츠 산업에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가문의 이름을 드높인 장본인은 故 말콤 글레이저(Malcolm Glazer)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 부품 사업으로 돈을 번 뒤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쇼핑센터 등을 보유한 퍼스트 얼라이드(First Allied)를 설립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스포츠 산업까지 발을 넓혔다. 1995년 미국프로풋볼(NFL) 구단인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1억9200만달러(약 2600억원)에 인수했으며 2005년에는 약 14억달러(약 1조9400억원)를 들여 맨유를 사들였다.
현재 글레이저 가문은 두 개의 스포츠 팀과 부동산 업체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6월 기준 가문 소유 재산은 약 121억달러(약 16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글레이저 가문 소유의 맨유 지분은 48.9%에 달하며 의결권은 67.9%를 보유하고 있다. 말콤 글레이저는 살아생전 5남 1녀를 뒀으며 2014년 사망한 이후 그의 자녀들이 가문의 주요 사업을 나눠서 맡기 시작했다. 장남 에이브럼과 차남 조엘은 맨유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삼남 브라이언과 사남 에드워드는 NFL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오남 케빈은 가문의 부동산 사업을 맡고 있다. 막내이자 유일한 딸인 다시는 가문 자선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탈리아 자동차재벌 아넬리 가문, 무려 103년째 축구명가 유벤투스 소유·운영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이다. 그동안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스타로는 지네딘 지단,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벨 네드베드 등이 있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리그 최다 우승(36회)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연속 9번 리그 우승이라는 대기록도 보유 중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구단 가치는 24억달러(약 3조3000억원)로 세계 축구 구단 가운데 12위에 올라 있다. 지난 시즌 구단 전체 매출액은 4억5800만달러(약 6300억원)이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문구단 유벤투스는 무려 100년 넘게 한 가문이 소유해 왔다.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명문 가문인 아넬리 가문이다. 현재 아넬리 가문이 지배하는 투자회사 엑소르(Exor)가 유벤투스 전체 지분의 65.4%를 소유하고 있다. 엑소르는 자동차기업 피아트(Fiat)를 기반으로 성장한 아넬리 가문의 투자회사로 현재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제조,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 기준 엑소르의 총 자산 규모는 371억유로(약 54조원)에 달하며 이 중 유벤투스 지분 가치는 8억유로(약 1조2000억원)로 전체의 2.1% 수준이다.
아넬리 가문의 유벤투스 운영은 피아트의 창업주 故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에서 시작됐다. 조반니는 1899년 피아트를 설립하며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 큰 부를 축적했다. 이후 1923년 그의 아들 에두아르도 아넬리(Edoardo Agnelli)가 유벤투스를 사들이며 회장 자리에 올랐다. 에두아르도는 12년간 구단을 이끌며 유벤투스의 첫 전성기를 열었지만 1935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에두아르도의 두 아들인 잔니 아넬리(Gianni Agnelli)와 움베르토 아넬리(Umberto Agnelli)가 차례로 유벤투스 회장을 맡으며 구단 운영을 이어갔다. 특히 움베르토는 1956년 22세 나이로 최연소 회장에 오른 후 잠시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994년 다시 유벤투스 회장으로 복귀해 구단을 이끌었다.
21세기 들어서는 구단 운영과 가문 사업의 경영을 맡는 인물이 각각 나뉘었다. 움베르토 아넬리의 아들인 안드레아 아넬리(Andrea Agnelli)는 2010년 유벤투스 회장에 올라 2022년까지 구단 운영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 기간 유벤투스는 세리에A 9연패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잔니 아넬리의 외손자인 존 엘칸(John Elkann)은 가문의 기업 경영을 도맡았다. 외할아버지의 후계자로 지목된 존 엘칸은 현재 아넬리 가문이 지배하는 엑소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서 유벤투스를 비롯한 가문의 주요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갑부 인증’ 수단이 된 축구명가들…그리스 해운 재벌, 중동 왕실 등 국적·신분 제각각
그리스 선박재벌 가문 출신인 에반겔로스 마리나키스(Evangelos Marinakis)는 해운업으로 축적한 자본을 앞세워 그리스 명문구단 올림피아코스와 잉글랜드 축구팀 노팅엄 포레스트 등을 사들이며 스포츠계의 거물로 변신했다. 마리나키스 가문이 거느린 구단 중 2곳은 각국을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손꼽힌다. 그리스 수페르리가의 올림피아코스는 그리스 리그 48회, 그리스컵 29회 우승으로 두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24년에는 UEFA 유로파 콘퍼런스리그를 제패하며 ‘그리스 구단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이라는 기록을 쓰기도 했다. 1865년 창단한 노팅엄 포레스트는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단으로 1979년과 1980년 유러피언컵 2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즌 노팅엄은 유로파리그 4강에 진출하며 녹슬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리나키스 가문은 해운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그리스의 대표 재벌가문이다. 가문 역사의 시작을 장식한 인물은 밀티아디스 마리나키스(Miltiadis Marinakis)다. 밀티아디스는 1960년대 후반 해운업에 뛰어든 뒤 1970년 해운기업 바니마르(Vanimar)를 설립해 선박을 하나둘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시켰다. 이후 아들 에반겔로스 마리나키스가 가업을 물려받아 사세를 확장시켜 마침내 재벌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2005년 해운기업 캐피털 마리타임(Capital Maritime)을 설립한 이후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에반겔로스는 2010년 해운업으로 쌓은 부를 바탕으로 스포츠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해 올림피아코스 최대주주에 오른 뒤 지금까지 8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 지분 80%를 인수했다. 2023년에도 포르투갈 리그의 히우 아베 지분을 80% 확보하면서 현재 축구팀 3곳의 구단주를 맡고 있다. 현재 외아들 밀티아디스 E. 마리나키스(Miltiadis E. Marinakis)는 LNG 운송업체 캐피털 가스를 이끌며 해운사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마리나키스와 가족들의 재산은 올해 7월 기준 약 70억달러(약 9조7000억원)에 달한다.
개인 재산을 바탕으로 축구 구단을 확장한 마리나키스 가문과 달리 카타르는 국가와 왕실 자본을 축구에 투입하고 있다. 카타르가 소유한 대표적인 축구팀은 프랑스의 명문 구단 파리 생제르맹(PSG)이다. PSG는 리그1 우승 14회와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6회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UEFA 챔피언스리그를 2년 연속 제패하며 유럽 최고 구단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의 축구스타 이강인 선수도 2023년부터 지난달까지 PSG에서 활약한 바 있다.
PSG의 최대주주는 카타르 스포츠 인베스트먼츠(Qatar Sports Investments, 이하 QSI)다. QSI는 카타르 국부펀드인 카타르투자청(Qatar Investment Authority)과 연결된 스포츠 투자기구로 2012년 PSG 지분을 100% 확보했다. 이후 PSG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네이마르, 리오넬 메시, 킬리안 음바페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하고 구단의 글로벌 사업도 확대했다. 2023년 12월 미국 사모펀드 아크토스 파트너스에 PSG 지분 12.5%를 매각했다.
현재 QSI를 이끄는 인물은 나세르 알켈라이피(Nasser Al-Khelaifi)다. 그는 2011년부터 PSG 회장을 맡고 있으며 QSI 회장과 카타르의 스포츠, 미디어 기업인 비인미디어그룹(beIN Media Group) 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그는 평범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현재 카타르 국왕인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와 테니스 파트너로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왕실의 측근 인사로 거듭났다. 카타르를 대표하는 자수성가 기업가이자 스포츠 행정가로 정평이 나 있다. 타밈 국왕은 2013년 아버지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Hamad bin Khalifa Al Thani)에 이어 카타르 국왕으로 즉위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벌가나 부호들이 축구 구단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한 재무적 수익뿐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와 대중적 영향력을 함께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며 “유명 구단은 전 세계 팬을 기반으로 가문의 이름을 알릴 수 있고 구단이 성장하면 중계권, 광고, 스폰서십 등을 통한 자산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축구 구단은 재산뿐 아니라 경영권과 가문의 브랜드까지 함께 물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승계에도 꽤 유리한 편이다”며 “스포츠 구단은 단순히 이익 창출의 목적 외에도 글로벌 홍보와 사업 네트워크 확장, 부의 대물림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자산인 셈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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