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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원 중국산에 밀린 태극기”…광복절에도 썰렁한 종로 휘장골목
“수백원 중국산에 밀린 태극기”…광복절에도 썰렁한 종로 휘장골목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 수요가 늘고 있지만 정작 국내 태극기 제조 기반은 값싼 중국산 제품에 밀려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극기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 상징물인 만큼 국내 생산 기반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광복절 연휴를 하루 앞둔 이날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이른바 ‘휘장·상패 골목’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골목을 따라 늘어선 업체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일부 점포에는 임대 안내문까지 붙어 있었다. 골목 곳곳을 둘러봤지만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를 내걸거나 전면에 진열해 판매하는 업체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휘장·상패 골목이 위치한 관수동 일대는 지하철 1·3·5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과 가까운 데다 최근 몇 년 사이 크고 작은 비즈니스호텔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역시 여행용 가방을 끌거나 주변 호텔을 오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정작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태극기를 사기 위해 골목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뜸했다.

 

국내 태극기 제조·판매 시장이 위축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삼일절과 제헌절, 광복절 등 주요 국경일마다 가정에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문화가 보편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가 약화되면서 일반 소비자 수요가 감소했다. 여기에 정치 집회에서 태극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일부에서는 태극기를 특정 정치 성향과 연결해 바라보는 인식까지 생겨났다. 

 

가정용 수요 감소와 함께 국내 제조업체들을 더욱 압박하는 요인은 값싼 중국산 제품의 확산이다. 국내 생산품보다 가격이 크게 낮은 중국산 태극기가 온라인 판매시장과 행사·집회 등 대량구매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국내 제조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 태극기 게양 문화가 위축되고 값싼 중국산 제품까지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태극기 제조·판매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휘장거리 내 임대 안내문이 붙은 매장의 모습. ⓒ르데스크

  

국내 업체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부분 역시 중국산 제품과의 가격 경쟁이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중국산 미니 태극기나 손태극기의 경우 대량으로 구매하면 장당 백원대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간다. 반면 국내에서 원단을 가공한 뒤 인쇄와 봉제 등의 공정을 거쳐 생산하는 제품은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등이 반영될 수밖에 없어 중국산 제품과 상당한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가격이 구매 여부를 좌우하는 행사나 집회 등 대량 수요 시장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기 더욱 어려운 구조다. 대형 행사에서 사용하는 태극기는 한 차례 사용한 뒤 다시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구매자 입장에서도 원산지나 품질보다는 낮은 가격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휘장 골목에서 오랫동안 영업해 온 한 상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국내 휘장 제작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당시에는 상품 경쟁력도 상당했다”며 “이후에도 관련 업종이 명맥을 이어왔지만 몇 년 전부터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등장하면서 태극기에 특정 정치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행사에서 사용하는 태극기는 대부분 일회성 소비에 그치는 만큼 구매자 입장에서도 품질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은 품질도 좋고 한국인이 직접 우리나라 국기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산을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집에서 사용하는 작은 태극기를 안 만들게 된 지 꽤 됐다”며 “사람들이 예전만큼 집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보니 시장 자체가 크게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지금은 언제 팔릴지 모르는 작은 태극기를 미리 만들어 쌓아두기보다 주문이 들어왔을 때 제작하는 대형 깃발 형태의 태극기를 주로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국내 시장에 중국산 태극기가 유통되는 것 자체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국기법과 시행령 등을 통해 태극기의 모양과 규격, 색상 등 제작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태극기를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별도의 생산지 기준은 두고 있지 않다.

 

국산 원단이나 원재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의무 역시 없다. 관련 규정이 정한 태극기의 형태와 규격 등을 충족한다면 해외에서 생산한 태극기도 국내에서 유통할 수 있는 셈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생산지와 원재료 측면에서는 별도의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도 값싼 수입산 국기가 자국의 생산 기반을 위협하면서 이와 비슷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2024년 ‘All-American Flag Act(전미 국기법)’을 제정해 연방기관이 구매하는 성조기를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 휘장거리 내에 전시된 대형 태극기의 모습. ⓒ르데스크

 

이에 따라 연방기관이 구매하는 성조기는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100% 제조돼야 하며 사용되는 재료와 원자재 역시 미국에서 생산·제조된 제품이어야 한다. 다만 미국산 제품을 적정한 품질과 수량, 시장가격으로 조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는 예외가 적용된다.

 

미국이 이러한 법을 마련한 배경도 값싼 중국산 성조기의 시장 잠식이 자리하고 있다. 미 의회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이 수입한 성조기 가운데 중국산이 금액 기준 93%를 차지했고 2023년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95%까지 높아졌다. 미국을 대표하는 국가 상징물인 성조기 시장까지 중국산 제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서 자국 내 생산 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미국은 민간 소비자의 외국산 성조기 구매를 제한하는 대신 연방정부가 사용하는 성조기부터 자국산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민간시장의 수입이나 소비자 선택을 직접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공공부문의 구매력을 활용해 자국 제조업체에 일정한 수요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생산 기반과 일자리를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태극기 제조업체가 이미 손에 꼽을 정도까지 감소한 상황에서 남아 있는 업체들마저 생산을 중단할 경우 태극기를 국내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기반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체 수 감소는 단순히 특정 상품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낮아지는 데 그치지 않고 원단 가공과 인쇄, 봉제 등에 필요한 설비와 기술, 숙련 인력까지 함께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시장 규모가 계속 줄어 생산업체들이 사업을 포기할 경우 이후 국내 생산 수요가 다시 늘더라도 단기간에 생산 기반을 복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가 상징물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조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일정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태극기가 국가 상징물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만큼 최소한의 국내 생산 기반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만 민간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수입 규제나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방식보다는 공공조달을 활용해 국내 생산업체에 안정적인 수요를 제공하는 방안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태극기는 일반적인 소비재와 달리 국가 상징물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최소한의 국내 생산 기반을 유지할 필요성은 있다”며 “다만 민간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기보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서 일정한 수요를 만들어주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태극기처럼 국가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나타내는 물품은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을 기준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모든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할 필요는 없더라도 국가 상징물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산업 기반과 기술은 유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사 속 Q&A
Q1. 서울 종로구 관수동 ‘휘장·상패 골목’의 현재 상황은?
A. 광복절을 앞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골목 내 다수 업체가 문을 닫았거나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등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광복절 계기 태극기를 내걸거나 판매하는 업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골목 상권이 크게 위축돼 있다.
Q2. 현재 국내 태극기 유통 및 생산에 관한 법적 규제는?
A. 대한민국국기법 및 시행령에 태극기의 모양, 규격, 색상 등 제작 기준은 마련되어 있으나, 생산지 기준이나 국산 원자재 사용 의무 규정은 없다.
Q3. 미국이 ‘전미 국기법’을 제정한 배경은?
A. 수입 성조기 중 중국산 비율이 금액 기준 2022년 93%, 2023년 상반기 95%까지 올라가며 시장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공공 조달 수요를 자국 제조업체로 돌려 최소한의 생산 기반과 일자리를 보호하고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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