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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일본 좋아한 사람?”…광복 81년에도 반복되는 ‘역사 번역’ 논란
“친일파가 일본 좋아한 사람?”…광복 81년에도 반복되는 ‘역사 번역’ 논란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표현이 외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본래 의미와 역사적 무게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일파’와 ‘위안부’, ‘욱일기’ 등이 대표적이 사례로 지목된다. 한국인에게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사건의 배경과 의미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지만 이를 직역한 표현을 접하는 외국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파=pro-Japanese’ 직역의 함정…단어는 같아도 의미 딴 판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1일 하영 증조부를 둘러싼 논란을 보도하면서 한국의 ‘친일’을 영어로 ‘pro-Japanese’라고 표현했다. 이후 영미권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는 “조상이 일본에 우호적이었다는 이유로 후손까지 비판받아야 하느냐”, “자신이 선택할 수도 없는 증조부의 행동에 왜 사과해야 하느냐”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인도네시아 누리꾼 KL은 관련 기사에 “자식에게 부모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 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복수다”는 취지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논란의 초점이 안상호의 구체적인 행적이나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라는 표현이 지닌 역사적 의미보다는 ‘조상의 친일본 성향 때문에 후손을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로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누리꾼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가 단순히 일본에 우호적이거나 일본 문화를 선호했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통치에 협력한 사람을 지칭한다는 역사적 배경과 안상호의 구체적인 행적을 설명하면서 일부 해외 누리꾼들의 반응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관련 설명을 접한 이들은 자신들이 처음 받아들였던 ‘pro-Japanese’와 한국 사회에서 사용되는 ‘친일파’ 사이에 의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에서 해당 논란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배경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내에서 ‘친일파’라는 표현은 단순히 일본을 좋아하거나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통치에 협력한 인물을 지칭하는 역사적 의미가 강하다. 반면 영어권에서 이를 옮길 때 흔히 사용되는 ‘pro-Japanese’의 ‘pro-’는 ‘~을 지지하는’, ‘~에 우호적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표현 자체만 놓고 보면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 정도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한국인에게는 ‘친일파’라는 단어만으로도 일제강점기와 식민지배, 이에 대한 협력 행위라는 역사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반면 한국과 동일한 역사적 경험이나 배경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pro-Japanese’라는 단어만으로 이러한 맥락이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번역이라도 이를 접하는 독자가 갖고 있는 역사적 배경지식에 따라 사건의 성격 자체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1일 하영 증조부를 둘러싼 논란을 보도하면서 한국의 ‘친일’을 영어로 ‘pro-Japanese’라고 표현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SCMP가 보도 기사의 모습. [사진=SCMP 갈무리]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표현이 외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본래 의미와 무게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문제는 과거에도 반복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군 ‘위안부’다.

 

위안부는 오랫동안 영어권에서 주로 ‘comfort women’으로 번역돼 왔다. 그러나 ‘comfort’라는 단어가 위안이나 편안함을 의미하는 만큼 해당 표현만 접할 경우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성착취와 강제성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내포하는 역사적 맥락과 ‘comfort women’이라는 영어 단어가 전달하는 사전적 이미지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왔다. 외교통상부는 2012년 국제무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 ‘comfort women’이라는 표현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에 성노예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라는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외교부는 ‘comfort women’이라는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성노예를 뜻하는 ‘sex slaves’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국회에서도 공식 외교문서와 학교 교재 등에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병기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comfort women’만으로는 피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위안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어 강제동원과 인권 침해라는 역사적 실체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역시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의미와 책임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동원 문제를 설명할 때 주로 ‘강제동원’이나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forced labor’, ‘wartime laborers’, ‘workers from the Korean Peninsula’ 등 서로 다른 표현이 사용돼 왔다.

 

‘forced labor’에는 노동이 강제됐다는 의미가 표현 자체에 명확하게 담겨 있다. 반면 ‘wartime laborers’는 ‘전시 노동자’, ‘workers from the Korean Peninsula’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의미에 가까워 이들이 어떤 과정으로 동원됐는지에 대한 강제성은 단어 자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같은 역사적 사건과 사람을 설명하더라도 어떤 표현을 택하느냐에 따라 해외 독자가 받아들이는 사건의 성격과 책임의 정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위안부·강제동원도 번역 따라 달라진 의미…“단어 아닌 역사까지 옮겨야”

 

▲ 8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열린 '2026년 경기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서 공연을 마친 별드림예술단 단원들이 지난 3월 별세한 강일출 할머니 흉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표현의 차이는 실제 한·일 간 외교 문제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됐다. 2015년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일본은 일부 시설에서 조선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일본 측은 영어로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정부는 해당 표현이 국제법상 ‘forced labour’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면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강제로 일하게 됐다’는 일반적인 표현과 국제적으로 의미가 규정된 ‘강제노동’을 구분하면서 같은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용어 선택에 따라 책임의 범위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다시 부각됐다.

 

특히 최근에는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가 확대되면서 드라마와 영화, 음악뿐 아니라 국내 연예인의 발언이나 사회적 논란까지 해외 언론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공유된 역사적 배경을 전제로 진행되는 논쟁도 번역을 거쳐 해외로 전달되는 순간 전혀 다른 문화적·역사적 기준에서 해석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의 외교문서나 역사 교과서처럼 공적인 영역에서 어떤 영어 표현을 선택할지가 주요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해외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해 개인의 발언과 논란까지 빠르게 번역·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번역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이 생략되면 단순한 표현의 차이를 넘어 논란 자체의 성격이 바뀌거나 한국 사회가 특정 사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가마다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과 배경지식이 다른 만큼 단순히 한국어 단어와 외국어 단어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방식만으로는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특히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표현은 사전적인 뜻보다 해당 단어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형성됐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로 사용돼 왔는지를 함께 설명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단어나 표현이라도 문화적·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며 “한국인에게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역사적 표현도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해외 소비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최근에는 K콘텐츠뿐 아니라 국내 연예인이나 한국 사회의 이슈까지 SNS와 해외 매체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해외에 한국의 역사·문화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할 때는 단어를 단순히 외국어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표현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맥락까지 함께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사 속 Q&A
Q1.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어떤 인물이며 왜 친일 논란이 불거졌나
A. 안상호는 일제강점기 한양에서 최초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양의원)을 개원한 의사 중 한 명입니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사촌 이재명 의사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매국노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에 포함되어 친일 행적 논란을 받고 있다.
Q2. 안상호가 고종 황제 독살 설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의 진위?
A. 919년 고종 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을 당시 안상호가 진료를 맡았으나 사망했습니다. 이후 일제의 사주로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현재까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역사적·법적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Q3. 한국어 '친일파'와 영어 'pro-Japanese'의 결정적인 의미 차이는?
A. 영어 'pro-Japanese'는 사전적으로 단순히 '일본을 지지하거나 우호적인 사람'을 뜻합니다. 반면 한국어 '친일파'는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부역한 인물을 지칭하는 법적·역사적 책임이 전제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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