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 도심의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미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규모 녹지를 주택용지로 전환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공급 규모나 개발 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과 서울시 등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개발 가능성부터 거론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11일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현재 신용산역 1번 출구 인근 용산어린이정원 입구에는 주택 공급에 반대하는 근조화환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화환에는 ‘아이들의 놀 권리와 미래 권리를 콘크리트 벽에 가두지 마라’, ‘아이들 꿈터 빼앗아 닭장이 웬 말이냐. 표심 노린 졸속 임대, 용산 주민은 반대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근을 오가는 직장인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화환에 적힌 문구를 살펴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근에서 근무하는 정하성 씨(35·남)는 “예전에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데이트를 위해 이 일대를 자주 찾았다”며 “현재는 아이와 한 번씩 산책하고 사진도 찍으러 놀러 오는 곳인데, 방문할 때마다 서울 도심에 이렇게 보존이 잘 된 부지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최근 고공 상승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살펴보면 신규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굳이 이곳이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주택 공급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이미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녹지를 개발하는 방식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인 방문객 역시 이미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간에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에 의문을 나타냈다. 미국에서 온 프랜시스(Francis·53)는 “공원에 아파트를 짓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국을 여행하면서 미국과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 중 하나는 아파트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빈 땅이 아닌 이미 정원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공간에 굳이 주택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주택 공급이 가능한 부지를 찾기 쉽지 않다는 현실과 별개로 현재 이용 가치가 높은 녹지까지 개발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용산역 일대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도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를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이 위치한 한강로2가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용산구청과 국토교통부에 관련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석주 으뜸공인중개사 대표는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강제로 수용해 일본군 기지로 삼았던 곳으로,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미군 기지로 사용되다가 평택 이전에 따라 반환이 진행된 뒤 어린이공원으로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서울 시내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남은 거대한 규모의 녹지 부지인데 그 땅에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또한 비싼 용산에 임대아파트를 짓는다면 공공임대아파트의 임대료는 주택 유형과 면적, 지역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저렴하게 책정되는데 이 일대 전세가격의 80%라면 10억원이 넘는다”며 “저렴한 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해당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아마도 해당 물량은 일반분양으로 풀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정 용산시대 중개법인 부동산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부지 일대에 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안 그래도 비싼 땅에 임대주택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미 용산구청과 국토부에 용산어린이정원 부지가 아닌 다른 부지를 제안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제출한 상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꿈을 키워야 하는 공간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꿈을 짓밟는 것과 똑같다고 본다”며 “이제 겨우 돌려받은 땅인데 이곳을 다시 빼앗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용산어린이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이 있다. 서울에서 대규모 신규 택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심 내 국유지 등을 활용해 공급 물량을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면서 용산어린이정원 역시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용산어린이정원을 중심으로 한 주택공급 방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년과 신혼부부 등이 핵심 공급 대상으로 실제 활용 가능한 면적과 적정 공급 호수 산정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어린이정원은 축구장 42개 크기로 주택 부지로 바꾸면 많게는 7천 가구 공급이 가능할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오 시장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용산 어린이정원 일대 주택 공급 가능성에 대해 “주택 사정이 녹록지 않다고 도심 속 녹지에 손을 대는 것을 찬성할 대도시 시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오 시장은 “서울 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택을 짓는 방안에 대해서도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서울의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용산어린이정원의 특수성과 도심 녹지로서의 가치, 토양오염 문제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용지 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민과 서울시 등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공급 물량 확보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그간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는 주한미군기지로 사용되던 기간 중 중금속과 유류 등 유해 오염물질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던 곳이다”며 “이러한 논란이 있는 부지를 주택용지로 바꾸면서 토양오염 문제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주택 공급에만 집중하고 있다 보니 서울시에서도 더욱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 교수는 “주민들 역시 아파트 단지에서 공원이 보이는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다면 부동산 가치와 주거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녹지 보존이라는 공공적인 가치뿐 아니라 기존 주민들의 주거환경과 자산가치 문제까지 얽혀 있어 단순한 주택 공급 규모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권대중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서울에 신규 택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용산과 같은 부지를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려는 고민 자체는 이해하지만 현재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은 순서가 잘못됐다”며 “주민들의 반대가 거센 상황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를 주택용지로 전환해 공급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어 권 교수는 “신규 택지를 확보해 주택을 공급한다고 해도 실제 공급까지는 몇 년이 걸리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 주택을 사야 한다는 무주택자들의 조급함과 불안한 수요를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이다”며 “정부가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만큼 원인에 대한 대책을 찾는 것이 먼저다. 서울시와 충분한 협의도 없이 현재 활용되고 있는 좋은 땅을 급하게 주택 공급에 활용하려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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