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내 각 지방자치단체가 침체된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실시한 ‘상권 조성 및 특화거리 육성 사업’이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성수동이나 연남동 등과 같이 젊은층과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 브랜드 상권을 만들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으나 정작 지원 사업이 집중된 상권들의 변화는 미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자영업자 생존율과 유동인구 감소 및 상가 공실률 상승 등 역효과가 나타난 곳도 적지 않았다.
수십억 쏟아 부은 로컬브랜드 상권, 수십억 혈세 투입 후에도 효과 ‘물음표’
서울시가 지난 2022년 9월부터 추진 중인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잠재력 있는 골목상권을 서울 대표 상권으로 키우겠다며 상권 당 3년간 최대 25억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지만 정책 효과를 평가할 만한 핵심 지표들은 오히려 역성장했다. 서울시 상권분석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히스토리컬 시티’라는 브랜드를 앞세운 중구 장충단길 상권의 경우 자영업자 생존 주기가 오히려 짧아지고 있다. ‘3년 생존율’은 사업 시작 직전인 2022년 1분기 69.2%에서 2023년 1분기 60.0%, 2024년 1분기 41.7% 등으로 감소한데 이어 올해 1분기엔 25.0%까지 급감했다. 장기 자생력을 보여주는 5년 생존율 역시 같은 기간 76.9%에서 33.3%로 43.6% 감소했다.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지정된 후 약 25억원 가량의 혈세가 투입된 마포구 하늘길(합정·망원원) 상권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2022년 1분기 67.9%였던 ‘3년 생존율’은 매년 하락세를 거듭해 올해 1분기 48.3%(19.6% 하락)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5년 생존율도 54.0%에서 44.4%로 9.6%p 하락했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 통계’에 따르면 마포구 하늘길과 인접한 서울 홍대·합정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4년 3분기 8.6%에서 2025년 1분기 9.5%로 오히려 상승했다. 올해 역시 2분기 기준 9.4% 상가공식률을 기록하며 ‘장기 부진’의 면모를 드러냈다.
경기 성남시가 2024년부터 3년째 추진 중인 ‘모란 도담길 청년창업 특화거리 조성사업’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남시는 모란역 12번출구 중심 상권 뒤편에 자리한 도담길 상권을 육성하기 위해 19~39세 청년 창업팀을 매년 모집해 팀당 최대 3000만원의 사업화 자금과 창업 컨설팅을 지원해 왔다. 지원 규모는 2024년 20곳, 2025년 25곳, 2026년 39곳 추가 선정으로 대폭 확대됐다.
그러나 예산이 투입된 기간 동안 해당 상권의 유동인구는 오히려 부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경기상권분석서비스 현장 유동인구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도담길이 속한 모란역 상권의 월 유동인구는 2025년 5월 6419명에서 2026년 5월 5512명으로 1년 새 14.1%(907명) 하락했다. 또 모란 상권 내 단골 고객(월 방문 횟수 3회 이상) 비율은 12.25%에 불과했다. 일회성 이벤트나 상점 개점 초기 호기심에 방문한 고객의 재방문 유도 효과가 미비하다는 방증이다. 모란역 인근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 역시 사업 시작 초기부터 2025년 3분기까지 3.5%를 유지했으나 2025년 4분기 4.0%로 상승한 뒤 올해 2분기에는 5.8%까지 치솟았다.
지역 주민들은 부족한 정책 홍보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모란역 중심 상권에서 10년째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우현 씨(42·남)는 “사실 ‘도담길’이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며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모르는 골목 이름을 시민들이 과연 찾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성남시민 박지우 씨(25·여) 역시 “모란역을 그렇게 자주 다녔어도 뒤쪽에 상권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작년에 뒷길에 상점 몇 개가 새로 생긴 거 같더니 그게 정책 사업인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전시행정의 또 다른 사례…무분별한 혈세 살포 대신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깊은 고민 필요”
서울 양천구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2018년부터 시행해 온 ‘청년점포 및 청년기업 육성사업’은 지자체 주도 상권 활성화 사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 사례로 지목됐다. 양천구 2018년부터 창업 희망 또는 창업 2년 이내인 19~39세 청년 구민을 선정해 자부담금의 50% 범위에서 점포 리모델링비(최대 1000만원), 1년간 임차료(월 최대 100만원), 홍보·마케팅비(최대 100만원) 등 최대 2300만원을 지원해 왔다. 그동안 청년점포 36곳에 총 4억여원을 투입했다.
서울시 상권분석 통계에 따르면 사업이 이어지는 동안 양천구의 유동인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사업 대상 도로(길) 단위 유동인구는 2024년 1분기 4만5550명에서 2025년 1분기 4만4362명, 2026년 1분기 4만3162명 등으로 2년 새 5.2%(2388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주거 인구는 249명으로 변화가 없었고 직장인구는 42명에서 49명으로 소폭 느는 데 그쳤다. 지역 내 자영업자 생존율 지표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1년 생존율’은 2024년 1분기 80.2%에서 올해 1분기 78.9%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상권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3년 생존율’은 59.3%에서 55.6%로 3.7%p 가량 낮아졌다.
지역 내 점포 수 자체도 줄어드는 추세다. 양천구의 전체 점포 수는 2024년 1분기 1만4222개에서 올해 2026년 1분기 1만3474개로 2년 새 748개(5.3%) 감소했다. 특히 프랜차이즈 점포는 1325개에서 1196개로 129개(9.7%) 줄어 일반 점포 감소율(1만2897개➞1만2278개, 4.8%)의 두 배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있는 프랜차이즈조차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개인 창업자에게 임차료·리모델링비를 지원하는 정도로 상권활성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천구 관계자는 "상권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사업전체에 대한 홍보와 개개인이 요청할 경우 홍보 예산을 통해 지원해주고 있고 이후에도 상권 지원이 계속 될 예정이다"고 답변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미비한 상황에 대해 전형적인 전시행정 부작용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모방형 상권이나 단기 창업 지원으로는 지속 가능한 자생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서울을 비롯한 각 지자체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마중물 예산을 쏟고 있지만 경리단길을 모방한 대동소이한 ‘OO단길’ 조성에 그치면서 오히려 수요층이 분산되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역 실정과 특색에 맞는 독창적인 테마를 세워 랜드마크화하지 못하고 전시행정에 머물다 보니 실패 사례가 반복돼 나타나는 것이다”며 “지자체가 주도하는 통보식 행정을 벗어나 지역 주민과 일반 국민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공감할 수 있는 주민 참여 중심 정책 거버넌스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청년 정책은 산업 발전을 통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하는데 막상 정책 시행 이후에는 표를 의식해 단순 창업이나 개성 중심의 거리 조성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며 “타 지역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지역 고유의 특수성과 스토리를 반영해 차별화된 랜드마크 테마를 선정하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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