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위기를 맞았던 홈플러스가 2000억원 규모의 DIP(회생기업 운영자금)를 확보하며 영업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7일 가오픈한 매장에서는 가공식품과 자체브랜드(PB) 상품이 속속 채워졌지만 신선식품 매대는 여전히 비어 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거래처와의 공급망 복원과 고객 신뢰 회복이 향후 회생 가능성을 가를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홈플러스는 이날부터 영등포·금천·서울상봉점 등을 포함한 전국 67개 핵심 점포에서 가오픈을 시작했다. 이번 영업 재개는 회생 절차 과정에서 확보한 긴급 운영자금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홈플러스는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받은 2000억원 규모의 DIP 대출을 활용해 상품 입고와 매장 운영 재개를 준비해 왔다.
7일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서울 시내 일부 홈플러스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매대를 정리하고 새로 납품받은 상품을 진열하는 등 오는 13일 정식 재개장을 앞두고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다만 매장 곳곳에서는 아직 공급망이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흔적도 확인됐다. 가공식품과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 등 공산품은 상당수 매대가 채워졌거나 직원들이 진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면 채소·과일·축산물 등 신선식품 코너는 빈 매대가 적지 않아 주요 품목의 공급은 여전히 회복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공급업체별 납품 재개 속도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CJ제일제당과 대상 등 일부 업체는 이미 납품을 재개해 관련 상품이 매대에 진열돼 있었다. 서울우유·롯데웰푸드·풀무원·농심·롯데칠성음료 등은 납품을 전제로 거래 조건과 공급 품목을 조율 중인 상황이다. 서울우유와 롯데웰푸드는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다시 제품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오리온과 삼양식품 등 일부 업체는 아직 납품 재개 여부 자체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과거 대금 미정산 사태를 겪은 일부 협력업체는 선입금을 납품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실제 입금된 금액 범위 안에서만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 입장에서는 단순히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래처가 다시 안정적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홈플러스는 복층 중심의 대형 매장을 약 1000평 규모의 단층 형태로 재편하고 비식품과 가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신선식품과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 간편식 브랜드 ‘홈밀’, 생활필수품 중심으로 상품 구성을 개편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축소 대상인 가전과 계절상품 등의 기존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커피머신과 수영복, TV 등 일부 상품은 최대 7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홈플러스 금천점 관계자는 “밀렸던 급여는 모두 지급받았지만 주차·카트 관리와 미화 업무를 맡던 간접고용 인력들이 떠나 현재는 부서 구분 없이 업무를 나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업은 재개됐지만 일부 업체들이 여전히 상품 납품을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운영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근본적인 경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향후 폐점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마트 영업은 재개됐지만 영유아 문화센터 등 홈플러스가 자체 운영하는 일부 부대시설은 아직 운영 재개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문화센터 앞에는 ‘문화센터 여름방학 강의가 임시 휴강 중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현재는 마트 영업 재개에 집중하고 있어 문화센터 재개와 관련해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며 “매장 운영이 안정화된 이후에야 부대시설 운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내부에 입점한 자영업자들도 영업 재개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홈플러스 서울남현점의 한 입점업체 관계자는 “휴업 기간에도 내부 입점 매장들은 정상적으로 운영했지만 마트를 찾는 고객 자체가 줄면서 어려움이 컸다”며 “마트 내 입점 매장은 해당 매장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고객보다 장을 보러 왔다가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손님이 거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앞으로 한 달가량은 마트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예정인 만큼 고객들이 다시 돌아오고 입점 매장들도 이전 수준의 매출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DIP 금융이 홈플러스의 회생 가능성을 보장한다기보다 영업을 재개해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받을 시간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한 달간 매출과 현금흐름을 얼마나 회복하고 거래처와의 공급망을 정상화할 수 있는지가 회생계획 인가와 향후 인수합병(M&A) 성사 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설명이다.
특히 상품 입고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영업 재개 소식을 듣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빈 매대를 반복적으로 마주할 경우 소비자 신뢰 회복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력업체와의 거래 관계 회복과 동시에 소비자에게 정상 영업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DIP 지원은 홈플러스가 마지막으로 회생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자금 지원만으로 회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대금 미정산을 겪은 일반 브랜드(내셔널 브랜드) 업체들은 신뢰가 무너진 만큼 거래를 쉽게 재개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소비자와 협력업체의 신뢰를 동시에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며 “폐점했던 기업이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해서 과거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과 대주주가 정상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선언과 함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빈 매대가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소비자들의 실망감이 커지면서 신뢰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향후 일정 기간 정상적인 상품 공급과 안정적인 매장 운영을 보여주는 것이 홈플러스 회생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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