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구매 확산과 독서 인구 감소로 고전해 온 대형서점들이 오프라인 공간의 변신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다양한 책을 한곳에 갖춰 놓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만화·굿즈 등 특정 취향을 겨냥한 전문 공간부터 놀이와 휴식을 결합한 체험형 공간까지 저마다 차별화된 매장을 앞세워 소비자 발길 잡기에 나선 모습이다. 온라인에서 손쉽게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오프라인 서점의 경쟁력도 상품 구색보다 방문 경험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화·굿즈부터 대형 미끄럼틀까지…‘책 사는 곳’ 넘어 놀고 머무는 서점
최근 대형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진열·판매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체험과 취향을 앞세운 공간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영풍문고는 지난달 용산아이파크몰에 만화를 전면에 내세운 ‘코믹스 다이브’를 마련했고, 교보문고는 지난해 원그로브점에 만화와 음반, 피규어, 캐릭터 상품 등을 한데 모은 ‘플레이 아지트’를 조성했다.
예스24 강서NC점도 2020년부터 15m 길이의 자이언트 슬라이드 등 체험 요소를 선보였다. 최근 관련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조회수가 60만회를 돌파하면서 가족 단위 방문객과 젊은 층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르데스크가 3일 서울 시내 주요 대형서점을 둘러본 결과 곳곳에서 기존 도서 판매 중심 매장과 차별화된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1층에 마련된 영풍문고 코믹스 다이브에서는 20·30대 남녀 방문객들이 만화책 매대를 둘러보거나 평소 좋아하던 작품이 진열된 코너에 머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코믹스 다이브의 위치였다. 영풍문고 용산아이파크몰점의 기존 서점은 건물 8층에 자리하고 있지만 코믹스 다이브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상 1층에서 별도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기존 서점 한쪽에 만화 코너를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만화를 전면에 내세운 독립 매장을 마련한 셈이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공간은 당초 팝업스토어 형태로 운영됐지만 방문객들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최근 상시 운영하는 정식 매장으로 전환됐다. 특정 기간에만 운영되는 이벤트 공간을 넘어 만화와 서브컬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전문 매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른 서점에서도 특화 공간을 이용하는 방문객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강서구 교보문고 원그로브점에서는 젊은 방문객들이 별도로 마련된 애니메이션 굿즈 공간에서 상품을 살펴봤다. 책뿐 아니라 캐릭터 상품과 피규어 등을 함께 배치해 서브컬처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매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한 모습이었다.
예스24 강서NC점에서는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한 시간 동안 개방된 자이언트 슬라이드를 이용하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린이와 가족 단위 방문객뿐 아니라 청년들도 잇따라 미끄럼틀을 이용하며 서점 안에 마련된 체험 공간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서정 씨(20·여)는 “평소 서점에서 만화 전문 코너를 자주 찾는데 매장 1층부터 만화 전용 매대가 있어 흥미로웠다”며 “아직까지 만화책은 서브컬처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진입장벽을 낮추고 개방된 공간으로 조성돼 눈길이 갔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임세은 양(19·여)은 “서점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책뿐만 아니라 볼거리가 다양해서 공간에 오래 머물게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시설이 포함된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은 만화와 굿즈, 체험시설 등 다양한 요소가 서점을 보다 가볍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둘러보거나 체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방문과 체류를 유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화 공간은 그동안 서점과 거리가 멀었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독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음악, 놀이시설 등을 계기로 매장을 찾은 뒤 자연스럽게 책과 다른 콘텐츠를 함께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이 도서 구매를 전제로 한 목적형 공간에서 다양한 취향을 발견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에 밀리고 수익성 흔들리고”…특화매장서 활로 찾는 대형서점
대형서점들이 공간 차별화에 나선 배경에는 악화하는 업황이 지목된다. 온라인을 통한 도서 구매가 보편화된 데다 독서 인구 감소와 교육도서 시장 침체까지 겹치면서 기존의 도서 판매 중심 사업만으로는 성장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 4개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2조1682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약 185억원으로 같은 기간 4% 줄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따른 특수효과 약화와 교육도서 시장 침체 등이 매출 감소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출판시장의 업황 악화는 대형 서점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풍문고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1453억원으로 전년 약 1495억원보다 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익은 약 3억6000만원 흑자에서 약 2억8000만원 적자로 돌아섰다. 교보문고는 전체 실적과 달리 오프라인 영업점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흑자로 전환했지만 오프라인 영업점의 상품·제품 판매액은 약 3585억원에서 약 2970억원으로 17.2% 감소했다.
반면 대형서점들이 최근 특화 공간의 핵심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는 만화·웹툰·웹소설 시장은 성장세를 보였다. 주요 만화·웹툰·웹소설 출판사 9곳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3159억원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약 281억원으로 같은 기간 82.1% 늘었다. 주요 서점 4사의 매출이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대형서점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굿즈, 캐릭터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배경에도 성장하는 서브컬처 소비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도서 판매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비교적 충성도가 높고 상품 구매 의사가 뚜렷한 소비자층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만화와 캐릭터 굿즈는 책과 달리 온라인 이미지로만 확인하는 것보다 실제 상품을 직접 보고 비교하려는 수요가 크다는 점도 오프라인 매장과의 결합에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좋아하는 작품의 단행본부터 피규어, 음반, 문구류 등을 한 공간에서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하면 소비자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추가 구매까지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특화 매장 조성을 넘어 오프라인 서점의 생존 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손쉽게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기능만으로는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향후 오프라인 서점의 공간 차별화 경쟁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화나 굿즈 등 특정 콘텐츠를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얼마나 재미있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이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데서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경험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서점업계에서도 다양한 특화 공간을 활용한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매장에서 형성된 긍정적인 경험이 향후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한 구매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처럼 매장에 책을 잔뜩 쌓아 놓고 판매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이제 소매 공간은 물건을 판매하는 곳에서 소비자에게 흥미를 일으키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간에서의 경쟁력이 브랜드 가치를 만들고 실제 구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구매가 온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만큼 공간 자체에서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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