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가 행정동과 법정동이 달라 발생하는 주민 불편을 해소하겠다며 일원동 일부 지역의 법정동을 개포동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상당수 주민들은 기존 행정체계에서 불편을 체감한 적이 없었던 만큼 법정동 변경이 오히려 새로운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행정 효율성을 앞세운 정책이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현실과는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3일 강남구는 행정동과 법정동 명칭이 달라 발생하는 혼선을 줄이기 위해 일원동 690번지 일대 법정동을 개포동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상 지역은 일원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일대로 아파트 단지명에는 ‘개포’를 사용하지만 법정동은 일원동, 행정동은 개포2동과 개포3동에 속해 있다.
행정동은 주민센터 운영과 복지서비스 등 행정 편의를 위해 설정한 구역이고, 법정동은 부동산 등기와 토지대장 등에 사용되는 법적 행정구역이다. 강남구는 두 행정구역의 명칭이 달라 주민센터 이용이나 주소 표기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해 왔다며 이를 일치시켜 행정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강남구는 지난해 주민 탄원서를 계기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했고, 지난 9일 공개한 주민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법정동 변경에 찬성한 주민들이 행정동과 법정동 불일치에 따른 혼선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르데스크 취재 결과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인식은 달랐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행정동과 법정동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조차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고,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불편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익숙한 주소 체계를 변경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새로운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원동에 거주하는 황민호 씨(37·남)는 “행정동과 법정동이 다르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주민센터를 방문할 일도 거의 없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하는데 굳이 법정동을 바꿔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주소가 바뀌면 각종 서류나 안내 과정에서 더 헷갈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년 넘게 이 일대에 거주했다는 박연화 씨(61·여)는 “오랫동안 살면서 주소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며 “법정동이 일원동인지 개포동인지 신경 써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바뀐다고 하니 왜 바꾸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은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뀌면 한동안 주민들만 더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법정동 변경의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실수요자들이 집을 선택할 때 법정동보다 생활권과 교통, 학군, 가격 등을 훨씬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일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손님들이 집을 보러 와서 법정동부터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은 지하철 접근성과 학군, 생활 인프라를 먼저 본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서를 쓰면서 법정동이 일원동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는 있지만 그 때문에 계약이 취소되거나 개포동 주소의 다른 매물을 요구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법정동 변경 추진이 행정 효율성뿐 아니라 ‘개포’라는 지역 브랜드를 공식 주소에도 반영하려는 성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 해당 지역 아파트 대부분이 개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 생활권 인식과 공식 행정구역을 일치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행정체계를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편익과 정책 목적이 일치하는지는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정석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행정동과 법정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주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얻는 편익이 크지 않다면 정책 취지와 주민 체감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권과 주거 선호도는 교통과 교육환경, 생활 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가 결정하는 만큼 법정동 명칭만으로 지역 가치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행정 효율성과 함께 주민들이 실제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는지까지 충분히 고려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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