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 ‘물멍’에 이어 최근에는 ‘비멍’이 새로운 힐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장마철이면 실내 쇼핑몰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일부러 비 오는 날을 골라 카페와 골목을 찾으며 빗소리와 비에 젖은 풍경을 즐기는 모습이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와 통창 너머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하나의 여가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서울 부암동과 서촌, 경기 수원 광교카페거리 등은 장마철이면 오히려 방문객이 늘어나는 대표적인 ‘비멍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비 오는 날 더 붐빈다…‘비멍’ 명소가 된 서울·수도권 골목
인스타그램에서 ‘#장마’를 검색하면 약 105만개 이상의 게시물이 등록돼 있다. ‘#실내데이트’는 약 45만1000건, ‘#빗소리’는 약 22만6000건, ‘#비멍’ 역시 1만9000건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단순히 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빗소리와 풍경을 감상하는 콘텐츠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게시물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비멍 명소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이 지목된다.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부암동은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비 오는 날이면 산안개와 숲 풍경이 어우러진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카페 대부분이 통유리창이나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실내에서도 빗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골목 곳곳의 카페에서는 통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과 조용한 주택가 풍경이 어우러지며 장마철 특유의 감성을 즐기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산 중턱에 위치한 일부 카페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방문객들에게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차량 이동의 불편함보다 자연 속에서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주형 씨(38·남)는 “비가 오면 접근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조용하게 쉬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며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오기 쉽지 않았겠지만 커피를 마시며 비 오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장마철에도 다시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종로구 서촌 역시 장마철이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표적인 비멍 명소다. 한옥과 오래된 골목길이 이어지는 서촌은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이 많아 처마 아래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재 당일에도 한옥 카페마다 창가 좌석은 대부분 일찌감치 채워져 있었고 방문객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조용히 빗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서촌은 오래전부터 ‘비 오는 날 걷기 좋은 동네’, ‘장마 감성 명소’ 등으로 SNS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서촌에서는 공간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비멍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전통 한옥을 그대로 활용한 카페에서는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와 고즈넉한 골목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대형 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에서는 넓은 통창과 테라스를 통해 비 내리는 정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경복궁역 3번 출구 인근의 한 대형 주택 리모델링 카페 역시 장마철 인기 장소 가운데 하나다. 싱가포르 감성 인테리어와 카야토스트로 유명한 이곳은 넓은 정원과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손님 대부분이 정원이 보이는 창가나 테라스 인근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었다.
방문객들은 대화를 나누기보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빗줄기가 정원을 적시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데 집중했다. 혼자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카페라기보다 ‘비를 감상하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 수원 광교카페거리 역시 대표적인 비멍 명소로 꼽힌다. 광교호수공원과 하천을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들이 줄지어 있어 통창 너머 펼쳐지는 풍경이 장마철이면 더욱 운치를 더한다. 하천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좌석은 가장 먼저 채워졌고, 방문객들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 카페가 오후 9시 전후 영업을 마쳐 늦은 시간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늦게까지 운영하는 일부 카페에는 장시간 머물며 비 오는 분위기를 즐기려는 방문객들이 몰리는 모습도 확인됐다. 커피뿐 아니라 맥주와 에이드 등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 곳은 대부분 좌석이 가득 차 있었다.
아내와 함께 방문한 이재훈 씨(53·남)는 “집과 가까워 자주 오는 곳이지만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본 것은 처음”이라며 “평소에는 비가 오면 집에만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빗소리와 풍경이 생각보다 훨씬 운치 있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늦게까지 영업하는 데다 다양한 음료도 즐길 수 있어 다음에도 비 오는 날 다시 찾고 싶다”고 말했다.
장마 감성 공유하는 사람들…SNS로 퍼지는 ‘비멍’ 문화
비멍 명소로 떠오른 부암동과 서촌, 광교카페거리의 인기는 오프라인을 넘어 SNS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기준 #부암동은 약 27만2000건, #서촌은 약 103만건, #광교카페거리는 약 3만9000건 이상의 게시물이 등록돼 있다.
게시물 대부분은 단순히 카페나 맛집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장마철에 방문하기 좋은 장소를 하나의 동선으로 묶어 소개하는 콘텐츠다. 세운 골목 산책과 통창 카페, 한옥 카페와 골목길, 광교호수공원과 카페거리 등을 함께 추천하는 콘텐츠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비 오는 날 꼭 가봐야 하는 곳’, ‘장마 감성 카페’, ‘빗소리 힐링 명소’ 등의 키워드를 활용해 장마철에만 경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강조하는 게시물도 꾸준히 늘고 있다. 게시물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비멍, 힐링, 감성, 장마, 빗소리, 통창, 창가, 혼자 가기 좋은 카페 등이다. 이용자들은 “비 오는 날이라 더 아름다운 공간” “빗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 오는 날 다시 찾고 싶은 카페”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이 금방 간다” 등의 후기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방문 인증을 넘어 실제 이동 동선까지 소개하는 콘텐츠도 크게 늘었다. 부암동에서는 산책 코스와 통창 카페를 함께 추천하는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고, 서촌에서는 한옥 카페와 돌담길 산책 코스를 묶은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광교카페거리 역시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카페와 사진 촬영 명소, 다양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장소 등을 함께 정리한 게시물이 지속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실제 방문객들의 경험을 담은 정보도 활발히 확산되고 있다. 창가 좌석 위치와 테라스 이용 여부, 주차 가능 여부는 물론 비 오는 날 방문하기 좋은 시간대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처음 찾는 사람들도 손쉽게 자신만의 ‘비멍 코스’를 계획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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