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파트 열풍의 주역]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란 뭘까요? 단순한 주거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죠. “너 어디 아파트 살아?” 이 질문 하나에 집값, 동네, 생활 수준까지 한꺼번에 읽히곤 합니다. 그런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이름은 꽤 단순했습니다. ‘압구정 현대’, ‘대치 은마’처럼 동네 이름에 건설사 이름을 붙이는 정도였죠. 그 흐름을 완전히 바꾼 브랜드가 2000년에 등장합니다. 미래의 ‘래’, 아름다울 ‘미’, 편안할 ‘안’. 바로 삼성물산의 래미안입니다. 오늘은 고 이건희 회장의 ‘최고를 향한 집념’이 어떻게 아파트에 스며들었는지, 그리고 삼성물산이 어떻게 ‘래미안’ 하나로 지방 도시부터 강남 핵심지까지 존재감을 넓혀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삼성은 그냥 집장사나 하는 회사가 아니다”]
래미안의 탄생과 성장 뒤에는 늘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철학이 깔려 있었는데요. 당시 한국 건설업계는 대충 시멘트 발라서 튼튼하게만 지으면 분양이 되던 이른바 ‘집장사’의 시대였습니다. 다들 “이 정도면 잘 지었지~”하고 안주하고 있는데, 이건희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우리 삼성이 짓는 아파트는 반도체처럼 정밀하고, 가전제품처럼 완벽해야 한다. 단순히 잠만 자는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살고 싶어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때 이건희 회장이 꽂힌건 다름 아닌 조경이었어요. 아파트 단지 딱 들어오자마자 바깥의 시끄러운 도심과 완벽히 단절된 숲 속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 이거죠. 그래서 삼성물산은 아파트에 최초로 ‘개인 정원’ 개념을 넣습니다. 이름하여 ‘래미안 가든 스타일’인데요. 예전 아파트 조경이 남는 땅에 나무 몇 그루 심는 수준이었다면 래미안은 단지 안에 내 집 앞 정원 같은 풍경을 만든 거죠. 그 결과 래미안은 세계조경가협회, IFLA 어워드에서 최우수상과 본상을 합쳐 15회나 수상합니다. 최근 입주한 반포 래미안 원펜타스와 래미안 포레스티지도 이 상을 받았죠. 결국 래미안의 조경은 이건희 회장이 말했던 ‘정말 살고 싶은 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자이도 좋지만 강남은 래미안”]
래미안의 진짜 위상은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 ‘강남’에서 입증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반포 일대 구축 아파트들이 하나둘씩 재건축에 들어갔거든요? 강남 땅 여기저기에 막 공사가 들어가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로 쏠렸습니다. “그래서 강남 대장 아파트는 어디가 될까?” 처음 분위기는 GS건설의 반포자이 쪽으로 기우는 듯했습니다. 2008년 반포자이가 등장했을 때 반응이 정말 뜨거웠거든요. 입지 좋고, 규모 크고, 지금도 부자 아파트로 유명하죠. 그런데 딱 1년 뒤, 고속터미널 맞은편에 비슷한 규모의 대단지가 하나 더 들어섭니다. 바로 래미안 퍼스티지입니다. 알 사람은 알죠. 반포자이와 래미안 퍼스티지는 그냥 이웃 단지가 아니라, 강남 아파트 브랜드의 자존심이 맞붙은 라이벌이거든요. 그런데 조경부터 관리, 심지어 같은 평형대 호실 시세까지 래미안 퍼스티지가 한발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이거랑 관련한 재밌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2010년대 초반에 래미안 퍼스티지에서 주민 간에 싸움이 벌어졌던 적이 있어요. 원래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관리를 누가 했냐면요. 삼성물산이 지은 대표 고급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를 관리하던 업체가 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입주자대표회 일부가 이 업체를 ‘반포 자이’를 관리하는 업체로 바꾸려고 했어요. 관리비 좀 줄이려고. 그러니까 주민들이 막 들고 일어납니다. “아니 우리가 반포 자이보다 잘 나가는데 왜 반포 자이랑 똑같은 업체를 쓰냐? 이러면서 반대를 하는 거죠. 이 정도면 당시 강남에서 래미안이 어떤 이미지였는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런데 최근 이 라이벌 관계가 래미안의 완벽한 압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바로 ‘래미안 원베일리’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아파트 시장에서 엄청 뜨거운 이름이죠? 대형 평수는 실거래가 100억원대를 찍었고, 평당 가격은 2억 원을 넘겼습니다. 국내 공동주택 평당 거래가 기준으로 최고가 수준의 기록을 세운 건물이 됐어요. 강남 고속터미널을 기준으로 동쪽에 자이 타운이 있다면, 서쪽은 래미안의 무대였습니다. 퍼스티지, 원베일리, 원펜타스, 트리니원까지. 서반포 일대가 사실상 래미안이 장악한 고급 아파트 벨트가 된 겁니다. 와 저는 언제쯤 저런 집에 한 번 살아볼 수 있을까요? 부럽습니다.
[남들 다 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없는 모태 명품]
여기서 또 하나 재밌는 관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 건설사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엄청 밀고 있거든요? 현대건설은 디에이치(The H), DL이앤씨는 아크로(ACRO), 대우건설은 써밋(SUMMIT), 롯데건설은 르엘(LE EL), 이런 식으로 고급 브랜드를 따로 내세웁니다. 강남 재건축 잡으려고 그런거죠. 그런데 삼성물산은 좀 달라요. 20년 넘게 그냥 래미안 하나로 갑니다. 조합원들이 “좀 더 고급스러운 윗급 브랜드 하나 만들어줘라” 이렇게 요구해도 꿈쩍하지 않아요. 이게 이유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쭉 래미안이 주거의 명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린 처음부터 명품만 만들었고 지금도 그런데, 이제 와서 하이엔드라고 따로 만들어버리면 기존에 래미안은 대체 뭐가 되는 겁니까?” 그니까 래미안 자체가 이미 최고의 프리미엄이라는 겁니다. 사실 강남 재건축을 잡겠다고 윗급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순간, 원래 래미안 살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아랫급 브랜드’에 사는 사람이 돼버리잖아요? 삼성물산은 그걸 잘 알고 있던 거죠. 결국 돈이 되는 쉬운 길보단 기존 고객들과의 신뢰를 선택한 겁니다. 대신에 아파트 설계와 자재, 커뮤니티 같은 수준을 한껏 끌어올려가지고 단일 브랜드의 가치를 지켜내는 정공법을 써요. 그리고 이 선택은 오히려 고액 자산가들에게 더 강하게 먹히죠. “아 여기는 기존 고객의 자부심을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는구나.” 바로 이 신뢰가 래미안을 강남에서도 통하는 브랜드로 만든 겁니다.
[계약서 찢고 래미안 선택? 강남 재건축의 절대 권력]
강남에서 래미안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사건이 또 하나 있는데요. 신반포15차, 지금의 래미안 원펜타스 이야기입니다. 원래 여기는 이미 다른 대형 건설사와 시공 계약까지 끝난 곳이었어요. 그런데 설계 변경과 고급화 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니까 조합원들이 나서서 직접 계약을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새 시공사를 뽑는 투표에서 삼성물산에 75.9% 거의 몰표를 던집니다. 이게 사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결정이었습니다. 기존 시공사랑 계약 끊고, 또 새 시공사 계약하고 이런게 전부 돈과 시간이 걸린 문제니까요. 재건축 기간이 늘어날 수도 있고. 그런데도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삼성물산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이었습니다. 삼성그룹의 자본력을 업고 있는 곳이잖아요. “적어도 삼성물산이면 중간에 흔들리진 않겠다.” 뭐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거나 할 위험은 아예 없다고 본 거죠.
여기에 래미안 특유의 사후관리도 한몫했습니다. 그냥 아파트를 지어놓고 끝나는게 아니라 입주 후까지 책임져주는 서비스를 했거든요. ‘헤스티아(Hestia)’라고 삼성물산이 만든 하자보수 전담 서비스가 있는데 입주 후에 “전구가 나갔어요”, “문고리가 고장났어요” 하면 호텔 컨시어지처럼 즉각 출동해서 문제를 해결해줬습니다. 애초에 하자 발생률도 낮은 완벽주의 시공에다가 사후관리 서비스까지 붙으니까 깐깐한 강남 조합원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던거죠.
[당신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습니까?]
수많은 경쟁자들이 겉포장을 바꾸고, 새로운 이름을 달고 나올 때 래미안은 달랐습니다. 2000년 처음 등장했던 그 이름 그대로, 강남 최고의 부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죠. 래미안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급 완벽주의를 주거 공간에 이식한 뚝심. 프리미엄 브랜드를 새로 파는 것 대신 기존 고객의 자부심을 지켜주기 위해 품질로 승부한 단일 브랜드 전략. 여기에 입주 후까지 책임지는 삼성식 사후관리까지. 이름표를 바꾸지 않고도 시장에서 가장 비싼 이름 중 하나가 된 래미안, 그 브랜드 가치는 결국 ‘최고를 만들겠다’는 초심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진짜 프리미엄은 새 이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시간이 쌓아 올린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르데스크 4인용책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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