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문화와 절주·금주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위스키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때 품귀 현상까지 빚으며 투자 상품과 수집 대상으로 각광받았던 위스키는 이제 재고 부담에 시달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유통업계는 할인 판매를 확대하는 등 재고 소진에 나서고 있지만 소비 심리 위축이 장기화되면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16일 르데스크가 서울 강남구 소재 기업형 슈퍼마켓(SSM) 3곳을 확인한 결과 과거와 달리 위스키 매대 규모가 크게 축소된 상태였다. 과거 프리미엄 위스키가 진열됐던 공간 상당수는 일반 주류 코너로 대체됐고 위스키 진열 면적도 와인과 맥주 코너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현재는 짐빔, 산토리 등 비교적 가격 부담이 적고 하이볼용으로 활용되는 제품 위주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SSM 매장 주류 코너 관계자는 “예전에는 위스키 종류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회전율이 높은 제품 위주로 운영하는 분위기다”며 “판매가 부진한 일부 제품은 본사 차원에서 회수해 창고형 할인점 등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대형 주류 전문 판매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위스키 열풍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특정 제품이 입고되자마자 품절되거나 예약 구매 문의가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재고 부족을 걱정하는 고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매장 관계자는 “1년 전만 해도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문의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여러 통씩 왔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거의 사라졌다”며 “위스키 할인 행사도 예전보다 훨씬 자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위스키를 즐겨 구매한다는 직장인 김정진 씨(34·남)는 “예전에는 인기 제품을 사려면 입고 일정을 확인하고 방문해야 했는데 최근에는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다”며 “가격도 예전보다 내려간 제품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위스키 시장의 침체가 단순한 경기 문제를 넘어 소비문화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고가 위스키를 구매해 보관하거나 수집하는 문화가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경험 소비와 실용 소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프리미엄 주류에 대한 수요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 40도 안팎의 높은 도수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은 최근 소비자들의 선택에서 위스키를 멀어지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위스키 가격은 5만~15만원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맥주나 소주보다 음주 부담도 크다. 건강을 이유로 술을 줄이거나 소비 지출 자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위스키 수요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류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위스키 시장은 수집 수요와 하이볼 열풍,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 등이 겹치며 과열 양상을 보였지만 현재는 수요가 크게 둔화된 상황이다”며 “금주 문화 확산과 소비 위축이 맞물리면서 재고 부담이 커지고 있고 당분간 가격 약세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통계에서도 위스키 시장의 침체를 엿볼 수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대비 17.7%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기존에 확보한 재고가 충분한 데다 소비가 둔화되면서 신규 물량 도입을 줄인 영향으로 보고 있다.
재고 부담은 가격 하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창고형 할인점들은 일부 위스키 제품을 시중가보다 최대 30% 이상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위스키 가격 비교 애플리케이션에 따르면 ‘로얄살루트 21년산 그레인’은 2024년 6월 24만9800원에서 올해 6월 17만9800원으로 약 28% 하락했다. ‘발렌타인 싱글몰트 글렌버기 15년산’ 역시 같은 기간 11만9800원에서 8만9400원으로 25% 넘게 가격이 떨어졌다.
위스키의 경우 소주나 맥주처럼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품목이 아니라 선물용이나 취미·수집 목적의 소비 비중이 높은 만큼 경기 상황과 소비자 인식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건강관리와 자기관리, 수면의 질 개선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주 자체를 줄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술자리를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가 아닌 개인의 선택으로 인식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스키는 다른 주종보다 가격 부담이 크고 도수도 높기 때문에 절주나 소비 축소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는 품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당분간 위스키 시장은 할인 판매 확대와 재고 조정 등 구조적인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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