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에서는 특정 산업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관련 소재 기업들의 주가가 동반 강세를 보이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방 산업이 주목받을수록 공급망의 출발점에 위치한 소재 기업들에 대한 수요 확대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소재가 최종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이익 창출 능력과 무관하게 테마에 편승한 ‘묻지마 투자’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투자 판단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30분 기준 희토류의 대체재로 꼽히는 페라이트(Ferrite) 생산 기업들의 주가는 평균 3.07%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다. 이는 같은 시간 코스피 상승률(+1.34%)을 두 배 이상 상회하는 수치다. 종목별로는 페라이트 마그네트 제조사인 유니온머티리얼이 전일 대비 8% 넘게 올랐고 상신전자(+7.39%), 삼화전자(+1.99%), EG(+1.20%) 등도 일제히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페라이트는 산화철에 바륨, 망간, 니켈 등 금속 원소를 혼합해 제조한 세라믹 소재다. 가격이 저렴하고 고온 안정성이 뛰어나 경제적인 자석 소재로 널리 쓰인다. 특히 자동차 전장부품과 가전기기 등에 활용돼 희토류계 영구 자석의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다. 증권업계는 오는 14일 예정된 미중회담에서 중국의 희토류 공급 통제 가능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관련 종목에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소재주의 강세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글로벌 AI 반도체 랠리에 힘입어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들의 주가 역시 강세를 보였다. 통상 반도체 소재 업종은 전방 산업의 수요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반도체 수요 증가로 업황이 호조를 보이면 제조업체들이 공장 가동률을 높여 생산량을 확대하게 되고 이에 따라 공정에 투입되는 소재 사용량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종목별 흐름을 살펴보면 반도체 소재 기업들의 실적 기대감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반도체 전공정 소재 기업들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17.96%에 달했다. 특히 반도체용 특수가스 전문 기업인 티이엠씨는 이 기간 80% 이상 상승했다. 티이엠씨는 지난 2024년 삼성전자의 요청에 따라 올해 일산화탄소(CO) 가스 전용 생산 라인인 3공장을 완공하며 공급 역량을 강화한 바 있다.
여타 전공정 소재주들도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OCI(+41.35%)는 반도체 세정용 과산화수소를, 티씨케이(+34.09%)는 식각 공정 등에 쓰이는 고순도 실리콘 카바이드(SiC)를 생산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반도체 세정과 코팅 사업을 영위하는 코미코(+33.36%)와 노광 공정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제조사인 와이씨켐(+28.30%) 역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AI 반도체 열풍 속에 차세대 패키징 핵심 소재로 꼽히는 그래핀(Graphene) 제조 관련 기업들도 상승 랠리에 합류했다. 흑연을 원료로 하는 그래핀은 기존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 속도가 100배 이상 빨라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우수한 전기적 특성 덕분에 웨어러블 기기와 전자 종이 등 미래형 IT 기기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 달간 그래핀 관련 종목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약 12%를 기록했으며 종목별로는 그래핀 원료를 생산하는 나노가 70% 이상 상승했고 해성디에스(+52.28%), 덕산하이메탈(+41.18%), 경인양행(+23.81%) 등 그래핀 생산 기업 대부분이 강한 오름세를 나타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정밀화학 소재주들의 상승세도 뚜렷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나프타 분해 시설(NCC) 공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련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NCC 가동률 유지에 따라 정밀화학 소재 수요가 동반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자 심리를 자극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로 최근 한 달간 정밀화학 소재사들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10.41%에 달했다. 대표적으로 합성수지 생산 소재로 사용되는 폴리머 안정제 제조사인 송원산업은 이 기간 약 27% 상승했다. 페인트와 도료 등의 용제로 쓰이는 초산에틸을 생산하는 한국알콜 역시 10% 가량 오르며 강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소재가 산업 전반의 기초를 형성하는 만큼 그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소재는 부품을 구성하는 근간이자 기술 혁신의 출발점이다”며 “역사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 당시 사용되던 핵심 소재였음을 고려할 때 현대 산업에서도 소재는 그 시대의 기술적 한계를 정의하고 돌파하는 결정적인 요소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소재의 중요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최근 주식시장의 반응이 다소 과열된 측면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별 기업의 독보적인 기술력이나 가시적인 제품 판매 성과와 관계없이 특정 섹터로 묶이기만 하면 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수가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는 강세장에서는 특정 테마로 엮이기만 해도 실적과 상관없이 주가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며 “이러한 흐름에 무분별하게 편승하는 투자 방식은 향후 지수 조정기가 찾아왔을 때 하락 폭이 훨씬 커 큰 손실을 입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단순히 뉴스나 이슈에 반응하는 단기 매매보다는 해당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보유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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