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외신과 증권가를 중심으로 코스피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수는 오름세를 기록 중이나 소수 종목이 상승분을 독식하는 구조적 비대칭성이 심화되면서 증시 전반의 기초체력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 비해 증시의 기초 체력이 탄탄한 미국과 일본에서도 특정 종목이 이끄는 상승장이 대외 악재와 맞물려 하락장으로 반전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한국 증시 취약성 커졌다”…과거 미·일 증시 덮친 ‘종목 편중 후폭풍’ 재조명
10일(현지시간)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코스피 상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한국 반도체주 급등이 감추고 있는 증시 취약성’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상승의 성과 대부분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쏠림 현상은 안정적인 자산 형성의 공식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분석된다. 또 안정적인 투자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 종목에 걸쳐 훨씬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의 동반이 필요하다.
실제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 확대 기대감이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기대가 코스피 전체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11일 종가 기준 코스피는 올해 초 대비 약 8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률은 약 222%, 277%로 모두 코스피 상승률을 크게 상회했다. 특히 이날 장중 삼성전자는 29만원을, SK하이닉스는 190만원을 돌파하는 등 연일 신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현재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반도체 업종 비중은 60% 후반대까지 확대된 상태다.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코스피 지수는 4100선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종목에 악재가 발생할 경우 시장 전체가 휘청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정 종목이 증시 상승을 주도하다가 해당 종목이 악재에 휩싸이면서 시장 전체가 흔들렸던 사례는 예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비해 기초 체력이 탄탄한 시장으로 평가 받는 미국, 일본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대 미국의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멋진 50개 종목’이라는 의미의 니프티 피프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미국 기관 투자자들이 집중 매수했던 50개의 우량주를 뜻한다. 코카콜라, 제록스, 맥도날드, 월트 디즈니 등 당시 미국 증시의 황금기를 상징하던 초대형 기업들이 포함돼 있었다. 해당 종목들은 ‘한 번 사면 영원히 보유하는 주식(One-decision stocks)’이라 불릴 만큼 시장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당시 해당 종목의 상승세는 독보적인 수준에 가까웠다. 덕분에 S&P500 지수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증시 전체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시장 상황이 급반전됐다.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가파른 금리 인상 조치가 겹치면서 ‘니프티 피프티’ 종목의 상승세도 한 풀 꺾였다. 제록스와 에이번 등 일부 종목은 고점 대비 70~90%에 달하는 하락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량주들의 연쇄 폭락은 증시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투자자들의 피해도 잇따랐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역시 소수 종목에 의한 시장 왜곡이 초래한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지목된다. 당시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소수 IT 기업에 대규모 자금이 집중되면서 나스닥 시장도 활기를 띄었다. 나스닥 지수는 1995년 1000선에서 2000년 3월 5048선까지 5년 만에 5배 가량 상승했다. 그 기간 일부 종목의 주가는 10배 넘게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조치와 닷컴 기업들의 수익성 한계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시스코는 고점 대비 약 90% 폭락했으며 인텔과 오라클 등 주요 기술주들 역시 60%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다. 대형주들의 하락으로 인해 나스닥 지수 또한 2002년 하반기 고점 대비 약 80% 떨어졌다. .
일본에도 유사 사례가 존재한다. 1980년대 후반 일본 증시에선 은행주와 부동산 관련 금융주가 시장 전체를 주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9년 당시 니케이지수 시가총액 상위 5곳 중 4곳이 스미모토은행, 후지은행, 제일권업은행, 일본흥업은행 등 은행이었다. 이들 종목의 강세는 니케이지수 상승으로 직결돼 1985년 1만3000선이었던 닛케이 지수는 1989년 12월 3만8900선을 돌파하며 4년 만에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그런데 이후 일본중앙은행이 금리 인상과 부동산 대출 규제라는 ‘긴축 카드’를 꺼내 들면서 상황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주가도 하락세로 돌아섰고 니케이지수 역시 1992년 1만5000선까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상황이 다르고 현재 국내 반도체 업종의 실적이 견고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특정 종목에 과도하게 매수세가 집중되는 현상은 잠재적 위험 요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이외 업종들이 코스피의 상승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5%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실적 기대감은 여전히 높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요인은 수출 증가율의 둔화 가능성이다”고 짚었다. 이어 “이익 규모 자체는 커지더라도 기저효과가 점차 사라지는 2~3분기 이후부터 수출 증가율이 서서히 낮아질 경우 시장의 탄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우량 기업이고 실적 또한 견고한 것은 사실이나 특정 종목에만 수급이 쏠리는 것은 해당 종목의 악재 발생 시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단순히 특정 대형주의 주가 부양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증시 전반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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