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이한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 열풍이 심상치 않다. 포켓몬 캐릭터에 과도하게 열광하는 이른바 ‘포켓몬 앓이’라는 기현상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포켓몬 팝업스토어에 수만명의 인파가 몰리는가 하면 포켓몬 협업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대기 행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캐릭터 인기가 경제 전반에까지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정서적 소비와 경기 침체기 특유의 위안형 소비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성수동 마비시킨 ‘피카츄’의 역습…올리브영 판매량 1위 제품도 ‘포켓몬 콜라보’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노동절 휴일이었던 지난 1일 서울 성수동에선 포켓몬 탄생 30주년 기념 ‘포켓몬 메가페스타’ 행사가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행사가 조기 종료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경찰과 소방 인력까지 대거 출동한 결과였다. 각종 체험 및 전시 공간에 예상 범위를 초과한 인원이 집중되자 주최 측은 운영 시작 2시간 만에 조기 종료를 결정했다.
한국에서 포켓몬 인기는 타국에 비해 유독 두드러지는 편이다. 지난 2022년 포켓몬 캐릭터를 활용한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의 글로벌 이용자 데이터 분석 결과, 한국의 이용자 수는 세계 2위 수준에 달했다. 당시 글로벌 월간활성이용자(MAU)의 약 12%가 한국에서 발생했다. 또한 2022년 SPC삼립이 재출시한 ‘포켓몬 빵’은 제품 내 캐릭터 스티커(띠부씰) 수집 열풍에 힘입어 출시 초기 3일 만에 누적 판매량 75만봉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에서 포켓몬 IP 사업을 전개하는 포켓몬코리아의 실적 역시 매 년 우상향하고 있다. 지난해 포켓몬코리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32억7209만원, 132억7532만원 등이었다. 전년(88억6103만원) 대비 각각 약 57%, 50%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역시 110억9218만원으로 전년(80억2991만원) 대비 38.1% 증가했다.
이러한 인기는 점차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국내 최대 헬스&뷰티 플랫폼 CJ올리브영은 이달 1일부터 30일까지 상품과 공간, 체험 콘텐츠를 아우르는 IP 협업 ‘CJ올리브영X포켓몬’을 진행하고 있다. 포켓몬 탄생 30주년 및 가정의 달을 맞이해 기획된 이번 행사는 소비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4일 오후 12시 40분 기준 CJ올리브영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포켓몬 협업 상품이 실시간 구매 랭킹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판매 순위 1~5위 중 1위(수딩크림), 2위(단백질 쉐이크), 4위(세럼) 등에 포켓몬 에디션 제품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서울 명동의 한 올리브영 매장 관계자는 “포켓몬 협업 제품을 찾는 한국인과 중·일 관광객이 몰리며 이번 연휴 기간 매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며 “영업시간 내내 매장 음악을 모두 포켓몬 주제가로 반복 송출할 정도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포켓몬 제품의 인기와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맞물리면서 5월 초 연휴 기간 매출이 평시 대비 50%가량 급증해 매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포켓몬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고 싶은 정서적인 영향과 경기 침체 속에서 적은 비용으로 심리적 만족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맞물린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 1일 성수동 행사에 참석했다는 자영업자 황지승 씨(30·남)는 “어릴 적에는 용돈이 부족해 스티커를 모으는 것도 감지덕지였지만 나이가 들고 직접 벌이가 생기니 이제는 좋아하는 포켓몬 캐릭터를 종류별로 수집할 수 여유가 생겼다”며 “성인이 된 후 갖게 된 경제력이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향수와 결합되면서 포켓몬 제품 수집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포켓몬 열풍이 전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1인 가구 증가 현상에 기인한다”며 “가방에 포켓몬 인형을 다는 식으로 캐릭터와 감정을 공유하며 이를 동반자로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20·30세대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등 외로움을 느끼는 50대 이상의 1인 가구에서도 캐릭터를 애완견과 비슷한 정서적 지지체로 인식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데 앞으로 포켓몬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반려 캐릭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포켓몬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 세대 간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다”며 “다만 포켓몬 캐릭터 소비가 급증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안감도 일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에도 경기가 불황일수록 사람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작고 귀여운 존재에 더욱 빠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며 “무해하고 친근한 캐릭터를 통해 심리적 위안과 정서적 안정을 얻으려는 소비자들이 포켓몬으로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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