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7월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전면 개편하면서 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에는 차량 성능 중심으로 보조금이 지급됐지만 앞으로는 제조·수입사의 국내 산업 기여도와 사후관리 역량 등을 종합 평가해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정책 방향이 단순 보급 확대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소비자 선택권 제한과 시장 왜곡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도 동시에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개편안은 일정 점수 미달 시 보조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 구조를 채택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기존에는 조건을 충족하면 차등 지급 방식으로 보조금이 지원됐지만 앞으로는 80점 기준을 넘지 못할 경우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사실상 특정 기업 중심으로 보조금이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차가 아니라 기업을 본다”…소비자 선택권 위축 논란
이번 개편의 핵심은 평가 대상이 차량에서 기업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산업 기여도 ▲연구개발 ▲사후관리 ▲지속가능성 ▲ESG 대응 ▲안전관리 등 총 7개 항목을 기준으로 제조·수입사를 평가하고, 정량·정성 평가를 합산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은 기업의 차량에만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전기차 구매 결정의 기준을 소비자에서 정부로 옮겨놓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존에는 소비자가 차량 가격과 성능, 브랜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하면 일정 기준을 충족한 차량에 대해 보조금이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비자가 동일한 성능의 차량을 선택하더라도 제조사의 국내 투자나 고용, 협력사 연계 수준에 따라 보조금 여부가 달라지게 된다.
특히 인기 차종인 테슬라 차량의 경우 보조금 지급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소비자 불만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기차 구매를 고려해온 일부 소비자들은 보조금 전제를 두고 차량을 선택했는데 정책이 바뀌면 부담이 크게 늘어날 거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특정 브랜드에만 보조금을 지급해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기준은 하위 기업을 걸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상위 일부 기업만을 인정하는 구조”라며 “결과적으로 특정 기업에만 보조금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차 보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번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기업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생산 기반과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일부 완성차 업체를 제외하면 다수 수입차 브랜드는 기준 충족이 쉽지 않은 구조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현대·기아차 중심의 보조금 정책 아니냐는 불만까지 제기되고 있다.
산업 보호냐 시장 왜곡이냐…전기차 보급 확대한다더니 정책은 ‘역행’ 논란
정부는 이번 개편이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역시 자국 생산과 공급망을 중심으로 보조금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유럽의 탄소 기준 보조금 정책도 자국 산업 보호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이번 개편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단순 소비 지원이 아닌 산업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내 부품업체와의 협력, 기술 이전, 고용 창출, 서비스 인프라 구축 등을 평가 항목에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국내 기여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수입차 업체들의 국내 투자 확대를 유도하려는 정책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접근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수입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로,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정책이 해외 시장에서 역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일종의 ‘보복성 정책’으로 인식될 경우 통상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경쟁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에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입차에 대한 보조금 배제가 확대될 경우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보급 정책과의 충돌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 대상이 제한될 경우 소비자 구매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차 시장은 보조금 의존도가 높은 구조인 만큼 정책 변화가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시장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비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조금 정책이 강화되기보다 제한적으로 운영될 경우 초기 수요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보조금이 줄어들면 전기차 구매를 미루거나 내연기관 차량을 살 것”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정책의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방식의 정교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 기여도와 공급망 강화는 중요한 정책 목표지만 이를 보조금 ‘배제 기준’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기술인협회장은 “산업 보호와 경쟁력 강화라는 방향은 필요하지만 특정 기업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소비자 선택권과 산업 정책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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