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는 주식차트, 안주는 주가…외로운 서학개미의 ‘비밀 아지트’
인테리어는 주식차트, 안주는 주가…외로운 서학개미의 ‘비밀 아지트’

최근 실시간 미국 증시 시황판을 내건 주점, 이른바 ‘미주바(美株bar)’가 화제다. 이곳은 단순한 유흥 공간을 넘어 해외 주식 투자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수익과 손실의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밤 중 개장하는 미국 증시 시간에 맞춰 운영되는 이곳의 높은 인기는 ‘서학개미 열풍’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룸에선 투자 분석, 홀에선 위로주…“2시간째 주식 얘기만 나눠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주점. 겉보기엔 평범한 주점처럼 보이는 이곳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출입문 정면에는 거대한 미국 주식 전광판이 비치돼 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채워져야 할 매장 벽면 역시 나스닥(NASDAQ) 지수와 테슬라, 엔비디아 등 주요 종목의 실시간 시황판이 내걸려 있다. 이곳은 최근 미국 주식 투자자들, 이른바 ‘서학 개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증시 실시간 중계 주점이다.  

 

▲ 최근 실시간 미국 증시 시황판을 내건 ‘미주바(美株bar)’가 서학개미(해외주식 투자자)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미주바(美株bar)’에서 미국 주식 시황판을 보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 ⓒ르데스크

 

지난달 3일부터 팝업(POP-UP) 형태로 운영 중인 이곳은 매주 금요일 밤,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다. 2인석부터 6인석까지 마련된 좌석 주변에는 실시간 차트와 종목별 등락을 한눈에 보여주는 히트맵(Heat Map)이 쉴 새 없이 노출된다. 특히 매장 내부에 비치된 대형 스크린에선 외신 번역 서비스와 함께 해외 투자 속보를 전하는 전문 라이브 방송도 접할 수 있다. 증권사 프라이빗 뱅킹(PB) 센터나 트레이딩 룸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다.

 

르데스크가 직접 찾은 현장의 분위기는 여느 주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각 테이블 위에는 맥주잔과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이 놓였 있었다. “오늘 인플레이션 우려와 AI 버블론 때문에 변동성 크겠는데요”, “엔비디아가 버텨줘야 할 텐데” 등 손님들의 대화는 일반적인 술집의 잡담과는 결이 달랐다. 시황판의 숫자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훌륭한 안주가 되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며 장의 열기가 점차 달아오르면서 주점 내부 분위기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주요 종목이 ‘파란불’을 기록할 땐 여기저기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직장인 김성환 씨(39·남·가명)는 “오늘 아는 형과 함께 실시간 투자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크도 맺을 겸 이곳을 방문했다”며 “예상 밖의 하락장에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그래도 혼자 집에서 모니터를 볼 때보다 동지들과 함께 있으니 매를 맞아도 덜 아픈 기분이다”고 말했다.

 

▲ ‘미주바(美株bar)’는 단순한 유흥 공간을 넘어 해외 주식 투자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수익과 손실의 희비를 나누는 새로운 커뮤니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주점 내 프라이빗 룸 내부. ⓒ르데스크

 

하락장으로 인해 주점 내부 분위기가 가라앉자 주점 측에선 ‘위로주’를 돌리는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통주를 잔에 채워 건네는 직원의 입에선 “오늘 장이 많이 안 좋죠? 힘내서 성투(성공 투자)하시라고 한 잔 올립니다”라는 위로의 말이 나왔다. 공짜 술을 받아든 손님들은 언제 우울했냐는 듯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빨간불(상승)을 보자”는 건배사를 나누기도 했다.

 

매장 안쪽에 마련된 프라이빗 룸의 열기 또한 홀에 못지 않았다. 남성 손님 3명이 자리한 룸 내부에선 2시간 가량 차트와 종목 분석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구간이 지지선이냐 저항선이냐”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이내 서로의 포트폴리오를 공유하며 다시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잠시 후 해당 룸에는 옆 테이블의 여성 손님이 합석하며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투자 종목에서 서로의 일상으로 옮겨가는 등 핑크빛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최근엔 미국 주식 투자자들 외에도 여의도 증권사에 다니는 손님들도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전 투자 정보 공유는 물론 새로운 인연이나 연애 상대를 물색하는 장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게 주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증권사 직원은 “직장동료를 따라 방문했었는데 장이 좋을 때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정보를 나누고 안 좋을 때는 서로를 다독이는 묘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됐다”며 “여기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2차나 3차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 전문가들은 ‘미주바(美株bar)’의 등장이 한국의 유별난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분석한다. 사진은 2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한 트레이드.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미국 재무부 국제자본흐름(TIC)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735억6000만달러(원화 약 106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5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조세회피처를 제외한 주요국 가운데 3위에 해당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미국 주식에 대한 수요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이 집단 지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욕구가 오프라인의 특수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으로 해석된다”며 “투자가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보 교류와 사교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투자자 커뮤니티는 앞으로도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사 속 Q&A
Q1. 최근 등장한 ‘미주바(美株bar)’의 주요 특징과 운영 방식은?
A. 국내 최초로 미국 증시를 실시간 중계하는 이색 공간이다. 매주 금요일 밤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 가능하며 대형 전광판을 통해 나스닥 지수와 주요 종목(테슬라, 엔비디아 등)의 시황, 히트맵, 외신 번역 서비스 및 투자 속보 라이브 방송을 제공받을 수 있다.
Q2. ‘미주바(美株bar)’가 단순한 술집을 넘어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나?
A. 해외 주식 투자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수익과 손실의 희비를 나누는 새로운 형태의 투자자 커뮤니티 역할을 한다. 프라이빗 룸에서는 심도 있는 종목 분석 토론이 이뤄지기도 하고 증권가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 새로운 인연을 맺거나 사교를 즐기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Q3. 전문가들이 분석한 ‘미주바(美株bar)’ 등장 배경은?
A. 전문가들은 한국의 유별난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이 오프라인 공간으로 표출된 문화적 현상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전년 대비 5배 급증한 약 735억6000만달러(한화 약 106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조세회피처를 제외한 주요국 중 3위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수치다.
댓글
채널 로그인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이 궁금하신가요? 혜택 보기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
- 평소 관심 분야 뉴스만 볼 수 있는 관심채널 등록 기능
- 바쁠 때 넣어뒀다가 시간 날 때 읽는 뉴스 보관함
- 엄선된 기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뉴스레터 서비스
- 각종 온·오프라인 이벤트 우선 참여 권한
회원가입 로그인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