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법사위 문턱을 넘으면서 시장에선 벌써부터 ‘수혜주 찾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이로 인한 변동성 확대가 오히려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고 그동안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지배적이지만 소각이 곧바로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지적이다.
23일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은 3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이다.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이사 개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 기존 자사주도 유예기간을 거쳐 1년6개월 안에 소각해야 한다.
자사주를 담보로 제공하거나 교환사채(EB) 발행에 활용하거나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를 배정하는 방식 등 지배권과 연결될 수 있는 활용도 제한했다. 외국인 지분 제한 기업에 대해서만 3년 내 처분이라는 예외를 뒀다.
지주사·증권·고자사주 중소형주 등 ‘자사주 소각’ 수혜주 찾기 분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 찾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이 올라간다. 동일한 순이익을 가정할 경우 분모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 지표가 개선되는 구조다. 자사주가 많을수록 감소 폭이 커져 지표 개선 효과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 종목은 지주사다. 단순한 EPS 효과를 넘어 지배구조 재평가 기대가 겹치고 있어서다. 과거 일부 지주사들은 경영권 방어 또는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자사주를 상당 부분 확보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자사주가 지배력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일반주주 권익 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SK는 자사주 비중이 약 24.8%, 롯데는 약 27%, 두산은 약 17.8% 등이다. 자사주 소각이 현실화될 경우 유통 주식 감소와 함께 순자산가치 대비 저평가 상태였던 지주사들의 PBR 개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주사 할인 요인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수급 유입 기대도 함께 언급된다.
증권주 역시 주요 수혜군으로 분류된다. 증권업은 자기자본 활용이 중요한 산업 특성상 자사주 소각이 ROE 개선 기대와 연결되기 쉽다. 미래에셋증권은 자사주 비중이 약 23%로 과거 자사주 취득 후 전량 소각 공시 사례가 있다. 신영증권은 자사주 비중이 50%를 넘는 수준으로, 부국증권도 40%대 자사주를 보유한 것으로 언급된다. 자사주 소각이 본격화될 경우 발행주식 감소에 따른 주당 지표 개선 효과가 클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사주 비중이 40~50%대에 달하는 일부 중소형주들도 테마에 편입됐다. 인포바인은 자사주 비중이 51% 수준으로 거론되며 대표적인 수혜주로 분류됐고, 매커스, 조광피혁, 텔코웨어 등도 높은 자사주 비중을 이유로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 종목은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될 경우 유통 물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당 가치 상승 기대를 높이고 있다.
실제 상법 개정안 통과가 임박하자 자사주 소각 공시 건수가 빠르게 늘었다는 추세다. 이는 기업들이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지표로 해석된다. 다만 공시 증가 자체가 곧 기업가치 상승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소각 규모와 속도는 기업별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혜주 열풍 속 변동성 확대 주의보…투자 판단 기준은 결국 ‘기업가치’
전문가들 사이에선 주당 지표 개선과 기업가치 상승이 별개인 만큼 무분별한 자사주 소각 수혜주 투자에 대해 경각심을 내비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EPS와 ROE를 수치상 개선시킬 수 있지만, 기업의 총이익이나 영업현금흐름을 직접적으로 늘리지는 않는다. 수익성이 낮거나 업황이 둔화된 기업의 경우 소각 효과가 단기적인 주가 모멘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중소형 고자사주 종목의 경우 유통물량이 적다는 점도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지목된다. 자사주 비중이 높으면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매수세가 집중될 때는 주가 상승 속도가 빠르지만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될 경우 가격 하락 폭도 커질 수 있어서다. 거래대금이 크지 않은 종목에서는 호가 간격이 확대되면서 체감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법 일정과 세부 규정 역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정치적 변수나 시행 시점 조정 가능성이 남아 있고 예외 규정의 범위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 전략도 달라질 수 있다. 법안은 원칙적 소각을 규정하면서도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등 일정 요건에 한해 보유·처분을 허용하고 이 경우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전량 소각이 아닌 부분 소각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주 비중만을 근거로 일률적인 주가 상승을 예상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지목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복합적인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배당 정책의 예측 가능성, 이사회 독립성, 내부 통제, 공시 신뢰도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개선돼야 구조적인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그중 하나의 변수일 뿐 단일 정책으로 시장 전체의 할인 요인이 해소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 수혜주 투자에서는 단순한 자사주 비중보다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 현금흐름, 재무 건전성, 주주환원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에 대한 기대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중장기적으로 시장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종목별 옥석 가리기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실적과 신뢰가 주가를 결정하는 만큼 제도에 대한 기대감보단 기업의 체질을 먼저 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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