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웨이항공까지 기내에서 보조배터리를 이용한 충전을 전면 금지하기로 하면서 국내에서 여객편을 운항하는 11개 항공사 모두가 사실상 ‘기내 보조배터리 충전 불가’ 기조로 정리됐다.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항공사별 기내 편의시설 격차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대형항공사(FSC)와 저비용항공사(LCC) 간 ‘체감 서비스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티웨이항공은 최근 기내에서 보조배터리를 활용한 충전을 전면 금지한다고 23일 밝혔다. 기내 화재 위험, 리튬이온 배터리 과열 가능성 등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보조배터리를 반입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며 기내에 반입할 경우 단락(합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단자에 절연 테이프를 부착하거나 비닐백·개별 파우치에 1개씩 분리 보관해야 하며 좌석 앞주머니 등 승무원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두도록 안내하고 있다.
앞서 국내 주요 항공사들은 이미 기내 보조배터리 충전 제한, 용량·개수 제한, 보관 기준 강화 등의 조치를 시행해왔다. 이번 조치로 국내에서 여객편을 운항하는 항공사 전반이 사실상 기내 보조배터리 충전 불가 기조로 정리됐다. 이에 각 항공사는 전자기기 충전이 필요하면 좌석에 있는 전원 포트를 사용하고 포트가 없는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은 탑승 전 충분히 전자기기 충전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해외 항공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루프트한자 항공은 지난달 15일부터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해 10월부터 기내에서 보조배터리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 역시 오는 4월부터 일본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서는 보조배터리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토부는 최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기내 보조배터리 반입 수량을 줄이고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신설 규정을 세계 최초로 제안했다. 현재 회원국들의 의견 수렴 절차가 진행 중이며 반대 의견이 없다면 3월 중으로 ICAO 내부 검토 기구 논의를 거쳐 국제 표준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항공사들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보조배터리로 인한 잇따른 사고 발생에 있다. 지난해 1월 김해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여객기가 보조배터리 발화로 인해서 기체가 크게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해외에서도 보조배터리 화재로 항공기가 비상 착륙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항저우발 인천행 중국국제항공 여객기가 보조배터리 화재로 푸둥국제공항에 비상 착륙했으며 지난달 8일에는 인천발 홍콩행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 보조배터리가 발화했다. 같은 달 10일에는 중국 싼야발 청주행 티웨이항공 여객기에서도 보조배터리에서 연기가 발생했다.
기내에서 보조배터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경우 승객들은 좌석에 설치된 전원 포트(USB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운항하고 있는 만큼 대부분 좌석에 USB 포트나 콘센트 등 기내 충전 인프라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갖추고 있다. 반면 중·단거리 노선을 위주로 운항하는 LCC는 기재 구조와 비용 문제로 기내 전원 설비가 없는 경우가 많아 보조배터리 사용 제한 시 승객 불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해당 규정 시행이 예고되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삼일절 연휴를 앞두고 해외여행을 준비 중인 승객들 사이에서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노선을 LCC로 이용할 예정이었던 승객들은 보조배터리 충전까지 제한되면서 “LCC는 기내 영상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내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LCC에 충전 설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HSC(하이브리드 항공사)나 FSC를 이용하겠다”, “동남아 노선은 5~6시간 이동하는 동안 영상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아 휴대전화에 내려받아 보는 경우가 많은데 배터리 걱정 때문에 휴대전화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저가 항공을 선택할 이유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FSC와 LCC간의 양극화는 이미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5일 FSC인 대한항공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220억원(13%) 증가한 4조551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41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2억원(5%) 줄었지만 당기순이익은 28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4억원(13%) 늘었다.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한항공의 지난해 실적은 우수한 품질 서비스를 기반으로 국제선 운임료를 높였기 때문이다.
반면 LCC의 경우 파라타항공, 섬에어 등 신생 항공사들이 계속해서 시장으로 진입하면서 공급 과잉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자 행진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운임 인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동남아 노선처럼 6시간 안팎을 비행기로 이동하는 중거리 노선의 경우 LCC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스마트기기 사용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충전 수요도 크다. 그러나 기내 전원 설비 등 대체 수단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FSC와 LCC 간 체감 서비스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항공사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평소 LCC 항공사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김기범 씨(28·남)는 “출장을 제외하면 LCC를 주로 이용해왔는데 FSC와 달리 기내 영상 콘텐츠가 없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처럼 가까운 해외여행도 도착 직후 휴대전화를 계속 쓰게 돼 기내에서 늘 보조배터리로 충전해왔다”며 “앞으로 충전이 제한된다면 가격이 저렴해도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또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신용카드를 쓰고 있는 만큼 LCC에 충전 설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정말 가까운 거리가 아닌 이상 기내식·충전·영상 콘텐츠가 제공되는 FSC를 주로 이용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기내 보조배터리 사용 제한이 항공사 간 서비스 격차를 더욱 부각시키며 소비자의 항공사 선택 기준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보조배터리 사용 제한 자체는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기내 충전 설비 등 대체 수단이 갖춰지지 않은 항공사는 소비자 만족도가 더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결국 소비자들은 가격뿐 아니라 기내 편의성과 서비스 품질을 함께 고려해 항공사를 선택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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