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스닥 혁신을 위해 부실기업 퇴출에 속도를 내면서 재무 구조가 취약한 이른바 ‘좀비 기업’이 투자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퇴출 절차가 본격화되면 정리매매 기간 동안 주가 폭락은 물론 최악의 경우 소위 말하는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실기업을 선제적으로 가려내는 일이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 된 만큼 기업의 재무 상태나 시가총액 추이를 면밀히 살펴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벌기업 방계도 예외 없다…금융당국 칼끝에 선 시가총액 ‘150억 미만’ 기업들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원회는 부실기업 퇴출을 목적으로 한 상장폐지 제도 개편안을 공개했다. 우선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기준을 대폭 높였다. 기준치 이하의 기업은 상장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의도다. 지난 1월 이미 4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한 차례 강화한 데 이어 당초 2027년으로 예정됐던 200억원 상향 시점을 내년 7월로 앞당겼다. 2027년 1월부터는 시총 ‘300억원 미달’로 기준을 상향한다. 재무 건전성 기준 역시 높였다. 기존 ‘사업연도 말’ 기준이었던 완전자본잠식 상장폐지 요건을 ‘반기 기준’으로 바꾸기로 했다. 연말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던 부실기업들이 곧장 퇴출 심사대에 오를 전망이다.
주가가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오는 7월 1일부터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이후 90일 이내에 45거래일 연속 1000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최종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관리종목 지정 후 퇴출 회피를 방지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기존에는 90일 중 ‘10일 연속’만 기준을 회복해도 상장 유지가 가능토록 했으나 앞으로는 그 기간을 ‘45일 연속’ 늘린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통한 꼼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이번 개편안 내용을 적용할 경우 코스닥 상장사 중 상장폐지 위험권에 진입하는 기업은 수백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인 위험군을 분류하면 ▲시가총액 150억 이하 기업 ▲재무 불량 기업 ▲주가가 1000원을 하회하는 동전주 등 세 분류로 나뉘었다. 지난 20일 종가 기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 중 시가총액이 150억을 하회하는 곳은 총 19곳에 달한다.
일례로 게임 퍼블리싱(타사 게임의 운영 및 마케팅)을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아이톡시(구 와이디온라인)’의 경우 지난 20일 기준 시가총액이 75억7600만원에 불과했다. 아이톡시는 지난 2019년 전직 경영진의 약 150억원 규모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정지된 바 있다. 이후에도 아이톡시는 지속적인 영업손실로 인해 자본잠식률이 50%를 초과하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퇴출 위기에 몰렸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기업의 존속 능력을 의심해 상장 폐지를 검토했으나 회사는 개선 계획을 제출해 시간을 벌었다. 경영권 교체, 사명 변경,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 등의 자금 수혈 등을 통해 2021년 5월 다시 거래를 재개했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약 7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최근 들어 다시 재무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같은 기간 ICT 유통, 뇌 질환 치료기기 개발, 자전거 제조 및 유통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디에이치엑스컴퍼니(이하 DHX컴퍼니) 역시 85억2400만원의 시가총액을 기록 중이다. 디에이치엑스컴퍼니는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09억원 수준의 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4년 역시 당기순손실 183억원을 기록했다. DHX컴퍼니는 올해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전문기업 이지놈과 함께 반려동물 헬스케어 분야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등 신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범LG家 기업 중 한 곳인 인베니아 역시 시가총액이 88억6200만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베니아는 구자준 LIG손해보험 전 회장의 아들인 구동범(사장)·구동준(부사장) 씨가 경영을 맡고 있는 회사로 LCD 및 OLED 패널 제조에 필수적인 건식 식각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오너 형제가 각각 9%의 지분율로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 중이다. 부친 구 전 회장도 3.06%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인베니아는 재무상황도 불안정한 상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인베니아의 누적 법인세비용차감전손실은 약 96억원으로 자기자본(약 152억원) 대비 비율은 63.1%에 달한다. 현재 코스닥 규정상 최근 3개년 중 2개년이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는 법차손이 발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실적 역시 하락세다. 인베니아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140억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누적 당기순손실 96억원으로 ▲2022년(-10억원) ▲2023년(-174억원) ▲2024년(-100억원) 등에 이어 약 4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금 유동성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앞서 인베니아는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했던 조달 금액을 절반 밖에 채우지 못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인베니아는 지난달 30일 유상증자 확정 발행가액을 주당 855원으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증권신고서 제출 당시 예상했던 발행가액 1633원의 약 52%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확정된 발행가 855원은 산정의 기준이 된 최근 주가(20일 종가 1528원)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발행가가 현 시세보다 크게 낮을 경우 신주 상장 시 차익 실현을 위한 물량이 쏟아지며 주가 하락 압박(오버행)이 심화된다.
이 외에도 지난 20일 기준 시가총액 150억원 미만의 주요 기업으론 ▲소프트센우(23억1800만원) ▲대호특수강우(24억2700만원) ▲캐리(97억6100만원) ▲KD(98억3200만원) ▲예선테크(112억8600만원) ▲해성산업1우(117억900만원) ▲세니젠(123억300만원) ▲케이엠제약(132억1800만원) ▲씨엑스아이(132억8600만원) ▲원풍물산(137억1400만원) ▲에스아이리소스(137억4300만원) ▲케스피온(138억800만원) ▲비케이홀딩스(139억900만원) ▲뉴보텍(142억5500만원) ▲서울전자통신(147억5300만원) ▲유아이디(147억8700만원) 등이 있었다.
시총 150억 넘어도 만년적자 기업엔 철퇴…동전주 182곳도 상장사 자격 검토 대상
시가총액 기준이 넘더라도 지속적인 적자 확대로 상장 유지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기업들도 다수 존재했다. 일례로 화장품 유통사인 디와이디(시총 475억7300만원)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22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136억원 순손실) 대비 2배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화장품 사업 부문은 비교적 양호한 성장을 보였으나 신규 사업으로 추진했던 건설 및 토목 부문에서의 손실이 크게 발생해 전체 수익성 하락을 부추겼다.
XR(확장현실) 솔루션 전문 기업인 이노시뮬레이션(시총 350억원)도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진입한 후에도 만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24년에 이어 지난해 3분기까지도 2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어린이 대상 콘텐츠 ‘캐리와 친구들’을 기반으로 하는 키즈 IP(지식재산권) 전문 기업인 캐리소프트(시총 757억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캐리소프트는 2021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줄곧 적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만약 올해도 당기순이익이 흑자 전환에 실패한다면 캐리소프트는 한국거래소의 관리종목 지정 대상에 오르게 된다.
주가가 1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동전주’ 기업들도 상장폐지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이미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미국 나스닥에서는 ‘페니스톡’(1달러 미만 종목)도 상장폐지 요건이다”며 “이를 과감하게 도입해 썩은 상품, 가짜상품을 확실히 정리하고 빈자리에 혁신적인 상품이 진열될 수 있게 하겠다”며 사실상 저가주들에 대한 최후통첩을 보냈다. 20일 종가 기준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되는 동전주는 총 182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주당 가격이 100원대에 머물고 있는 초저가주들도 여럿 존재한다. 아이에이(124원), 형셩그룹(138원), 케이피엠테크(170원), 앱토크롬(192원), 에스아이리소스(192원) 등이 대표적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단순히 주가만 낮은 것이 아니라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이미 ‘한계 기업’에 가까운 상태라는 사실이다. 일례로 PCB(인쇄회로기판)용 표면처리 화학약품을 생산하는 케이피엠테크는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약 21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의약품 유통사인 앱토크롬 역시 18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바이오증유와 같은 재생 가능 연료를 생산하는 에스아이리소스 역시 2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2024년에 이어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동전주’ 중에서도 나름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는 곳들도 여럿 존재한다. 일례로 종이 전문 제조업체인 국일제지의 20일 주가는 327원이었으나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528억원의 매출액과 1억400만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국일제지의 시가총액(20일 기준)은 3686억6200만원에 달했다. 항공기 구조물 생산업체인 아스트 역시 같은 기간 주가는 820원이었으나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전년 대비 약 38% 증가한 1757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2024년 3분기 누적 영업손실 상태에서 지난해 3분기 누적 63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아스트의 시가총액(20일 기준)은 3306억원이다.
증권가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코스닥 옥석 가리기 작업에서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오를 곳은 강화된 폐지 요건에 모두 해당되는 기업들이 될 전망이다. 일례로 서울전자통신, DHX엑스컴퍼니, 아이톡시 등 3개사의 경우 시가총액 150억원 미달, 지속적인 적자, 1000원 미만의 낮은 주가 등 이른바 ‘상폐 삼대 악재’에 모두 해당해 상장 유지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중 전력 변압기 생산 업체인 서울전자통신은 2024년 결산 기준 자본잠식률이 50%를 초과하면서 지난해 3월 이미 관리종목에 지정되기도 했다. 20일 기준(종가) 이들 기업의 주당가는 서울전자통신 212원, DHX컴퍼니 449원, 아이톡시 520원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코스닥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상장사 과잉’과 ‘하향 평준화’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관대한 퇴출 기준에 기대 상장사 지위를 유지해온 일부 기업들이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상황이 종종 연출됐기 때문이다. 특히 제도 시행이 예고된 올해 하반기부터는 강화된 기준에 따른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면서 재무 체력이 바닥난 기업들을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지는 등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상장폐지 제도 개편은 코스닥 시장 내 좀비 기업들이 더 이상 자금 조달의 통로로 상장 지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며 “시가총액과 주가 요건이 동시에 상향되면서 재무 구조 개선 없이 단기적 수급이나 테마로 연명하던 기업들은 퇴출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들이 신사업 진출 등 외형 확장을 발표하더라도 실질적인 자본 확충과 주가 회복 능력이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