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국민의힘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 당 내부에 깊숙이 침투한 ‘무사안일주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강성보수 색채가 짙은 당원 중심 정치, 이른바 ‘당원 포퓰리즘’을 통해 최소한의 권력만을 유지하다 보면 결국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이 당 내부에 만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생겨난 원인으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음에도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 학습효과가 지목됐다.
갈수록 고조되는 국민의힘 위기론…낮은 지지율, 중도층 이탈, 극심한 내동 ‘삼중고’
국회, 정치·사회 분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6·3 지방선거를 약 5개월여 가량 앞둔 현재 국민의힘을 둘러싼 위기론이 정점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특정 이슈가 아닌 여러 가지 부정적 이슈가 얽힌 결과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대표적인 부정적 이슈로는 가장 먼저 저조한 지지율이 꼽힌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1년 넘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크게 뒤지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에 따라 구체적인 수치는 달랐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9~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무선전화 ARS, 응답률 3.8%,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p)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2%p 오른 43.9%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2.5%p 내린 37.0%에 그쳤다. 또 한국갤럽이 지난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전화 인터뷰, 응답률 11.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결과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44%, 국민의힘 25% 등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등장한 극우 지지층, 이른바 ‘윤어게인’ 세력에 동조하는 행보와 이에 따른 중도층 이탈 가속화 등도 위기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거머쥔 장동혁 대표는 ‘윤어게인’ 세력과 빼닮은 극우적 발언으로 수차례 물의를 빚었다. 그는 당대표 후보 시절 출연한 TV토론에선 한국사 강사 출신의 극우 유튜버 전한길 씨와 한동훈 전 대표 중 누구를 공천하겠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전 씨를 지목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 씨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극우 유튜버 중 한 명이다.
같은해 10월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치소에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성경 말씀과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고 계셨다”며 두둔하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대장동 항소포기 규탄대회에서도 “우리가 황교안이다”고 발언해 또 다시 극우 논란에 휩싸였다. 황교안 전 총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실제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극우 인사다. 부정선거는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음모론 중 하나다.
최근 한동훈 전 당대표 제명으로 촉발된 극심한 내홍 사태도 국민의힘 위기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제명당한 한 전 대표가 비상계엄 해제 및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적극 찬성하는 등 찬탄파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돼 왔다는 점에서 사태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마찬가지로 찬탄파와 반탄파의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여론 일각에선 앞서 윤 전 대통령 파면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의 70% 가량이 탄핵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들어 “6·3 지방선거를 외면한 결정”이라는 성토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윤어게인’ 소수 여론이 국민의힘 주류 자리매김…“탄핵➞재집권 학습효과 영향 미쳤나”
정치권 안팎에선 민심 보단 당심 확보에 주력하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일부 의원들의 행보를 두고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된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보수 색채가 짙은 당원 중심 정치, 이른바 ‘당원 포퓰리즘’을 일삼으며 버티는 쪽이 정치적 이득을 볼 것이라는 믿음이 당의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 이후 벌어진 찬탄파(탄핵 찬성파)와 반탄파(탄핵 반대파) 갈등 당시 찬탄파의 선봉장이었던 유승민 전 의원은 일부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여전히 ‘배신자’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의 학습효과는 지금도 국민의힘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란 성격의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때 보다 훨씬 늘었다. 반탄파 인사들이 당의 주류로 거듭나는 기간도 빨라졌으며 당 외부에서 ‘극우 스피커’ 역할을 해온 이들까지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극우 유튜버 고성국 씨가 반탄파에 속하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추천을 받아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고 씨는 입당 후에도 유튜브를 통해 “전두환이 피를 거의 흘리지 않고 민주화를 이끌었다” “당사에 윤석열·전두환 사진을 걸어야 한다” 등의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렇다 할 제재는 받지 않고 있다.
반면 찬탄파에 대한 탄압과 압박의 강도는 과거에 비해 더욱 커지고 노골화됐다. 일례로 찬탄파의 선봉장으로 평가받는 한동훈 전 대표는 최근 당에서 제명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 쇄신을 주장하며 같은 목소리를 냈던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도 주변의 퇴진 압박 끝에 스스로 직책을 내려놨다. 탄핵 표결 당시부터 ‘탄핵 찬성’ 입장을 피력해 온 김상욱 의원의 경우 당 내부의 탈당 압박 끝에 결국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기까지 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버티기’ 위주의 행보와 그 과정에서 무리수나 다름없는 결정이 등장하는 현 상황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기존의 보수 지지층 인사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당동혁 대표가 발표한 쇄신안을 두고 “윤어게인 세력과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을 당직과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약속이 없는 쇄신이나 계엄 사과는 속임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에 넘어간 20·30을 당원으로 대거 영입해 당권을 강화하고 극우노선을 견지하겠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보수 유튜버로 활동 중인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국민의힘은 음모론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영웅주의적 사관에 완전히 함몰돼 있다”며 “누구든지 나와서 칼을 휘두르고 다 쳐 죽이고 권력을 만들어내고 그 권력의 에너지로 뭔가 달성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아직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민주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진중권 동양대 특임교수 역시 지난달 31일 자신이 진행하는 TV프로그램에서 “민주당이 계속 오른쪽으로 와서 중도 잡아먹고 보수의 합리적인 측면까지 공격해 들어오는데 이쪽에선 계속 후퇴하고 당 강령도 바꿨는데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로 돌아가자는 것이다”며 “지도부는 강성들만 모여 있는 집단으로 돼 있고 통합도 안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박정훈 서강대 교수는 “정당이 민심이 아니라 당심만 바라보기 시작하면, 단기적으로는 내부 결속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선거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한다”는 우려의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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