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남남, 유령 부양가족 황당 꼼수 배경엔 시대착오적 청약가점제
서류상 남남, 유령 부양가족 황당 꼼수 배경엔 시대착오적 청약가점제

최근 서울·수도권 주택 가격 폭등으로 ‘청약가점제 폐지론’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가점제의 핵심인 평가 항목이 현실과 괴리돼 있다 보니 각종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무주택 기간, 저축 가입기간, 부양가족 수 등 세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가점이 부여되고 있는데 이들 중 무주택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두 항목이 시대착오적 기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매 분기 마다 부정청약 사례 수백여건…청약 가점 노린 ‘부양가족 숫자 부풀리기’ 횡행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발탁된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부정 청약 의혹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과거 이 후보자 남편 김영세 연세대 교수가 2024년 7월 서울 반포동 신축 아파트 일반공급 청약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가점을 높게 받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현행 가점제 평가 항목 중 변별력 확보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부양가족 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결혼 후 분가한 장남을 위장 전입시키고 혼인신고까지 미뤘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실제로 이 후보자의 장남은 청약 신청 마감 후 용산의 전셋집으로 주소를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이 후보자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수년간 전국에 걸쳐 부정청약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3년 하반기부터 수도권 주요 분양단지를 대상으로 주택청약과 공급실태를 점검해 부정청약 등의 공급질서 교란행위를 점검 중이다. 국토부 점검 결과에 따르면 교란행위 적발 건수는 2023년 하반기 154건을 시작으로 2024년 상반기 127건, 2024년 하반기 390건, 2025년 상반기 252건 등 매 분기 별로 수백건에 달하고 있다. 매 분기 분양물량이 달랐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부정청약 과정에선 부양가족 수를 허위로 부풀리는 방식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나 무주택 기간 등에선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탓이다. 구체적인 사례에서도 따로 살면서도 부모, 자녀 등 서류로만 전입신고 시켜 부양가족 수를 늘리는 ‘직계존속 위장전입’ 형태가 유독 많았다. 국토부는 앞으로 직계존속 및 30세 이상 직계비속에 대한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 제출을 의무화해 전체 분양단지에 대한 부정청약 검증시스템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청약통장·무주택기간 만점 받아도 독신·무자녀 가구는 서울 아파트 청약 당첨 ‘그림의 떡’

 

여론 안팎에선 현행 가점제 중심의 청약제도의 전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점제 평가 항목이 현실과 크게 괴리돼 있어 각종 불법 행위만 유발할 뿐 실제 국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가점제 항목 중 변별력 확보에 가장 빈번하게 악용되는 세대원 수의 경우 1~2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 추세와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많다. 청약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구 수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1인가구 지원센터. [사진=연합뉴스]

 

당장 서울시만 놓고 보더라도 1인가구 비율은 2024년 기준 39.9%에 달했다. 2인 가구 또한 26%의 비중을 차지했다. 혼자 살거나 부부만 사는 가구 비중이 66%에 육박하는 셈이다. 같은 기간 청약(가점제) 당첨자의 평균 점수는 65점 안팎이었다. 2인 가구 청약 신청자가 청약통장 가입기간과 무주택기간 항목에서 모두 만점(49점)을 받더라도 최대 받을 수 있는 점수(59점)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서울 가구 3곳 중 2곳에게 가점제 청약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마저도 서울 내에서도 비인기 지역을 포함한 평균치일뿐 일부 인기 단지 청약일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졌다. 2024년 기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경우 청약 당첨자 평균 점수는 무려 72점이나 됐다. 부양가족수가 배우자를 포함해 최소 4명 이상(74점)일 때 가까스로 넘길 수 있는 점수다. 만약 미혼일 경우엔 사실상 강남3구 청약 자체가 불가능하고 기혼일 경우에도 자녀 3명 이상, 그 이하일 땐 양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강남3구 단지 청약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2024년 기준 서울 내 5인 이상 가구 3% 수준에 불과했으나 이마저도 실제 거주 여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서류상 수치였다.

 

‘당첨만 되면 수십억 차익’ 로또청약, 서민들에겐 남 일…“가점제 폐지·보완 요구 봇물”

 

주목되는 점은 현실과 괴리된 청약가점제의 부작용이 단순히 주거불안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청약가점제의 높은 문턱 앞에서 좌절한 이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면서 상대적 박탈감 조성, 부정청약 모방범죄 유발, 국민 간 갈등 유발 등 기존에 없던 부작용들도 생겨나고 있다. 수많은 부작용이 생겨나는 근본 원인은 신축 아파트 단지의 분양가와 주변 단지 간에 엄청난 시세 격차, 이른바 ‘로또청약’이 지목된다. 일례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분양받은 반포 원펜타스의 경우 같은 평수 기준 분양가와 주변 단지의 차이가 무려 3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점제 청약에 도전할 자격조차 되지 않는 이들 입장에선 박탈감을 넘어 좌절감을 느끼게 할만한 금액이다.

 

▲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부착돼 있는 주택청약 종합저축 관련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직장인 박성우 씨(41·남)는 “가점제 청약의 취지가 내 집 마련이 더 급한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에 집을 제공한다는 것인데 엄밀히 따지면 내 집 마련이 안 급한 사람이 어딨나”며 “게다가 저렴한 수준이 남들 평생 벌기 힘든 수준이라면 조건조차 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선 인생역전의 기회조차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차라리 무작위 추첨제로 동등하게 기회를 부여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가정주부 강선희 씨(38·여)는 “작년에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우리 같은 서민들은 인기 지역 아파트는 청약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그런데도 몇몇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높은 것을 볼 때마다 ‘세상에 저렇게 현금 부자들이 많은데 나는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앞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 1순위 일반분양 청약에 5만 명 넘는 신청자가 몰리며 평균 23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해당 단지는 가장 작은 평수 분양가도 25억원을 웃돌아 입주 시 잔금 대출 가능액이 2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최소 23억원의 현금을 들고 있어야 입주 가능한 셈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청약가점제의 부작용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행 청약가점제는 부양가족 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편법을 부추기고 국민 간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부양가족 수에 따른 가점으로 청약에 당첨된 가구에 대해서는 해당 구성원이 실제로 함께 거주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심사권을 도입해 검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현행 가점제는 제도의 허점이 너무 많아 주거 정책 본래의 목적이 퇴색된 지 오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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