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의 모기업이자 미국법인인 ‘쿠팡Inc’의 주요 임원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례로 정부와 정치권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와중에 미국 정·재계를 중심으로 쿠팡에 대한 옹호·비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미국기업인 모기업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경영을 이끄는 핵심 임원진들의 정체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실제 쿠팡Inc에 몸담고 있는 핵심 인사 중 상당수는 미국 정·재계 핵심 인물이거나 혹은 그들과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연으로 투자금 모으고 돈 번 후엔 로비로 우군 포섭…김범석이 만든 ‘쿠팡 이너써클’
쿠팡 Inc의 창업주 겸 대표이사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1978년 서울 서초구 출생으로 7살 때 현대건설의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김 의장은 2007년 하버드대(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2010년 미국에서 쿠팡을 설립했다. 김 의장은 쿠팡을 설립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하버드 인맥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에서 하버드 출신들은 동문 간 결속력이 강하고 폐쇄적인 성향으로 유명하다.
김 의장의 하버드 동문 활용은 투자금 모집 단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쿠팡 창업 초기엔 하버드 출신의 미국 헤지펀드 거물 투자자인 빌 애크먼(Bill Ackman) 퍼싱 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 창업주를 투자자로 끌어 들인 게 대표 사례다. 빌 애크먼이 정확히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4년 당시 2650만주(현재가 기준 약 1조4000억원)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장은 쿠팡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미국 정치 거물들과의 접점을 대폭 늘렸다. 대표적인 인물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백악관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던 롭 포터(Rob porter) 전 백악관 선임비서관이다. 현재 쿠팡의 글로벌 정책최고책임자를 맡고 있는 포터는 지난해 APEC 회의에서도 김 의장을 대신해 CEO 서밋 기조연설을 맡았다. 포터 역시 하버드 출신이다. 그는 하버드 재학 당시 공화당 클럽 회장과 부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임의 의장을 맡은 이력을 지녔다. 지난 2021년부터 약 3년간 쿠팡 대외업무 총괄로 재직했던 알렉스 웡(Alex Wong) 역시 미국 정계 출신이다. 알렉스 윙은 트럼프 행정부 1기와 2기 모두 국가안보부보좌관 역할을 수행했다.
김 의장은 인물 영입과 동시에 적극적인 로비 활동도 동시에 전개했다. 미국 상원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Inc는 2021년 상장 이후 4년간 총 1075만5000달러(원화 약 159억원)를 로비 자금으로 지출했다. 상장 초기인 2021년 101만달러 수준이던 로비 자금은 지난해 약 387만달러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로비스트 수는 4명에서 32명으로 늘었으며 접촉 대상은 의회는 물론 상무부·국무부·미국무역대표부(USTR)·백악관·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 쿠팡Inc 로비스트 명단에는 트럼프 대선 캠프 자금 모금을 주도한 제프 밀러(Jeff Miller)부터 트럼프 행정부 1기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입법총괄 출신 조나단 힐러(Jonathan Hiler) 등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쿠팡이 미국 의회에 등록한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농업 생산자, 중소업체들이 쿠팡의 디지털·유통·물류 서비스를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 ‘한국·대만·일본 등 동맹국과의 경제·상업적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등이 로비 안건으로 적혀 있다.
투자 전문가부터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까지…정·재계 거물 드림팀 ‘쿠팡Inc 이사회’
쿠팡Inc는 2021년 상장 이후엔 미국 경제계 거물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쿠팡이 경제계 거물에게 내준 자리는 이사회 임원이었다. 현재 쿠팡 Inc의 이사회 임원 수는 총 8명이다. 김 의장을 제외한 7명의 이사회 임원 명단에는 ▲제이슨 차일드(Jason Child) ▲페드로 프란체스키(Pedro Franceschi) ▲아샤 샤르마(Asha Sharma) ▲앰버린 투바시(Ambereen Toubassy) ▲닐 메타(Neil Mehta) ▲벤자민 선(Benjamin Sun) ▲케빈 워시(Kevin Warsh)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케빈 워시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 모두 미국 경제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다.
2022년 4월부터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제이슨 차일드는 아마존 글로벌 재무팀 출신으로 아마존 인터내셔널의 CFO를 역임한 이력을 지녔다. 2022년 11월부터는 프로세스 설계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제공하는 미국 기술 기업인 암 홀딩스(Arm Holdings plc)의 수석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다. 페드로 프란체스키는 미국 핀테크 기업인 브렉스(Brex)의 공동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브렉스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핀테크 스타트업 중 하나다. 브렉스 설립 전 그는 결제 처리 시스템 기업인 파가르미(Pagar.me)를 창립했으며 이 회사는 브라질 최대 결제 기업 중 하나인 스톤코에 인수됐다.
아샤 샤르마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여성 AI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과거 메타에서 페이스북 메신저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코어AI 제품 부문 부사장을 역임하며 AI 모델, 에이전트, 개발자 도구 등 AI 제품 포트폴리오를 총괄하고 있다. 엠버린 투바시는 클라우드 기반 테크 스타트업으로 미국 현지 주목을 받고 있는 에어테이블(Airtable)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다.
닐 메타와 벤자민 선은 미국에서 유명한 투자 전문가들이다. 두 사람 모두 2010년 쿠팡 Inc 설립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약 15년 동안이나 사외이사를 역임 중이다. 닐 메타는 2012년 투자 회사인 그린오크스 캐피털 파트너스(이하 그린오크스)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린오크스는 과거 2012년 첫 펀드 자산의 40% 가량인 2000만달러(원화 약 290억원)를 쿠팡에 투자해 약 80억달러(원화 약 11조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벤자민 선은 벤처 캐피털 회사인 프라이머리 벤처 파트너스의 설립자다.
2019년 10월부터 쿠팡 Inc 사외이사로 합류한 케빈 워시는 모건스탠리를 거쳐 2002년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시절 대통령 경제 정책 특별 보좌관 겸 국가 경제 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력을 지녔다. 당시 그의 주요 책임 분야는 국내 금융, 은행 및 증권 규제 정책, 소비자 보호였다. 2006년에는 부시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11년까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회 위원을 역임했다. 당시 35세였던 케빈 워시는 연준 역사상 최연소 이사로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초반에는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직접 지목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김범석 의장이 직접 학연과 막대한 자금력을 투입해 만든 이른바 미국 내 ‘쿠팡 이너써클’은 책임경영을 회피하기 위한 막강한 방패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았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쿠팡Inc는 순매출 90%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책임 경영과 국내 소비자 보호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 내에서 입김이 센 정·재계 인사들을 전면 배치한 이사회와 임원진을 앞세워 한국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외면하고 국내 규제와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쿠팡의 모기업인 쿠팡 Inc는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고 주요 임원 대부분이 미국인으로 구성돼 있어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문제가 국내에서 발생하더라도 기업 차원의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며 “절대적인 매출 대부분을 한국에서 창출하는 쿠팡 특성상 이 같은 구조는 국내 책임 경영을 어렵게 만들고 향후 기업 신뢰 회복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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