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한 인물들의 정체가 공개됐다. 올해 기부 순위에는 글로벌 기업과 금융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교육, 의료,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블리스 노블리제(nobless oblige)’를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다. 국제사회 안팎에선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개인이 사회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는 행보 덕분에 그들이 이끄는 기업 이미지에도 긍정적 이미지가 생겨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혼 합의금으로 세계 1위 기부왕 된 아마존 창업주 전 부인…워렌 버핏은 8조 자선 행진
미국 재계 등에 따르면 올해 12월 기준 전 세계 개인 기부액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전처이자 미국의 소설가인 매켄지 스콧(MacKenzie Scott)이다. 스콧은 올해 다양한 비영리 단체에 무려 71억달러(원화 약 10조5200억원)의 거액을 기부하며 세계 최고 기부왕으로 등극했다. 스콧은 특히 교육과 기후 분야 기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콧은 프리스턴대 영어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헤지펀드인 D.E.쇼 그룹에 관리직으로 입사해 당시 팀 동료였던 베조스와 결혼했다. 이후 베조스가 아마존닷컴 설립을 위해 시애틀로 이주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퇴사했고 1994년 아마존닷컴 초창기 경영과 회계 업무를 도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2005년 소설 데뷔작인 ‘루더 올브라이트의 실험대’를 발간해 이듬해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2019년 베조스의 외도로 이혼 소송을 진행해 아마존닷컴의 지분 4%를 합의금으로 받았다. 당시 가치로 360억달러(원화 약 53조원)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스콧은 베조스로부터 받은 이혼합의금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스콧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내 금고가 텅 빌 때까지 계속 기부를 할 것이고 죽기 전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21년 자녀들이 재학 중이던 시애틀의 명문사립고등학교 레이크사이드 스쿨의 과학교사 댄 주엣(Dan Jewett)과 재혼했으나 결혼 생활 2년 만에 다시 이혼했다.
스콧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많이 기부를 한 인물은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다. 버핏은 지난 6월 자신이 소유한 버크셔 해서웨이 개인 주식 1230만여주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수전 톰슨 버핏 재단 ▲셰리우드 재단 ▲하워드 G. 버핏 재단 ▲노보 재단 등 5곳의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당시 기부 주식의 평가액은 60억달러(원화 약 8조9000억원) 수준으로 그가 2006년부터 대규모 기부를 시작한 이래 연간 최대 규모였다.
버핏이 주식을 기부한 5개 자선단체 중 4곳은 버핏 가족 일가가 직접 설립한 곳이다. 여성 건강 지원 활동이 주력인 ‘수전 톰슨 버핏’ 재단은 버핏이 직접 설립했다. 재단 이름은 버핏의 첫 번째 배우자 이름과 동일하다. 또 ‘셰리우드’ 재단(교육부문)은 장녀 수지 버핏, ‘하워드 G. 버핏’ 재단(식량부문)은 장남 하워드 버핏, ‘노보 재단’(사회부문)은 차남 피터 버핏이 각각 설립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며 가치투자의 대가로 손꼽히는 버핏은 1956년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를 인수한 후 섬유업 중심의 기업을 투자회사로 전환해 세계적 투자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버핏은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를 역임하는 동시에 막대한 재산을 통해 활발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2025년 기준 그의 순자산은 약 1100억 달러(원화 약 130조원)로 추산됏다. 버핏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인도 IT 거물 나다르 4조4800억원 기부…나이키·아마존 일가도 선한 영향력 전파
올해 세 번째로 많은 기부를 한 인물은 인도 IT업계 거인이자 HCL테크놀로지스 창립자 ‘시브 나다르’(Shiv Nadar) 명예회장이다. 올해 나다르 명예회장은 각종 자선단체에 총 2708억루피(원화 약 4조4800억원)를 기부했다. 올해 인도 상위 10대 자선가의 총 기부액(5834억루피)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의 기부금 대부분은 인도 전역의 교육 및 예술·문화 사업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HCL테크놀로지스는 인도 노이다 지역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 서비스 및 컨설팅 기업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클라우드 컴퓨팅, 사이버 보안, IT 아웃소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조·통신·금융·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 약 60여개 나라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그룹 전체 직원 수는 22만명 이상이며 그 중 개발 인력만 20만명에 달한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원화 약 20조원이다. 나다르 명예회장은 가족회사인 프로모터(Promoter)를 통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HCL테크놀로지스의 지분 60.81%를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올해 기준 그의 개인 순자산 규모는 360억달러(원화 약 53조원)에 달한다. 1945년 인도의 언론 재벌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나다르 명예회장은 PSG공과대학 졸업 후 인도 내 다수의 IT 회사를 거쳐 1976년 HCL테크놀로지스를 설립했다. 나다르 명예회장은 평소 교육에 막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나다르 명예회장은 아버지 시바수브라마니야 나다르의 이름을 따 첸나이 지역에 SSN공과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해당 대학은 지난해 인도 정부의 자국 대학 순위 평가에서 공학 분야 46위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네 번째로 많은 금액을 기부한 인물은 나이키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Phil Knight)와 그의 아내 페니 나이트(Penny Knight)다. 나이트 부부는 지난 8월 오리건대 보건과학대학(OHSU) 내 자신의 이름을 딴 ‘나이트 암 연구소’에 20억달러(원화 약 3조원)를 기부했다. 오리건대는 필 나이트의 모교다. 기부금은 OHSU의 암 연구소의 임상시험 과 기초 연구를 확대하고 심리 상담, 유전 상담, 영양 관리 등 암 환자와 가족을 위한 지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필 나이트는 아버지가 백혈병, 고모가 유방암을 앓았던 가족력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후 지속적으로 암 연구에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나이트 부부가 OHSU 암 연구소에 1억달러(원화 약 1480억원)를 기부하면서 연구소 명칭도 ‘나이트 암 연구소’로 바뀌었다. 이후 부부의 경제적 지원도 본격화됐다. 이번 대규모 기부를 포함해 부부가 나이트 암 연구소에 기부한 총액은 약 27억달러(원화 약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1938년생)는 2016년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나 여전히 명예회장직을 유지함과 동시에 최대주주로서 나이키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올해 기준 필 나이트 가족 일가가 소유한 나이키 지분율은 21%에 달한다. 필 나이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무려 30살이나 어린 그의 아내 ‘페니 나이트’(1968년생)와 결혼했다. 올해 6월 기준 부부의 순자산은 약 300억달러(원화 약 44조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조스의 어머니 고(故) 재키 베조스(Jackie Bezos)와 계부 미겔 베조스(Mike Bezos)도 올해 상반기 유니세프에 개인 재산 5억달러(원화 약 7400억원)를 기부했다. 두 사람은 아마존닷컴의 최초 투자자다. 재키는 1946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잭클린 마리 기즈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임신해 제프 베조스를 출산했으며 생부와 이혼 후 쿠바 출신 미겔과 재혼했다. 제프는 미겔에게 입양돼 ‘베조스’ 성을 갖게 됐다. 부부의 정확한 아마존 주식 보유량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아마존닷컴 초기 투자한 금액이 24만5000달러임을 감안했을 때, 현재 지분 가치는 약 300억달러(원화 약 44조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고액 자산가들의 기부는 단순한 자선 차원을 넘어 책임 경영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개인 기부는 정부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 창업자나 대주주가 자신의 지분이나 자산을 활용해 기부에 나서는 경우 기업의 사회적 신뢰도 향상과 브랜드 가치 제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며 “이미 기부의 유무가 고액 자산가들의 평판 기준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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