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성비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생활물가와 해외 지출 부담이 동시에 커지며 체감 경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어 같은 환율 환경을 두고도 국내외 소비자들이 겪는 경제 현실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연중 내내 1400원대 전후를 오가며 좀처럼 안정되지 못하는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원화 약세를 체감하고 있다. 달러 강세로 인해 환전 시 받는 원화 금액이 크게 늘면서, 외국인들은 적은 비용으로도 한국에서 다양한 소비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방한한 외국인 중 미국인은 109만6039명으로 중국, 일본, 대만에 이어 미국이 4위를 차지했다. 특히 달러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월부터 한국을 방문한 여행객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인 관광객 수가 꾸준히 늘어난 점은 원화 약세가 규명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실제 방한 외국인들도 한국 물가가 본국 대비 상당히 저렴하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모호프(Manhoef·남·31)는 “부모님까지 모시고 와서 조금 넉넉하게 예산을 잡고 여행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여러 부분에서 여행을 즐기기엔 저렴한 것 같고 특히 교통비가 정말 저렴하다”며 “집 근처에 있는 시내로 잠깐 트램을 타기만 해도 5유로(약 8500원) 정도가 드는데 한국은 아무리 비싸도 2500원 이상 하는 경우가 없어 저렴하다”고 말했다.
텍사스에서 온 카롤리라(Carolina·38·여)는 “미국에서는 물가가 너무 올라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는 여러 음식을 주문해도 100달러가 넘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쇼핑을 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사고 싶은 것들을 넉넉하게 구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가성비 여행지’로 평가하는 배경에는 최근 몇 달간 이어진 달러 강세가 있다. 올해 들어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달러화 가치가 상승했고,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4월 한때 1400원에 육박했다. 외환당국 개입으로 1300원대 중후반까지 내려갔지만 다시 1400원 후반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거품론으로 기술주가 급락하는 등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위축됐고, 달러화 가치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수출로 번 달러가 개인·연기금·기업의 해외투자로 빠져나가면서 경상수지 흑자에도 환율이 잘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다.
반면 한국 밖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에겐 고환율이 큰 짐이 되고 있다. 수입 원가 상승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늘었고 해외 출장이 잦은 직장인들 역시 환율로 인한 추가 지출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직장인 김기범씨(27·남)는 “무역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외국에 있는 바이어들을 만나러 해외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에서 기본적인 항공비나 숙박비용, 체류비 등은 나오지만 개인 지출은 당연히 직접 달러로 바꿔 가는데 최근 달러나 유로가 너무 비싸서 실제로 쓰는 비용보다 더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박하연 씨(28·여)는 “영국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밑반찬을 하나 주문하면 10파운드(약 2만원)은 기본이다 보니 외식이 부담스러웠던 적이 많다”며 “잠깐 한국에서 머물 때 가장 좋았던 점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먹고 싶은 만큼 리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환율 흐름이 국내 소비와 외국인 관광 수요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은 84% 확률로 우상향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고, 2026년에는 16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환율 상승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며 “해외 지출 부담이 커지게 되면 국내 소비 여력까지 위축되면서 소비 심리가 전반적으로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동일한 예산으로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소비 활동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여행 만족도가 높아지고 재방문 가능성도 커진다”며 “환율의 방향성에 따라 국내 소비자와 해외 관광객 사이에 체감 경제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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