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약수역 일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낡은 주택과 노포가 주를 이루던 지역이었지만 요즘은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에스프레소바와 연예인 단골 맛집으로 가득 찼다. SNS와 유튜브를 통해 ‘핫플’로 떠오르면서 약수역 상권은 전통과 트렌드가 공존하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복합 상권으로 진화하고 있다.
리사르커피 성공 이후 약수역, ‘에스프레소바의 성지’로 급부상
약수역은 3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인근에 장충체육관부터 신라호텔·동국대학교 등 주요 시설이 위치해 있어 꾸준한 유동인구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의 상권을 이끄는 힘은 전통적인 교통 접근성이 아니라 ‘감성 소비’로 바뀌고 있다.
SNS에서 ‘#약수역’을 검색하면 6만4000건 이상의 게시물이 뜬다. 그중에서도 #약수역맛집은 5만6000건이 넘고, #약수역카페 역시 3만5000건 이상을 기록 중이다. 특히 ‘에스프레소바’라는 키워드는 약수역 상권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상권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카페가 등장하면서 사람드르이 발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리사르커피’가 있다. 약수역을 본점으로 둔 리사르커피는 2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진한 한 잔’의 본질을 강조하며 커피 애호가들의 입소문을 탔다. ‘작지만 밀도 있는 공간’, ‘핸드드립 대신 정통 에스프레소’라는 콘셉트는 단순한 카페가 아닌 일종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산됐다. 이후 비슷한 콘셉트의 소형 카페들이 인근 골목 곳곳에 생겨나며 약수역 주변엔 새로운 카페거리로 부상했다.
리사르커피 성공 이후 약수역 골목에는 ‘바 타입’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잇따라 생겨났다. 대부분은 빌라 1층이나 단독주택을 개조한 형태로 높은 천장과 미니멀한 조명,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러나 대부분 오후 6시 전후로 영업을 종료해 직장인 소비층의 접근성이 낮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회사원 박지은 씨(29·여)는 “퇴근 후 여유롭게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싶어도 대부분 문을 일찍 닫는다”며 “짧은 영업시간 때문에 잠재고객이 줄어드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일부 골목형 카페는 도로와 인접해 안전문제가 있다”며 “차량 통행 시 위험할 때가 많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카페 거리 내 일부 포토존은 관리가 미흡해 이용객 불만도 나온다. 박 씨는 “사람이 적은 시간대엔 포토존이 안내 없이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SNS 촬영 명소로 알려졌는데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방탄 맛집에서 성시경 맛집까지”…연예인 영상이 상권 바꿨다
약수역 상권이 최근 들어 인기를 끌게 된 또 다른 이유로는 ‘연예인 맛집’이 지목된다. 사수 성시경부터 방송인 김나영, 방탄소년단 등 유명인들이 잇따라 방문하며 ‘약수 맛집’ 콘텐츠를 내놨는데 이를 본 시청자들이 성지순례하듯 약수역 상권을 방문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성시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성시경의 먹을텐데’에서 소개된 ‘해남순대국’, ‘춘천막국수’, ‘만포막국수’ 등은 각각 1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탔다. 지난해 김나영이 올린 ‘요즘 제일 핫한 약수동 그냥 걷다, 먹고 마셨어’ 영상도 30만회 이상 조회되며 약수동은 새로운 도심 속 맛집 거리로 주목받았다.
방탄소년단 멤버 단골로 알려진 ‘금돼지식당’은 약수역 2번 출구 인근에 자리한 대표적인 외국인 관광 명소다. 오후 4시30분이면 줄서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예약이 마감되고, 평균 3시간 대기가 필요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손님 10명 중 8명은 외국인으로 상당수가 BTS 팬이다.
하지만 인기에 비해 대기 공간이 부족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로변에 자리한 식당 주변에는 앉을 곳이 거의 없고 일부 관광객들은 바닥에 앉거나 길가에서 흡연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국내 방문객 사이에서는 앱 대기를 현장에서만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유현 씨(31·여)는 “비대면 예약 시스템을 갖췄다면 온라인 예약도 허용해야 한다”며 “외국인 손님이 많을수록 안내 체계와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성시경 맛집’으로 알려진 ‘만포막국수’는 회전율이 높아 웨이팅이 거의 없었다. 저녁시간에도 바로 착석이 가능했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동일한 상권 내에서도 매장 운영 방식과 고객 응대 수준에 따라 소비자의 체감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직장인 이예지 씨(28·여)는 “친구들과 약수역 카페를 둘러보다가 자연스럽게 맛집으로 이동했는데 사람 북적이는 곳도 있고 조용히 즐길 수 있는 곳도 다양했다”며 “요즘 인기 많은 신당동보다 덜 붐비고 분위기도 좋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약수역 상권은 오래된 순댓국집과 세련된 에스프레소바, BTS 팬들이 몰리는 식당과 조용한 막국수집이 한 블록 안에서 공존하는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소비가 오프라인 유입으로 이어지고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직장인,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소비층이 형성됐다.
하지만 상권 성장의 속도에 비해 제도적·물리적 인프라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좁은 골목길에 늘어선 카페와 포토존은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으며 일부 매장은 짧은 영업시간 탓에 유입 수요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상권 활성화와 함께 소비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약수역 상권은 신흥 카페 거리이자 외국인 관광객의 음식 콘텐츠 목적지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며 “배후에 대단지 아파트가 있고, 오래동안 자리를 지킨 약수시장까지 있다보니 젊은층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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