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조각투자 허용 ‘샌드박스 5년’…1000억 성장했지만 제도는 제자리
부동산 조각투자 허용 ‘샌드박스 5년’…1000억 성장했지만 제도는 제자리

부동산 시장에 조각투자가 등장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해외 주요국이 법 제도와 거래 인프라를 정비하며 시장 신뢰를 쌓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의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은 규제의 틀 안에서 ‘샌드박스’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급성장한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 ‘소액 투자’ 기회에도 제도 불안 여전

 

한때 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이던 부동산 투자는 조각투자 등장 이후 소액 투자자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금융규제 샌드박스에 포함된 부동산 조각투자는 불과 5년 만에 936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2020년 카사코리아가 ‘역삼 런던빌’ 공모를 시작한 이후 루센트블록·비브릭·펀블 등 조각투자 플랫폼이 시장에 진입했다.

 

투자자층도 달라졌다. 과거 리츠(REITs)나 부동산 펀드가 기관 중심이었다면 조각투자는 2030세대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재편됐다. 일부 플랫폼에서는 MZ세대 비중이 70%를 넘는다. 소액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세대 투자 참여를 이끄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그러나 부동산 조각투자가 활성화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제도권 내에 편입되긴 했지만 법적 기반이 여전히 임시적이고, 투자자 보호 체계도 미비하다는 이유에서다.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했지만 오히려 유통시장이 분리되면서 유동성에도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조각투자의 경우 투자자는 신탁회사가 보유한 자산의 ‘수익권’을 조각 단위로 취득하는 형태다. 소유권이 아닌 수익권만 확보하게 된다. 법적으로 명확한 자산 보호 장치가 부족한 셈이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조각투자 유동화 수익증권 발행 플랫폼의 제도화를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임시 허가(샌드박스) 체제 아래 운영되고 있다.

 

부족한 유동성과 정보 비대칭성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그간 발행된 29개 상품이 4개 플랫폼에 분산돼 있어 플랫폼 간 거래가 불가능하다. 가격은 매도자와 매수자 간 협상에 따라 결정되며 거래 정보가 비공개로 유지돼 실시간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 혁신금융으로 불리는 부동산 조각투자가 사실상 폐쇄형 시장이라는 지적을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는 해외의 통합거래소 시스템과도 대비된다. 일본은 오사카디지털거래소(ODX)를 통해 토큰증권(STO)의 통합 유통시장을 구축했고, 독일은 시장조성자 제도로 유동성을 보장하고 있다.

 

상품의 소규모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부동산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조각투자 부동산의 70%가 30억원 미만 자산으로 구성돼 있고 60% 이상이 단일 임차인에 의존하고 있다. 차입이 금지돼 있다보니 오히려 투자 안정성이 떨어지고, 부동산 가치 하락 시 리스크가 집중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자산 대부분 근린상가·업무시설 등 중소형 부동산으로 대형 우량 자산에 접근하기 어려운 만큼 리츠와 유사한 수준의 제한적 레버리지를 허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는 ‘법제와 인프라’로 신뢰 구축…한국은 ‘임시허가’ 수준 머물러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한국의 조각투자 제도는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본시장법상 명확한 지위가 없어 금융위의 가이드라인과 개별 승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 이후 ‘신탁업 혁신방안’, ‘신탁수익증권 발행 가이드라인’ 등 세 차례의 행정지침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투자자 보호 규정과 회계 기준은 통일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2020년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해 토큰증권을 ‘전자기록이전 유가증권표시권리’로 정의하며 법적 지위를 명확히 했다. 독일은 2021년 ‘전자증권법’을 통해 암호증권을 전통적 증권과 동등하게 규율했고, 미국은 기존 증권법 체계 안에 STO를 통합시켰다.

 

이들 국가는 ‘통합 유통시장’이라는 공통된 인프라 전략을 채택했다. 예컨대 일본의 오사카디지털거래소는 2023년부터 토큰증권 거래를 통합 관리하며 발행·유통·재평가까지 단일 체계로 운영한다. 이는 투자자에게 실시간 시세와 거래 신뢰성을 제공하는 핵심 기반이 됐다.

 

국내 조각투자 시장은 이와 달리 감정평가와 자산관리 기준조차 통일되지 않았다. 발행 전 감정평가는 대부분 두 개 평가법인이 수행하지만 일부는 한 곳만 참여한다. 재평가 주기도 플랫폼마다 달라 2년~3년 단위로 제각각이다. 평가기준의 표준화 부재와 정보 비대칭이 투자자 신뢰를 훼손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조각투자의 법적 기반을 임시 허가가 아닌 ‘정식 제도’로 편입해 영구적 사업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없는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플랫폼 간 거래 호환성을 높여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과 독일처럼 신뢰 기반의 유통 인프라와 통합시장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의 부동산 조각투자는 ‘투자자 친화’가 아닌 ‘불확실성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투자자 보호장치와 정보공시 기준을 통일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현진 한국부동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자산의 흐름 속에서 부동산 조각투자가 건전한 자본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화와 업계의 자율적 투명성 강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법제화부터 차입 허용, 시장 통합 등이 개별적으로 개선되는 게 아니라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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