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10일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전통시장에는 발길이 늘었다. 정부가 2차 민생회복소비쿠폰을 지급하면서 상인들은 차례상 준비로 활기가 돌아올 것을 기대했지만, 정작 소비 규모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손님 수는 늘었으나 실제 구매력은 줄어들었다는 게 대다수 상인들의 반응이다.
르데스크가 서울 시내의 전통시장 두 곳을 방문한 결과, 평소보다 손님 수는 늘었으나 양손 가득 짐을 든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고물가와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긴 연휴를 가족 여행이나 휴식으로 보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명절 장보기도 ‘최소화’되는 양상이다.
국가데이터처가 2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7.06(2020년=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7월 2%대를 기록하다가 8월에는 SK텔레콤 해킹 사태에 따른 요금 인하 효과로 1.7%로 낮아졌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2%대로 복귀했다.
농산물의 경우 채소류 가격이 12.3% 하락하면서 전체적으로 1.2% 내렸으나, 쌀(15.9%), 찹쌀(46.1%) 등 일부 품목은 여전히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축산물(5.4%), 수산물(6.4%) 가격은 추석을 앞두고 상승했다. 국산 소고기(4.8%), 돼지고기(6.3%), 고등어(10.7%) 등은 전달보다 상승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달걀은 9.2% 급등하며 2022년 1월(15.8%)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은 추석을 앞두고도 지갑을 여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직장인 김희원 씨(40·여)는 “이번 추석 연휴에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길게 떠날 예정이라 하루 정도만 추석 분위기를 낼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지난주 발급받은 2차 소비쿠폰도 점심 식사비로 대부분 사용해 이미 거의 다 소진했다”며 “최근 물가가 크게 올라 지급된 10만원으로는 차례상을 마련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부 유강선 씨(58·여)는 “몇 년 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아 추석이라고 해서 뭔가를 더 살 필요는 없다”며 “그래도 명절이니 송편과 한과 정도는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 씨는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차리고 치우는 것도 일이라 오히려 부담이 돼 지난 설에 이어 이번 추석에도 가까운 가족끼리만 모여 외식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2차 민생회복소비쿠폰 지급과 추석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지갑을 크게 열리지 않자 상인들 사이에서는 벌써 민생회복소비쿠폰의 효과가 끝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수역 인근 남성사계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기순 씨(60·여)는 “장기간 불황으로 매출이 크게 줄던 시기에 지급된 1차 소비쿠폰 덕분에 당시에는 소고기 판매가 늘어 확실히 효과를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번 2차 소비쿠폰은 금액이 줄어든 탓인지 1차 때처럼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소고기를 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성훈 씨(38·남)는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손님이 기대만큼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아직 본격적인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다 보니 모두가 추석을 준비하는 주말에는 손님이 더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오픈하고 지금까지 팔린 송편 양만 봤을 때 예년만큼의 매출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2차례의 소비쿠폰 지급으로 정부가 기대했던 소비 진작 효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비쿠폰이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와 경기 불황 속에서 억눌린 소비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민생회복소비쿠폰은 의미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소비를 장기간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장에 돈을 푸는 방식보다는 생산과 고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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