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단체 관광객 대상 무비자 입국 허용을 계기로 불붙기 시작한 ‘반중·혐중(중국 혐오)’ 선동 행위를 둘러싼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무분별한 혐오 유발 행위로 국가 이미지와 국익에 엄청난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내수시장 침체로 인한 ‘보릿고개’ 속에서 중국인 특수를 기대했던 기업과 상인들의 표정은 더욱 어둡다. 각종 혐오 유발 행위가 반한 감정을 유발시켜 K-제품 외면과 한국 관광 거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다수의 피해를 유발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급증한 극우 단체의 반중·혐중 집회, ‘친윤’ 정치인들도 선동 가세
올해 들어 중국을 향해 노골적인 반감과 혐오를 드러내는 ‘반중·혐중 집회’가 급격하게 늘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월 1~2건 꼴이었던 반중·혐중 집회는 올해 들어 꾸준히 늘기 시작해 3월 10건을 기록한 이후 지난달과 이달에는 각각 26건과 21건 등을 기록했다. 1년 새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반중·혐중 집회가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직후 극우 성향 단체가 활개 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극우 단체가 반중·혐중 집회를 개최한 사례는 여럿 존재한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첫날인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도 윤 전 대통령 지지자가 주축이 된 단체가 주도한 ‘반중(反中)’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중국인 관광객 3천만명 무비자 반대’ ‘중국인 관광객 유치보다 자국민 안전이 먼저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을 거꾸로 뒤집어 건 대형 깃발을 흔들며 반중·혐중 발언을 이어나갔다.
앞서 해당 단체는 중국인 체류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들을 골라 반중·혐중 집회를 벌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들은 중국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중구 명동에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벌였다. 집회 현장에선 중국인에 대한 극단적 비하나 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결국 그들의 행위는 국민적 우려를 샀고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지적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9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반중·혐중 시위를 두고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깽판’이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반중·혐중 선동에 가세하는 정치인들도 등장하고 있다. 당내 ‘강성친윤’ 인사로 분류되며 앞서 극우적 발언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기도 했던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무비자 제도를 악용한 범죄 조직 등의 침투 가능성이 있다”며 “마약 유통 및 불법 보이스피싱 등 국제 범죄 창구가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길거리, 카페, 술집 등에서 낯선 이들이 제공하는 음료·주류 등을 함부로 복용치 않아야 하고 한적한 곳에서 차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선다면 지체 말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도주하기 바란다”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같은 당의 나경원 의원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 재난 사태나 다름없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에 따른 국가 전산망 먹통 상황까지 끌어 들여 “법무부가 출입국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며 무비자 입국 정책을 강행한다고 밝혔지만 뒤로는 전자 입국 시스템 오류로 입국자의 주소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긴급 공지를 올렸다”며 “주소 입력이 누락되면 범죄, 불법 체류, 감염병 확산 등 유사시 신속 대응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저러다 정말 큰 일 난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묻지마 반중·혐중 선동에 국민 우려 증폭
여론 안팎에선 친윤 정치인, 극우 단체 등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중·혐중 선동 움직임을 두고 ‘국가와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망국적 행위’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특정 국가에 부정적 낙인을 찍고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는 행위는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수출, 관광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번 중국인 무비자 입국이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정책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들이 추종하는 인사마저 부정하는 아이러니”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의 불안을 틈탄 야당 국회의원들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도를 넘고 있어서 정말 개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며 “관광 활성화를 통한 민생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 때 결정된 중국인 무비자 입국이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인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는 국힘 정치인들의 언행이야말로 대한민국을 혐오와 증오로 몰아넣는 ‘극우 전염병 확산의 온상’이다”고 지적했다.
반중·혐중 선동의 직접적인 피해 가능성이 예상되는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더욱 울상이다. 반중·혐중 선동으로 인해 K-브랜드와 한국 관광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탓이다. 명동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숙자 씨(66·여·가명)는 “주변에서 집회를 할 때면 중국 관광객들이 겁을 먹고 빨리 이동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저러다가 중국 내부에서 한국 관광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생겨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라는 것이다”고 우려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장수철 씨(68·남·가명)는 “도대체 중국이 뭘 어떻게 했길래 주구장창 시위를 해대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그저 돈 잘 쓰는 고객일 뿐인데 멀쩡한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걸 보면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어떤 계기나 근거가 있으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피해를 감수하는데 자신들 정치 성향 때문에 저렇게 마구잡이로 피해를 끼치니 황당하고 억울할 뿐이다”고 덧붙였다.
한 대기업 임원 역시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은 최대 수출국이자 최대 시장이다”며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반중·혐중 시위가 지속돼 중국인들이 반응하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장 우리 회사만 해도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저러다가 중국 내에서 한국제품 불매운동이라도 벌어지면 그땐 대규모 퇴직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근거 없는 반중·혐중 선동 행위를 제재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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