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수도권 중심의 일자리 쏠림을 국토불균형 문제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가계경제 근간인 일자리의 서울·수도권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다 보니 떠밀리듯 지방을 떠나는 이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로 여겨지는 상장사의 서울·수도권 쏠림은 더욱 심각해 청년세대의 지방 외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지방 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해주거나 지방 이전 상장 기업에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식의 일자리 분산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양질의 일자리’ 보장 신규 상장사 80% 수도권 기업, 취업 때문에 지방 떠나는 청년들
금융당국,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신년 초부터 이달 19일까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장에 새로 편입된 기업은 총 66곳이다. 세부적으론 스펙(기업인수목적회사) 12곳, 리츠(부동산 투자회사) 1곳, 일반기업 56곳 등이었다. 일반적으로 실적, 기술력 등이 한국거래소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상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장사 대부분 이미 우량기업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흔히들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로 불릴만한 기업이란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신규 상장기업 대부분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까지 60%대 후반이었던 신규 상장사의 수도권 비중은 지난해 기준 78.9%까지 급등했다. 신규상장사 10곳 중 8곳이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이라는 의미다. 올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신규 상장사 66곳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이 무려 53곳에 달했다. 비율로 따지면 무려 83%에 달한다. 올해 말까지 약 3개월여가 남았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작년 수준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 역시 수도권 쏠림이 심각하다는 것인데 이는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외, 즉 국토 불균형 문제와도 관련 깊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 청년유니온, 국토연구원 등에 따르면 2015년~2021년 사이 수도권에서 증가한 인구 중 청년세대(15~34세) 비중은 무려 78.5%에 달했다. 또 2022년 기준 비수도권 청년 응답자의 43.7%가 수도권으로 이주할 계획 혹은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 그 중 75.8%는 ‘일자리’를 이유로 지목했다. 같은 해 기준 지방 거주 경험이 있는 만 19~39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청년들은 지역 정착 시 가장 크게 고려하는 사항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꼽았다.
실제 지방의 일자리 양적 측면, 질적 측면 모두 수도권에 비해 다소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정보원이 지난 2013년부터 2023년 통계청의 지역별고용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취업자 수가 증가한 상위 20곳의 시·군 중 12곳이 수도권에 속해 있었다. 반면 지방은 청년 취업자 수 감소가 두드러졌다. 일례로 청년 취업자 비중이 가장 낮은 전북 순창군(1.8%)의 경우 2013년 대비 청년 취업자가 무려 70%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의미다.
또 대기업 공장이나 정부기관 등이 밀집해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거주민 평균 소득은 수도권 거주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을 보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지역소득(잠정)’에 따르면 지역 별 1인당 개인소득(명목)은 서울이 2937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울산(2810만원), 대전(2649만원), 세종(2600만원), 경기(2570만원) 등의 순이었다. 울산에는 조선·자동차 관련 생산시설이, 대전·세종에는 정부부처·공공기관이 각각 밀집해 있다. 반면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는 지역은 전국 평균인 2554만원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았다. 하위 3곳만 보더라도 경남(2277만원), 제주(2289만원), 경북(2292만원) 등이었다.
“고향 친구 10명 중 9명은 서울·수도권 거주, 지방은 일자리도 없고 조건도 열악”
르데스크가 만난 청년세대의 반응도 통계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소재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재직 중인 직장인 우승진 씨(33·남·가명)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줄곧 부산에서 살았고 부모님은 지금도 부산에 계시지만 취업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다”며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서울하고 차이가 너무 크고 인천이나 수원, 성남 등에 비해서도 많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일자리 격차가 너무 크다”며 “부산은 연봉이나 복지 부분에서 ‘괜찮은’ 직장이라 불릴 만한 곳이 너무 적다 보니 취업 성공 확률이 바늘구멍 수준이다”고 덧붙였다.
서울 소재 한 마케팅 기업에 재직 중인 이지은 씨(31·여)는 “고향이 전주인데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이후 그 때부터 줄곧 서울에 살고 있다”며 “예전에 대학 졸업 후 잠시 부모님이 계시는 전주에서 취업해 볼까도 생각도 했지만 채용 공고도 너무 적고 조건도 너무 열악해 결국 계속 서울에 남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주 친구들 중에 지금까지 전주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며 “자영업을 하는 친구를 제외하고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 경기도 등에서 취직한 후 자리를 잡았다”고 부연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서울과 지방 간에 일자리 양극화가 고착화됐고 결국 이런 상황이 지역 간 불균형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세밀하면서 구체적인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포괄적인 대책 보단 문제의 원인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식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자리 양극화와 관련해선 자금 유치에 유리한 상장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거나 지방 기업 중에서 상장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방과 수도권 간의 일자리 양극화는 단순히 노동시장의 문제를 넘어 역 간 경제력, 인구 구조, 사회 서비스 수준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다”며 “이러한 양극화가 고착화될수록 지방은 점점 더 경쟁력을 잃고 수도권 과밀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제는 포괄적인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추상적 구호에서 벗어나 상장 기업 유치, 세제 혜택, 인프라 확충 등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통해 지방에도 양질의 일자리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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