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은퇴세대의 경제적 결핍 문제가 사회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장년층의 직장 퇴직 평균 연령은 49.4세로 법정 정년인 60세에 비해 10년 가까이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자 가운데 46%는 재취업 의향을 밝혔으며 가장 큰 이유로는 ‘생활비 부족’을 꼽았다. 말로만 은퇴일 뿐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는 게 현실인 것이다. 위로는 고령의 부모를 돌보고 아래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이중 부담’ 속에서 많은 수많은 중장년층은 다시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젊었을 땐 상상도 못했던 일자리 찾는 50·60 은퇴세대
50·60 은퇴세대 대다수는 단순히 일터로 내몰리는 상황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진짜 문제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 젊었을 때처럼 원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일자리 플랫폼 벼룩시장이 올해 상반기 이력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이력서 등록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6.7%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40대 이하 구직자들의 이력서 증가율(33.9%)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성별로는 50대 이상 남성의 이력서 증가율이 85.9%로 여성(64.9%)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50대(62.9%) ▲60대(104.4%) ▲70대 이상(152.0%) 등으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이력서 증가율 또한 높았다. 중장년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은 생산·건설·노무(27.6%)였으며 외식·음료(18.6%) 역시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어 ▲운전·배달(15.8%) ▲서비스(15.4%) ▲매장관리·판매(7.2%) 등의 순이었다.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 비중이 높은 직종들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황영수(61·남) 씨는 30년간 중견기업에 재직했다. 처음 퇴직할 때만 해도 황 씨는 다시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히 젊었을 땐 상상도 못했던 야간 경비일을 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러나 은퇴 후에도 돈 들어갈 곳이 많다 보니 다시 생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매일 늦은 저녁 출근길에 오르는 일이 쉽진 않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간신히 일자리를 구한 것을 생각하면 ‘불만조차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황 씨는 “은퇴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부모님 부양에 자녀 결혼까지 돈 들어갈 곳이 너무 많았다”며 “자식들한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일상이 되고 명절에도 그냥 눈치만 보게 되니 결국엔 다시 일을 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중장년 일자리 정보를 수개월간 찾아보다가 지인의 소개로 간신히 일자리를 얻었다”며 “당시 경쟁률이 30대 1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30대, 40대들도 경비직에 많이 지원하다 보니 면접 볼 때마다 나이가 많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급여는 최저시급 수준이고, 많이 벌어도 300만원 안팎이다”며 “말은 은퇴인데 실상은 더 힘든 인생 제 2막이 시작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엄현호 씨(55·남)의 사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회사원 생활을 하다 은퇴했지만 삶의 무게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연금으론 도저히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새로운 일을 찾기로 결심했지만 막상 그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근로 강도가 부담스럽지 않고 수입이 안정적인 곳은 경쟁률이 상당했다. 지금의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한 고생을 생각하면 해고되기 전까진 최대한 버텨볼 생각이다.
엄 씨는 “경비원 취업은 보통 지인을 통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경비용역업체를 통해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며 “경비용역업체의 경우 서류전형과 면접 절차가 있는데 경쟁률이 수십대 일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요즘에는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이 늘어나면서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라 더욱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 같은 사람은 정말 경비일을 하는 것 자체가 복이다”고 부연했다.
12시간 편의점 야간알바, 새벽 5시 사무실 청소…밤낮없이 일하는 우리 주변의 ‘엄마들’
50·60 은퇴세대 사이에서 경비원은 가장 인기가 많은 소위 말하는 ‘선망의 직업’이다. 그나마 안정적이고 다른 일자리에 비해선 수입도 괜찮은 편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만큼 문턱도 높다 보니 경비원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경비원 일을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편의점, 주차장, 청소용역 등 이른바 생활밀착형 아르바이트 일자리 뿐이다. 이들 직종은 확실히 경비원 보다는 일이 고된 편이었다.
조혜령 씨(60·여)는 서울 한 편의점에서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12시간 야간근무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12시간 동안 밤새 서 있는 게 쉽진 않지만 그나마 원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게 이 일 뿐이다 보니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내년에 결혼할 딸에게 어떠한 보탬도 되지 못해 받는 심적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의 체력적 고통은 충분히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 씨는 “몇 년 전 남편이 하던 사업이 크게 망한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겠다고 생각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며 “하지만 특별한 경력도 없는 50세 넘는 아줌마를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내년에 딸이 결혼을 하는데 시댁 형편과 비교될 때마다 아이가 위축된 말투나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며 “그런 모습을 보고 정말 부모로서 뭐라도 해주고 싶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심야 시간에는 술에 취한 손님들도 자주 오고 가게 앞에 널브러진 술병이나 담배꽁초를 치우는 일도 빈번해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며 “그나마 지금은 많이 적응돼 일을 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힘들 때 마다 내가 왜 여기서 버티고 있는지 되새기곤 한다”며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은 딸에게 물려주기 위해 거의 전부를 저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재호 씨(63·남)는 젊은 시절 유명 기업 팀장까지 맡았지만 은퇴 후엔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가에서 발레파킹 일을 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차를 맡기던 입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은퇴 후 180도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자리를 알아보다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60세가 넘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부족한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일자리를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무슨 일이든 빨리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씨는 “일을 하다보면 수치스러울 때도 있고 자존심이 짓밟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하지만 가정을 유지하려면 뭐든지 참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이 나이에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주 6일 근무,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일하며 기본급과 수당을 포함해 월 180만원 가량을 받고 있다”며 “급여가 넉넉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 정도라도 벌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청소 용역으로 일하는 이순자 씨(72·여)는 주 6일 남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 5시에 출근해 바닥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고 있다. 몸이 아픈 남편 병원비에 생활비까지 감당하려면 빠듯하긴 하지만 그나마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어 간신히 생계유지 정도는 가능하다. 일주일에 단 하루를 제외하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게 쉽진 않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을 생각해 어떻게든 버티는 중이다.
이 씨는 “예전엔 중소기업에서 경리일을 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당했고 그때부터 인생이 캄캄해졌다”며 “아들은 가난한 집이 싫다며 집을 나가버렸고 남편도 병으로 앓아누워 버리면서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팔다리 중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을 위해 뭐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며 “청소를 하다 보면 가끔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집에 있는 부모님이나 할머니를 생각해 조금은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