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외식 업계를 지배하는 ‘탄(Tan)’ 가문의 최근 행보가 국내 외식 업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K-프랜차이즈 업체들을 경영 승계 발판으로 삼고 있어서다. 지난해 컴포즈커피 인수에 이어 최근엔 치킨 프랜차이즈 ‘노랑통닭’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탄 가문이 이끄는 ‘졸리비 푸드 코퍼레이션(Jollibee Foods Corp·이하 JFC)’ 필리핀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다. 필리핀 재계 서열 10위에 올라 있다. 현재 JFC의 시가총액은 약 47억달러(약 6조55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약 2700억페소(약 3조7600억원), 영업이익은 160억페소(약 2230억원) 등이었다.
아이스크림 노점서 시작된 필리핀 외식재벌 역사…K-프랜차이즈 통한 2세 승계 작업 주목
탄 가문은 필리핀 재계에서 흔치 않은 자수성가형 재벌이다. 가문의 수장이자 현 JFC 회장인 토니 탄 칵티옹(Tony Tan Caktiong)은 중국 푸젠성 출신 화교 2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 노점을 운영하며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 이후 치킨 매장을 열며 요식업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매장을 늘려 가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현재 탄 가문은 2세 승계가 한창이다. 토니는 슬하에 딸 2명과 아들 1명을 뒀는데 이들 중 아들 칼 탄 칵티옹(Tony Carl Caktiong)을 후계자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재 칼은 JFC 글로벌 사업 담당자로 재직 중이다. ‘글로벌 사업 담당’은 말 그대로 글로벌 사업 진출과 확장을 책임지는 직책이다. 사실상 글로벌 사업성과가 곧장 칼의 경영 능력을 가늠하는 평가지표가 되는 셈이다. 탄 가문은 그동안 수많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들을 인수해왔다. JFC는 2015년 미국의 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 ‘스매시버거(Smashburger)’ 지분 100%를 2억1000만달러(약 2300억원)에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미국의 더 커피빈 & 티리프(CBTL) △중국의 융허왕·홍장위안 △미국의 릭베이리스 토르타조 △홍콩의 팀호완(Tim Ho Wan) △베트남의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 △대만의 밀크샤(Milksha)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글로벌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팀호완의 경우 한국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지난해 기준 JFC 필리핀 사업 매출은 1665억페소(약 2조3200억원), 해외 사업은 1065억페소(약 1조4400억원) 등이었다.
최근에는 K-프랜차이즈 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실제 인수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JFC는 지난해 7월 3억4000만달러(약 4700억원)를 들여 컴포즈커피 지분 70%를 인수했다. 컴포즈커피는 2014년 부산에서 출발해 불과 10년 만에 매장 수 2000여개를 돌파한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JFC는 컴포즈커피를 미국과 중동까지 확장시켜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컴포즈커피는 지난해 매출 약 900억원, 영업이익 약 367억원을 기록했다. 인수 직전 해인 2023년 대비 각각 0.9%, 9%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 측면에선 스타벅스, 메가커피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더벤티와 매머드커피 등 경쟁사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57%, 18.8%씩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평가됐다. 점포 수 또한 지난해 말 2350여개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2800여개로 늘었다. 커피 부문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JFC는 K-치킨으로 눈으로 돌렸다. JFC는 지난 6월에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노랑통닭’ 인수전에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가는 약 1억달러(약 1400억원)로 알려졌다.
글로벌 외식업계 안팎에선 JFC의 K-프랜차이즈 인수 행보를 두고 미래먹거리 발굴과 경영 승계를 위한 명문 마련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목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글로벌 외식업계에서 K-푸드의 입지가 점차 공고해지는 만큼 미래 먹거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근 JFC의 대표 사업체인 치킨앤조이는 ‘코리안 스파이시 치킨’이라는 메뉴를 출시해 필리핀 현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글로벌 사업 성패가 가문 후계자 칼의 입지 구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K-프랜차이즈를 후계자 명문 쌓기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창업주 이후에도 철저한 혈통 중심 형제경영, 장남 승계 위한 ‘징검다리’ 평가 우세
탄 가문은 외식 외에 부동산, 금융, 유통 등의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또 다른 필리핀 재벌가문 시아(Sia) 가문과 합작 설립한 부동산 투자회사 더블 드래곤(Double Dragon)사를 통해 마닐라 주요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필리핀 핵심 금융지주 및 유통 기업의 지분도 꾸준히 늘려 나가고 있다.
이러한 탄 가문은 철저히 가족 중심의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창업주 토니와 그의 형제들이 회사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그룹 최고경영자 자리는 토니의 첫째 동생 에르네스토 탄 만티옹(Ernesto Tan Mantiong)이 맡고 있다. 둘째 동생인 윌림엄 탄 우이옹(William Tan Untiong)은 졸리비푸드 사업 지원 최고 책임자를, 셋째 동생인 조셉 탄 번티통(Joseph Tanbuntiong)은 필리핀 프랜차이즈 사업 최고 책임자를 각각 역임하고 있다. 토니는 남동생들 외에 3명의 여동생도 두고 있는데 이 중 첫째 여동생 버지 탄 추아(Virgie Tan Chua)를 제외한 나머지 동생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버지는 JFC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치킨조이-졸리비’의 인기 메뉴인 토마토 스파게티를 개발한 인물이다.
필리핀 현지에선 탄 가문의 형제 경영은 어디까지나 창업주 장남 승계를 위한 징검다리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많다. 창업주인 토니는 형제들을 요직에 앉히긴 했지만 지분은 나눠주지 않고 여전히 혼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최대주주이자 창업주인 토니가 100% 지분을 소유한 지주사 하이퍼 다이나믹 코프(Hyper dynamic Corp.)는 JFC 지분 43.6%를 소유하고 있다. 또 토니가 직접 소유한 JFC 지분도 5.4%나 된다. 토니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JFC 지분만 49%에 달하는 셈이다.
반면 형제들이 소유한 JFC 지분은 첫째 동생 에르네스토 1.4%, 둘째 동생 윌리엄 1.35% 등이 전부다. 또 탄의 처남이자 버지의 남편인 안토니오 추아 포엥(Antonio Chua Poeng)은 JFC 지분을 2.25% 소유한 허니워스 코프(Honey Worth Crop) 회장을 맡고 있다. 필리핀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인 토니가 회장 자리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지분을 쥐고 있다는 것은 형제들이 아닌 장남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확실한 정황적 증거다”며 “특히 해외 사업을 맡기며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사실에 비춰볼 때 머지않아 새로운 총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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