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평에 30억’ 꿈꾸던 강남 하이엔드, 줄줄이 미분양 · 공매 신세로
‘22평에 30억’ 꿈꾸던 강남 하이엔드, 줄줄이 미분양 · 공매 신세로

서울 강남 일대의 초고가 주거시설들이 줄줄이 공매 시장에 나오며 이른바 ‘하이엔드 오피스텔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로 상업용 부동산이 고점을 찍었던 코로나 시기에 분양된 물량이 대부분이다. 강남권 입지라는 프리미엄을 내세워 화려하게 분양됐지만, 이후 세금 문제와 잇따른 미분양, 그리고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 속에서 자금 조달이 막히자 결국 공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하이엔드 오피스텔의 공통점은 2021년 부동산 광풍이 정점을 찍던 시기에 분양됐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의 강력한 아파트 규제와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확대가 맞물리며 투자 수요가 고급 오피스텔로 쏠렸다. 전매 제한과 15억원 이상 대출 규제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긴축 기조와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고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실수요층이 사라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22평에 30억원, 하이엔드 오피스텔 대표주자 ‘서초 르니드’…미분양 속출

 

▲ 지난 8월 입주를 시작한 하이엔드 오피스텔 서초 르니드는 여러 차례 공매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찰됐으며 현재 100호실 이상 비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서초 르니드 입구의 모습. ⓒ르데스크

  

2021년 첫 분양을 시작한 ‘서초 르니드’는 강남권 하이엔드 오피스텔의 대표 주자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 1월 준공 이후에도 분양률은 30% 수준에 머물렀다. 시행사는 중도금 무이자 지원 등 각종 혜택을 내세웠지만 고분양가 논란을 피하지 못한 채 미분양 사태를 빚고 있다.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총 156호실 중 약 100호실이 공매로 나왔으며 입주가 시작됐음에도 내부 상가는 텅 비어 있다. 근린생활시설 16개실의 경우 모두 분양에 실패하면서 공실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장기 미분양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시행사가 이자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자금을 빌려준 대주단이 결국 오피스텔을 공매에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스텔은 공매를 진행했음에도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6월부터 8차례 입찰을 진행했지만 대부분 호실이 유찰된 채 남아있는 상태다.

 

서초 르니드의 미분양 원인은 높은 분양가가 지목된다. 양재역 도보 1분 거리, 말죽거리 골목 인접 등 입지 여건이 우수하고 실내 러닝장, 골프 연습장, 오픈키친 등 고급 커뮤니티 시설도 갖췄지만 이를 감안하고도 지나치게 분양가가 높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평가다.

 

서초 르니드의 분양가는 전용 42㎡(약 13평)가 14억6600~15억9300만원, 전용 73㎡(약 22평)는 26억1900~29억7500만원, 130㎡(약 40평) 펜트하우스는 65억~73억원에 분양됐다. 미분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거래되는 가격보다 절반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공인중개사 장명철 씨(73·남)는 “지하철 3호선과 신분당선 환승역인 양재역과 1군 건설사 롯데건설 시공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분양가가 너무 높았다”며 “1인 가구 이상이 거주하기에는 좁고 비싼 데다 워낙 매물을 찾는 사람이 적다 보니 중개사 입장에서도 취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역·양재역까지 10분 거리 ‘오데뜨오드 도곡’…법적 공방에 공매까지 난항

 

▲ 반포 원베일리보다 높은 분양가를 자랑했던 오데뜨도곡이 미분양으로 인해 몇 차례 공매로 넘어갔다. 사진은 시행사와 대주단 사이에서 법적 공방에 발발한 오데뜨오드 도곡의 모습. ⓒ르데스크

 

강남역과 양재역 모두 도보로 10분이면 이용할 수 있는 ‘오데뜨오드 도곡’ 역시 코로나 시기 분양된 하이엔드 주거시설이다. 우수한 입지를 내세운 이곳은 지하 6층~지상 20층 규모의 84호실로 설계됐지만 미분양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당시 오데뜨오드 도곡은 호텔식 서비스와 하이엔드 커뮤니티 시설 등을 이유로 평당 분양가를 7300만원에 책정됐다. 가구당 분양가가 14억원을 넘었다.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반포 레미안 원베일리 아파트의 분양가가 530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38% 이상 높은 가격에 분양된 것이다.

 

이곳은 2021년 4월부터 2022년 6월까지 7개 호실에 대한 분양 계약이 체결됐다. 나머지 77개 호실은 미분양으로 남겨졌다. 지난해 8월에는 앞서 분양됐던 7개 호실도 중도금 3회 이상 및 잔금 미납을 이유로 분양 해제 처리됐다. 2023년에 준공된 이후 전체 호실이 미분양 상태처리 된 것이다.

 

이에 오데뜨오드 도곡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건물 전체 공매를 시작했다. 당초 최저입찰가가 1829억5000만원이었지만, 이후 12차례나 유찰되면서 최근 논의됐던 매각 가격은 당초 가격의 절반 정도인 900억원대로 알려졌다.

 

문제는 단순한 미분양을 넘어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최근 오데뜨 도곡의 대주단이 시행사·시공사를 상대로 형사 고소한 상태다. 시행사인 도곡닥터스와 시공사인 DL대림이 의도적으로 부동산 점유를 침탈해 채권회수를 방해했다는 취지다. 이러한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여긴 대주단이 형사 고소를 진행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유현옥 씨(63·여)는 “오데뜨오드 도곡의 경우 워낙 고가에 주거 형태도 한정적이다 보니 이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최근 법적 분쟁이 시작되면서 겨우 입주했던 3명도 퇴거 조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경우 공매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랑 협업도 소용없네…4차례 유찰에 공매행 ‘포도 바이 펜디 까사’

 

▲ 명품 브랜드 펜디와 협업했지만 높은 분양가에 여러 차례 공매로 넘어가면서 인근 공인중개사와 상인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아시아 최초의 하이엔드 시설로 알려졌다. 사진은 포도 바이 펜디 까사 개발 용지의 모습. ⓒ르데스크

 

서울 청담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포도 바이 펜디 까사’는 분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협업해 가구와 인테리어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는 자산가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다. 펜트하우스는 200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책정되며 아시아 최초의 펜디 레지던스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입주민 선별 과정에서 직업·자산 규모를 확인하겠다는 파격적 조건도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화려하게 등장한 것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PF 대출 부실이 겹치면서 프로젝트는 좌초됐다. 감정가 3183억원으로 평가된 부지는 공매에 넘어갔지만 네 차례 유찰을 거치며 현재는 2000억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인근 상인 유효순 씨(68)는 “몇 년 전부터 초고급 빌딩이 들어선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진척이 없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예 다른 용도의 건물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문만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공인중개사 고형민 씨(48·남)는 “분양 당시와 달리 지금은 건설 경기가 워낙 안 좋은 상태다”며 “부동산 대출 이자 미납으로 인해서 부실 유의 사업장으로 분류됐고, 이후 시행사에서 부지 자체를 매각하려고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너무 고가라 매각도 힘들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기 강남권 하이엔드 주거시설은 아파트 규제와 재택근무 확산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며 대체재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팬데믹 종료 이후 금리 인상, 경기 침체, 건설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과도한 분양가 전략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정석 단국대 부동산계획학과 교수는 “코로나 시기에는 개인 공간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욕구가 컸고, 오피스텔이 아파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았다”며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 돈이 돌지 않고 실수요자도 합리성을 중시하다보니 강남 입지조차 초고가 전략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남권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줄줄이 미분양나고 공매로 넘어가는 건 시장 변화에 뒤처진 초고가 전략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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