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선 시장 친화적인 제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핵심으로는 배당소득 과세제도의 정상화가 지목된다. 기업과 주주 간 유인을 왜곡시키는 차별적 세부담을 해소하지 않는 한 한국 증시는 단기 이벤트에 휘둘리며 장기 상승 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거라는 지적이다.
증권가 안팎에서는 세금을 정상화해야 시장이 정상화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7월 말 연고점을 경신한 국내 증시는 이후 힘을 잃고 박스권에 갇혀 있다. 정책 모멘텀에 대한 기대가 증시 랠리를 견인했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은 시장의 눈높이를 크게 밑돌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왜 배당소득만 차별하나” 누진세율에 이중과세 논란까지…투자자, 배당 기피 우려
최근 국내 증시가 또 다시 박스권에 갇힌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코스피는 장중 3288포인트를 기록하며 연고점을 새로 썼지만 바로 다음 날 3110선으로 후퇴했고, 이후 한 달 넘게 3100~3200선의 좁은 박스권에 갇혔다. 거래대금도 눈에 띄게 줄었다. 7월 298조원에 달했던 거래대금은 8월 들어 207조원으로 한 달 새 30% 넘게 줄었고 일평균 거래대금도 12조원대에서 8조원대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꺾은 가장 큰 원인으로 세제 실망감이 투자심리를 눌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행 제도는 연간 2000만원 이하 배당소득에는 14%(지방세 포함 15.4%)의 분리과세를 적용하지만, 이를 초과하면 금융소득 종합과세로 전환돼 최고 45%의 누진세율을 물린다.
반면 대부분의 주식 양도차익은 과세되지 않거나, 과세되더라도 기본세율 20~25% 단일세율이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배당투자를 선택한 개인투자자는 동일한 투자행위인데도 불리한 세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이득 중심의 단기 매매를 부추기는 배당 기피 현상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중과세 논란도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 이미 법인세를 낸 뒤 남은 돈으로 배당을 한다. 그런데 주주가 이 배당금을 받을 때 다시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세금 부담이 최대 58%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장에선 배당투자에 세금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배당과 자본이득 간 세부담 불균형, 이중과세 문제, 복잡한 과세체계 등이 증시 상승을 억누르는 구조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도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35%(지방세 포함 38.5%)로 설정했고 배당성향 40% 이상 기업만 대상으로 제한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25%안에 비해 10%p 높고, 적용 범위도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세금 인상이 아닌 세제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코스피 5000 시대’ 위한 해법은 ‘배당세제 정상화’
증권가에선 코스피 5000 시대가 현실화되기 위해선 배당소득 과세제도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차별적 배당과세 구조가 유지된다면 기업과 투자자 모두 배당을 기피하고 자본시장은 단기 매매 중심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배당과 자본이득 간 불균형 해소가 지목된다. 현 제도에서는 배당에만 높은 누진세율이 적용돼 투자자가 자본이득을 선호하도록 왜곡한다. 장기적으로는 금융소득 전반에 단일세율 체계를 도입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배당소득세율을 대폭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적격 배당’을 정의해 장기 보유 주식에서 발생한 배당에 대해 0~20%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영국은 종합소득세율보다 낮은 별도 배당세율(8.75~39.35%)을 운영한다. 독일도 26.4% 고정세율을 부과하면서 일정 금액까지 비과세 혜택을 준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배당과세는 확연히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이중과세를 완화할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배당가산제도는 법인세율과 괴리가 커 실질적인 보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임퓨테이션(Imputation) 제도가 거론된다. 임퓨테이션 제도는 기업이 이미 낸 법인세를 주주의 세금에서 빼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호주, 뉴질랜드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 국가는 임퓨테이션 제도를 통해 배당에 대한 세금 부담을 크게 낮춰 배당투자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영국과 독일도 과거에는 이 방식을 썼다가 재정 문제로 고정세율 등 다른 방식으로 전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배당가산 제도’라는 부분적 보완 장치가 있지만 임퓨테이션처럼 전액을 조정해주진 않는다.
복잡한 세제 구조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금은 2000만원 이하 배당소득은 분리과세, 초과분은 종합과세로 전환되는 복잡한 구조다 보니 투자자 입장에서 세금 예측이 어렵고, 신고도 까다롭다는 것이다. 이에 ISA, IRP 같은 세제우대 계좌 중심으로 제도를 정리하고,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세제를 마련해야 장기투자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가에선 국회의 배당소득 세제 개편이 담긴 법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 지 여부가 증시 분위기를 좌우할 거라고 입을 모은다. 배당소득세율을 정부안대로 35%로 확정할 경우 시장은 다시 한 번 ‘실망 매도’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30% 이하로 낮아진다면 ‘세제 정상화’ 신호로 해석돼 투자자 유입을 촉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보유 자사주 소각 유예기간을 1년 이하로 두면 증시에 단기적 호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5000은 단순한 지수 숫자에 그치지 않고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화, 기업 배당정책의 변화, 투자문화의 질적 도약을 상징한다”며 “지금과 같은 차별적 배당과세 구조가 유지된다면, 기업과 투자자 모두 배당을 기피하고 자본시장은 단기 매매 중심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편안에서 시장 친화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한국 증시는 다시 국제 투자자들의 레이더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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