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오프닝]
“무더운 여름 건물 5층 이상을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누구나 짜증이 나고 불편함을 느끼실텐데요.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겪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택배 하나를 받을 때도 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일상이라고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1. 충정로
[내레이션]
“충정로의 한 아파트입니다. 8층짜리 아파트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2013년에 개정된 건축법 제64조에 따르면 6층 이상, 연면적 2,000제곱미터 이상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수적인데요.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 탓에 노후 건물들은 여전히 엘리베이터 없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겁니다. 8층은 20대 여성이 맨몸으로 올라가기에도 힘든 높이인데요.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택배기사와 배달기사들에겐 더욱 힘들게 다가옵니다.”
[택배·배달기사 인터뷰]
“제일 힘들어요 여기가. 이 아파트 정상 배송을 하려면 여기 8층까지 있거든요? 구멍을 8개를 타야 돼요.”
“물, 쌀, 감자, 농산물, 과일도 배달될 때가 많아요. 10kg 이상 넘어가면 힘들죠.”
“신축인데도 엘베가 없는 건물들이 있잖아요. 고객들이 보면 낮은 층에 있는 사람은 주문 안 하잖아요. 고층에 사는 사람들이 힘들고 불편하니까 주문을 시켜 먹는 거잖아요. 엘베가 없으면 당연히 불편하죠.”
[내레이션]
“하지만 직접 올라가 보니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계단 곳곳에는 적재물들이 놓여 있었고 소화전은 안내문으로 가려져 있었는데요. 심지어 화재 발생 시 고층 주민의 유일한 대피처인 옥상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2. 신림
[내레이션]
“신림의 한 오피스텔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2000년대 8층 건물,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올라가는 길목에는 화분을 비롯한 무거운 적재물들이 놓여있는데요. 적재물로 인해 계단이 좁아져 여성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 남았습니다. 이번엔 옥상으로 가봤습니다. 문은 열려있었지만 화분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소방관 인터뷰]
“원래는 적재물을 둬서는 안 돼요. 소방법 상으로는 둬서는 안 되는데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법 잣대를 그렇게 댈 수가 없어요. 지옥이죠 저희한테는. 이런 오래된 아파트는 가운데에 연돌 효과가 있어가지고 가운데로 연기가 많이 모이거든요. 7, 8, 9층 정도 된다 이런 경우는 옥상으로 대피를 하고 저층부인 경우는 지상으로 대피하는 게 좋아요. 개방돼 있어야 돼요 무조건.”
3. 안암
[내레이션]
“안암동의 한 아파트입니다. 올라가는 길부터 경사가 심하지만 이 경사를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입니다. 오르기도 벅차지만 내려가기는 더 힘든 탓에 단지 내에서만 주로 활동한다는데요. 엘리베이터마저 없으니 노인들의 생활 반경은 좁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주민 인터뷰]
“어르신들이 많더라고요. 내려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운동하시고 힘들죠. 화재가 발생되면 저기를 내려와야 되고 119 같은 경우도 그 사람들이 고생하는 거지 뭐.”
[내레이션]
“그렇다면 이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파트 관계자 인터뷰]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뭐하고 할 가치가 없어. 돈을 들여서 이 아파트에다가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데 50년 전에 지은 거라 싸니까 사람들이 40년씩 살고 그러는데 다른 데 갈 수가 없잖아 여기서. 다른 아파트 전세도 못 들어가.”
4. 이촌
[내레이션]
“이촌의 한 아파트입니다. 출입구부터 1층 높이의 가파른 계단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들. 고령의 주민들이 많아 응급상황 또한 자주 발생합니다. 그때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구급대원들의 몫인데요. 들것을 이용해 환자를 이송하려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만 인원이 부족해 난감한 상황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소방관 인터뷰]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 취약 계층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또 신고를 많이 하세요. 엘리베이터 없으면 들고 그냥 힘으로 몸으로 그냥 하는 거죠. 방법이 없어요. 8층, 9층짜리도 있는데 만약에 구급대가 가서 응급처치하다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인원이 많이 필요하겠다(싶으면) 저희 구급대 같은 경우는 세 명인데 세 명 가지고는 신속하게 이송이 어려우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그러면 우리가 펌뷸런스 지원 요청을 하면 펌프차 대원들이 가서 같이 이송을 합니다.”
[내레이션]
“계단 곳곳의 적재물은 구조를 가로막고 잠겨있는 옥상은 마지막 탈출구마저 막아버립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안전한 대책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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