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원전 웃고, 자동차 · 제약 울고…韓 산업계의 한미정상회담 성적표
조선 · 원전 웃고, 자동차 · 제약 울고…韓 산업계의 한미정상회담 성적표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으로 인해 국내 산업계는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선·원자력·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은 새로운 수출 기회를 확보했지만, 자동차·에너지·디지털 산업은 새로운 부담을 떠안는 등 산업별 득실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겉으로는 양국 협력의 성과가 부각됐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와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가 선명히 드러난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와 기업의 정교한 대응 전략이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동맹 현대화’라는 외교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를 이어질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선·원자력·반도체 등 전략산업 협력 강화 성과…“기업 노력·정부 뒷받침 병행돼야”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전략산업 협력 강화가 지목된다. 조선업은 미국 내 에너지 인프라 확충 수요와 맞물려 새로운 수주 기회를 얻게 됐다.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 확대와 LNG 수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한국 조선업체들이 강점을 가진 LNG 운반선과 친환경 선박 수주 증가로 직결될 수 있다.

 

최근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이미 글로벌 발주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국 정부 및 에너지 기업들과의 직접적인 협력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LNG 운반선 수요가 향후 10년간 꾸준히 이어질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원자력 분야도 수출 확대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면서 한국 기업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SMR 기술 개발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상업화와 대규모 생산에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형 원전이 중동과 동유럽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이번 협력 합의는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산업 역시 미국과의 협력 강화로 수혜가 기대된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는 한편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최혜국 대우 적용으로 고율 관세 부담을 피하면서 현지 투자 안정성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인디애나주 라파예트에 HBM(고대역폭 메모리) 패키징 공장을 건설 중인 SK하이닉스 사례는 이번 정상회담의 협력 의제를 대표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내 생산거점 확보는 대외적 압력 속에서도 기술적 우위를 지키는 전략적 선택”이라면서도 “다만 국내 투자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터리업계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규제 대응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이미 미국 내 합작공장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인데 이번 회담을 계기로 제도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미국은 자국 내 전기차 보급을 위해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이 필요하고,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과 생산 경험에서 앞서 있는 만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분석된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한국은 미국산 LNG를 장기계약으로 확보하면서 공급망 다변화와 안정성을 동시에 얻게 됐다. 동시에 디지털·IT 분야에서도 협력 의제가 논의됐다. 디지털 통상과 인공지능, 사이버 보안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이는 국내 IT 기업들에게 미국 시장 진출 확대의 기회로 작용할 거라는 분석이다.

 

한미정상회담이 전략산업 전반의 성장 기회로 작용할 거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라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큰 틀의 합의가 실제 투자와 계약으로 이어질지는 기업들의 실행 의지와 정부의 후속 지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제약·디지털 업계 위축 우려…“미국에 퍼주다 정작 한국 일자리·투자 감소할라”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FTA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고 15% 관세가 부활하면서 국내 완성차업계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한미정상회담으로 인한 기회 못지 않게 부담 요인도 적지 않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이번 회담에서 사실상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FTA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고 15% 관세가 부활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미국 수출 물량 감소와 생산라인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용 위축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제약업계도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바이오·제약 협력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면서 높은 진입 장벽과 까다로운 규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내 제약사들은 연구개발 역량을 키우고 있지만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들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임상·허가 협력 등이 논의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분야도 불안 요소를 떠안게 됐다. 미국산 LNG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다. 탄소중립을 향한 전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전환 속도가 뒤처질 경우 국제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분야는 양날의 검이다. 미국은 디지털 통상에서 자국 기업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한국의 데이터 규제나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무역 장벽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지만 동시에 국내 제도와 규제가 압박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국내 산업계가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대규모 대미 투자에 따른 국내 기반 약화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거점 확대에 나서면서 국내 고용과 연구개발 투자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국내 투자 여력이 축소되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균형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종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대미 의존 심화는 불가피한 흐름일 수 있지만 이를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와 병행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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