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3구, 한강벨트 등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계약 파기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토지거래허가제, 규제지역설정 등 각종 거래 제한 규제를 원인으로 꼽는 목소리가 많아 주목된다. 매물 자체가 적다보니 보니 한 두 건의 계약 사례가 곧장 시세가 돼 버리고 이후 직전 계약보다 높은 가격의 매물이 등장하면 기존 매도자가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계약을 엎어버리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게 일선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계약 파기 급증 현상은 각종 거래 제한 규제 때문에 원활한 공급이 막히면서 생겨난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계약만 맺어도 주변 시세 껑충, 위약금 물고 계약해지 후 다시 팔아도 수억원 이익
한국도시연구소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파트 계약 해지 건수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관련 정보가 공개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통상 월 100여 건 수준에 불과했던 아파트 계약 해지 건수는 2월 442건, 3월 858건, 4월 497건, 5월 915건, 6월 1067건 등으로 폭증했다. 과거 2% 수준에 불과했던 전체 거래 건수 대비 계약 해지 비율도 올해 2월 6.6%, 3월 8.2%, 4월 9.0%, 5월 11.1%, 6월 8.9% 등으로 급등했다. 계약 후 취소 사례가 유독 많았다는 의미다.
르데스크가 서초·강남·성동·마포 등 서울 주요 지역 공인중개사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정확히는 6·27 대책 이전의 아파트 계약 해지는 대부분 ‘매도자 변심’ 때문에 발생했다. 수년째 지속돼 온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지난 3월 토지거래허가 지역까지 확대되면서 거래 자체가 어려워지다 보니 매물이 귀해졌고 그 과정에서 간혹 등장하는 거래 사례가 시세가 돼 버리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자연스레 거래 이후에 등장하는 매물은 직전 매물에 비해 높은 시세가 책정되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동시에 직전 매도자들이 수억원의 위약금을 물면서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러한 주장은 통계로도 입증됐다. 올해 상반기 최고가로 거래를 신고한 뒤 계약을 해제한 비율은 수요가 많은 지역일수록 특히 높았다. 서초구는 무려 66.1%에 달했고 강남구도 52.8%로 과반을 상회했다. 용산구(49.4%), 마포구(48.7%), 광진구(46.2%), 송파구(45.0%)등 이른바 ‘한강 벨트’ 지역으로 불리는 지역도 높은 비율을 보였다. 실제 사례도 있다. 서울 성동구 소재 전용면적 59㎡ 아파트 호실은 5월 10일 22억7000만원에 계약됐고 6월 25일 계약해지 됐다. 그 사이 총 7건의 거래가 있었다. 거래가는 23억5000만원에서 26억7000만원 사이였다. 통상 계약금이 10% 수준임을 감안하면 계약을 취소한 매도인은 위약금을 주고 다시 직전 거래가 수준으로 매도를 하더라도 2억원 넘게 이익을 보는 셈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H부동산 관계자는 “주변에 수만 세대가 있어도 매물은 고작 한 두 개 밖에 되지 않으니 계약서만 쓰면 곧장 그 가격이 시세가 돼 버린다”며 “이후 또 다른 매물이 나올 땐 기존 보다 최소 수억원 이상 비싼 가격에 나오는데 그 가격에 계약이 체결되면 기존에 계약서를 쓴 집주인이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파기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매도자들 입장에선 몇 달만 참으면 위약금 이상의 시세가 올라버리니 당연한 결정 아니겠나”라며 “올해 상반기 이런 식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주변 아파트 시세가 비정상적으로 폭등했다”고 부연했다.
“투기규제지역 설정에 재건축해도 공급 절벽 지속” “집값 오르는 시간 벌어주는 토허제”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역대 최고 수준의 계약 해지 사태와 이에 따른 집값 상승 부작용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물 잠김 현상을 부추기는 각종 거래 규제를 푸는 것이다. 직전 거래가가 시세가 되는 상황의 근본 원인이 극심한 매물 잠김 때문인 만큼 규제를 풀어 매물이 늘어나게끔 유도하면 계약 후 거래를 취소하거나 거래 한 번에 주변 시세가 들썩이는 상황이 동시에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소재 M부동산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잠원·반포 일대 부동산 시세는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이 올랐다”며 “주변에 준공 5년 이내의 신축 단지가 즐비하고 심지어 올해 상반기 3300세대가 넘는 메이플자이 공급까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런 기현상의 이유는 거래 규제 때문이다”며 “투기규제지역 설정 이후 준공 후 조합원 지위 양도에 1세대 1주택 요건을 충족, 10년 이상 보유, 5년 이상 거주 조건이 붙으니 재건축 후에도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H부동산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제를 계약 해지와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토지거래 허가증을 받으려면 매도인과 매수인이 동시에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본계약 이전에 일정 부분 약정금을 지급하고 가계약 성격의 매매약정을 체결한다”며 “그런데 매물 자체가 워낙 희귀하다 보니 매매약정만 체결해도 곧장 소문이 퍼지고 토지거래허가를 받기 전에 이미 더 높은 가격의 매물이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토지거래허가를 받아 계약을 마치더라도 잔금 납부까지 기간이 또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이 매물이 올라오면 시세를 보고 매도인이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토지거래허가제가 집값이 오르는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원준 씨(40·남·가명)는 올해 초 실제 비슷한 일을 겪은 적 있다. 그는 “청담동에 위치한 아파트 매매약정을 체결하고 약정금 1억원을 넣고 토지거래 허가 절차를 밟던 중 갑자기 매도인이 약정 파기와 동시에 다른 부동산에 2억원 웃돈을 붙여 다시 매물을 올려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며 “알고 보니 약정 직후 곧장 2억원 비싼 매물이 올라오자 집주인이 1억원 더 벌 생각에 약정을 파기한 것이었다”고 성토했다. 이어 “다른 매물을 알아보려하니 도저히 기존 가격으론 알아볼 수가 없어 결국 다른 매물을 2억원 비싸게 주고 매수했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서울 인기 지역을 대상으로 한 거래 규제가 공급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를 낳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 인기 지역에 대한 거래 규제가 심화되면서 공급 부족과 부동산 시장의 왜곡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매물의 공급 감소에 따라 일부 인기 지역에서 발생하는 ‘계약 후 해지’ 현상은 시장의 왜곡을 심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물 잠김 현상과 시세 급등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고 공급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거래 규제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시장의 비정상적인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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