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국 혼란의 피해가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의 피해는 유독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국 혼란으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로 공직사회는 물론 민간 기업들까지 모두 ‘일단 지켜보자’ 기조를 유지한 채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그동안 ‘낙수 효과’에 의존해 온 서민 경제가 크게 휘청이고 있다. 정치에 관심 가질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땀 흘리며 살아온 온 서민들은 “탄핵이 되든 말든, 누가 권력을 잡든 하루 빨리 혼란이 종식될 바랄 뿐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국이 뒤숭숭하니 회식도 안 하네요” 탄핵사태 직격탄 맞은 우리 주변 서민들
서울 중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안순오 씨(63·남·가명)는 최근 밤잠을 설치는 날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혼란이 계속되면서 기업 활동에도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사내 분위기 자체가 잔뜩 긴장돼 있다 보니 송년회, 신년회 등 회식 모임 자체가 크게 줄었다. 오피스 상권에서 영업을 하는 상인 입장에선 악재 중에서도 최악의 악재를 만난 셈이다.
안 씨는 “지난해 말부터 신년 초까지 매출이 전년에 비해 절반 이상 급감했다”며 “재작년만 해도 단체 회식 예약이 끊이지 않았는데 요즘엔 소규모로 조용히 왔다가는 손님들뿐 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에 관심조차 갖기 어려웠는데 막상 당해보니 정치를 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며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하루 빨리 혼란스러운 상황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피력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강유식 씨(57·남·가명)도 비슷한 상황이다. 강 씨는 지난해 발표한 정부의 정책 계획을 보고 사업 확장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탄핵사태 이후 정부는 물론 공공기관, 지자체 등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축소됐다. 주변에선 ‘당장 정권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공무원들이 섣불리 움직이겠느냐’는 이야기뿐 이다.
강 씨는 “소규모 제조업체 대부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과 거래하는 하청업체인데 정국이 혼란스러우니 원청에서도 당장은 ‘지켜보자’ 식의 태도만 보이고 있다”며 “인건비, 원재료비 등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모든 게 정체돼 있으니 사실상 퇴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정권을 누가 잡든 상황이 안정되고 국정 운영의 방향성이 명확해져야 그나마 버틸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다”고 토로했다.
“정국 혼란에 대기업·정부·공공기관 전부 올스톱…결과가 어떻든 불확실성 사라져야”
탄핵사태 이후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자 국내 주요 기업은 물론 지자체나 공공기관 등은 ‘현상유지’ 기조를 유지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특히 기업들은 정체 상황을 유지하면서 생겨난 경쟁력 후퇴, 투자 연기 등의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데 주력할 뿐 눈에 띄는 움직임은 최소한 자제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감만 내비칠 뿐이다.
앞서 윤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 이후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을 감안해 혼란스러운 정국이 조속히 안정되고 국정 공백이 최소화되도록 국회와 정부가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한국경제인협회 역시 “국정 공백이 빠르게 해소돼 대외 신인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들이 경제 안정을 위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국혼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공공기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특히 기관장 자리조차 공석인 공공기관의 경우 기존 사업의 유지에만 급급할 뿐 신규 사업 추진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전체 339개 공공기관 중 기관장이 공백 상태인 곳은 50여 곳에 달한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을 추진해 온 공공기관들의 경우 내부 분위기까지 술렁이고 있다. 일례로 정부의 원전 활성화 사업의 첨병 역할을 맡아 온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내부에서 정권 교체 시 또 다시 그동안 추진해 온 사업에 제동이 걸릴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한수원 직원은 “그동안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던 일들에 대해 회의적인 나도는 등 조직 내부 분위기가 최악이다”며 “어떤 식으로든 빨리 결론이 나야하지 싶다”고 귀띔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정국의 혼란으로 인한 부작용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 이슈가 다른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이슈로 인해 정작 문제의 심각성까지 관심 밖으로 밀려 벌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우리 주변에는 정치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묵묵히 땀 흘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의 혼란이 하루 빨리 매듭지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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