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 열정 가득했던 부산은 어쩌다 ‘늙은 도시의 비극’을 맞게 됐을까
낭만 · 열정 가득했던 부산은 어쩌다 ‘늙은 도시의 비극’을 맞게 됐을까

최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광역시의 지역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지역 대표 부촌에 위치한 유통 대기업 매장까지 연이어 철수를 결정할 정도로 지역 경제가 크게 침체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속적인 인구 유출이 지역 경제 위기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혔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파격적인 혜택을 앞세운 기업 유치 등 지역 인구 유출을 막을만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랜드마크 유통시설 연이어 철수…인구 유출 심화에 지역경제 붕괴 위기 심화

 

21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에 위치한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이 폐점 수순을 밟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는 영업 부진을 이유로 최근 세관과 협의해 부산점 운영 특허권 반납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이 보유한 운영 특허권의 만기일은 2026년까지다.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은 과거 2012년 신세계그룹이 파라다이스호텔 면세점을 인수하면서 설립한 ‘신세계그룹 1호 면세점’이다. 2016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으로 확장 이전한 후 롤렉스·버버리·불가리 등 각종 명품 브랜드 매장이 대거 입점하면서 한 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유통업계 안팎에선 ‘신세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기도 했다. 

 

▲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입구 전경. ⓒ르데스크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떨어진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이미 점포 매각을 추진 중인 상태다. 그동안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롯데백화점 전국 70여 매장 중 매출 최하위권을 기록해왔다. 지역의 경기 침체로 명품 수요가 급격하게 꺾이면서 백화점 내의 1·2층 명품관은 ▲무신사스탠다드 ▲자라 ▲에잇세컨즈 등 가성비를 앞세운 SPA 브랜드로 교체됐지만 그 마저도 신통치 않은 실정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부산에 위치한 대기업 계열 점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배경에는 ‘심각한 인구 유출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소비활동이 활발한 청년 인구가 급감하면서 점포를 찾는 발길이 크게 줄었고 결국 폐점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부산의 15세~29세 인구는 49만9644명이다. 부산 청년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줄어든 것은 관련 통계가 공시된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분기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청년 인구는 3029명에 달했다.

 

부산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현재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은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1000대 기업까지 범위를 확대해도 28곳에 불과하다. 부산시 남구에 위치한 문현금융단지 내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주요 금융공기업들의 본사가 이전한 상태지만 전체 임직원 수는 제조업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편이다. 

 

▲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2층에 위치한 에잇세컨즈 매장 전경. ⓒ르데스크

 

부산 지역의 경제·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생산·소득 관련 지표는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지역소득(잠정)’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의 1인당 GRDP(이하 명목 기준)는 3476만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권인 16위를 기록했다. 1위를 기록한 울산(8124만원)과의 격차는 4648만원에 달했다. 1인당 GRDP는 해당 지역내총생산을 인구수로 나눈 값으로 지역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다.

 

부산 지역민들은 지역 경제가 이미 심각한 단계로 진입했다며 큰 좌절감을 토로했다. 부산 경성대·부경대 상권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자영업자 이태호 씨(33·남)는 “정말 최근 몇 년 사이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거리에 보이는 청년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며 “자영업 상권에 이어 백화점, 면세점 등 대규모 쇼핑몰까지 부산을 떠나는 현실을 보면 정말 도시 분위기 자체가 점점 어두워지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주부 박예슬 씨(54·여)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바로 옆의 신세계백화점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상권으로 위용을 떨쳤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철수하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최근 명품관 자리에 가성비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손님 유치에 나섰지만 부산 자체에 사람이 없다보니 이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태 원인과 심각성이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령층은 소비력이 강한 청년층이다”며 “부산은 저출산, 노령화 등으로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가운데 청년층마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도권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다보니 유통기업들도 철수하거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기업 본사와 공장 등을 유치할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REMIUM SERVICE
OPINION NOW

사회 각 분야의 유명인과 관련된 디지털 콘텐츠 분석 자료를 제공합니다.
매일 12시(정오)에 업데이트 됩니다.

오피니언 나우 소개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채널 로그인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이 궁금하신가요? 혜택 보기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
- 평소 관심 분야 뉴스만 볼 수 있는 관심채널 등록 기능
- 바쁠 때 넣어뒀다가 시간 날 때 읽는 뉴스 보관함
- 엄선된 기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뉴스레터 서비스
- 각종 온·오프라인 이벤트 우선 참여 권한
회원가입 로그인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