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 시대를 맞아 청년세대의 연말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파인다이닝과 호텔 디저트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소비가 연말 트렌드였다면, 올해는 ‘절약’과 ‘놀이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연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 제약 속에서도 재미와 특별함을 극대화하려는 청년층의 트렌드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세일즈포스가 발표한 ‘2024 연말 쇼핑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47%는 작년과 같은 수준의 소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40%는 작년보다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저가상품과 할인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이로 인해 연말 소비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청년층의 연말 모임과 소비 패턴은 SNS를 중심으로 색다른 문화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반려동물 온라인 트리’가 새로운 유행으로 떠올랐다. 반려동물의 사진을 편집해 트리 모양으로 꾸미고 디지털 오너먼트로 장식하는 방식이다. 3~5만 원대의 실제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무료 편집 앱을 활용하는 이 아이디어는 틱톡에서 편집법을 공유하는 영상이 확산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AI 챗봇을 활용한 연말연시 운세 보기 역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5만 원 이상 가격의 오프라인 사주카페 대신 무료 AI 챗봇을 활용해 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AI 챗봇에게 사주 분석을 요청하고, 그 결과를 SNS에 공유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높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연말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연말 모임 문화 역시 실속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테무’나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해외 직구 플랫폼에서 구매한 1~2만 원대 의상을 입고 진행하는 ‘이상한 옷 파티’가 유행이다. 과거 평균 10만 원대의 파티룸 대여나 20만 원 이상의 호캉스를 선호하던 모임 문화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신 저렴한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놀이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관련 영상이 125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틱톡에서도 ‘연말 모임 꿀팁’이라는 주제로 저비용 파티 아이디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비용 부담 없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져서 좋다”고 호응을 보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디저트 문화 역시 실속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7만~10만 원대의 호텔 케이크가 대표적이었다면, 올해는 편의점과 저가 커피 브랜드의 1만 원대 미니 케이크가 인기를 끌고 있다. GS25는 최근 2주간 미니 케이크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증가했다고 밝혔고, 메가MGC커피의 케이크 예약률도 30% 상승했다.
이와 함께 DIY 과자 키트도 청년세대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5000원~1만 원대의 가격으로 직접 과자를 꾸밀 수 있는 상품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오리온의 ‘후레쉬베리 산타친구들 만들기’는 틱톡에서 3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해태제과의 ‘얼초 슈의 외출준비’ 영상은 엑스(구 트위터)에서 200만 조회수를 넘겼다.
이처럼 연말 문화의 변화는 고물가와 고금리 시대에 소비 여력이 줄어든 청년들이 연말을 즐기면서도 재미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은 결과다. 고가 소비를 줄이면서도 SNS에서 공유할 만한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박윤서(24·여)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파티룸을 빌려 연말 모임을 가졌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파티룸이나 호캉스는 생각도 안 하게 된 것 같다”며 “최소한의 소비로 최고의 재미를 누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소비 축소에 따른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제적 제약 속에서도 청년들은 자신들만의 창의적인 놀이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경규 문화기획자는 “경제 상황에 맞춰 소비 규모는 비교적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SNS 등에 공유할 만한 ‘인스타그래머블’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하다”며 “최근 파티나 행사 기획에서도 프리미엄보다는 친근하고 대중적인 접근이 더욱 선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프로슈머형 놀이문화’로 정의하며, “과거에는 고가 소비를 통한 과시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저렴한 상품으로 얼마나 재미있고 예쁘게 연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신만의 파티 연출 능력을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프로슈머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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